삼성산+호암산
요즘 자주 삼성산 산행을 하게 된다. 집에서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지난번 삼성산 산행 때 남겨두고 걷지 않은 코스라고 해서 신청을 했다. 거의 한 달 전에 네 번째로 참여 댓글을 달고 기다리는데 그새 참여자가 26명으로 늘었다. 이번에도 대장님 혼자 리딩하기에는 그리 만만치 않은 인원이다.
집결지 신림선 관악산역은 집에서 꽤나 멀다. 인터넷 지도로 알아보니 약 1시간 40여 분 걸리는 걸로 나온다. 그렇지만 버스와 전철을 타고 환승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있으니 2시간을 잡고 집을 나선다.
버스가 금방 와서 타고 수원역에서 전철로 갈아타는데 또 금방 온다.
"오이? 이러면 너무 일찍 도착하는 거 아닌가?"
전철 안에는 마침 좌석도 있어서 앉아서 편안하게 간다. 핸드폰 충전 상태를 보니 80%이다.
"조금 더 충전하면 좋겠네."
1만 마하짜리 충전지를 꺼내서 핸드폰에 연결한다. 아, 그런데 한참 가다 보니 충전이 안 되고 있다.
"충전지가 고장인가?"
배터리 충전 상태를 표시하는 부분을 보니 네 개 동그라미가 모두 아웃 상태이다.
"이거 뭐야? 충전이 다 되어 있는 줄 알고 그냥 가져왔잖아?"
핸드폰에서 충전지를 분리해서 배낭 주머니에 넣는다. 이따 사진 찍으려면 핸드폰 사용을 하면 안 되겠다 싶어 그냥 조용히 눈을 감고 간다.
"종착역인 구로입니다. 모두 내려 주세요."
아, 내가 환승해야 할 대방역을 지나가는 서울역이나 청량리나 더 멀리 가는 전철을 탄 게 아니라 그전에 내리는 구로행을 탄 것이다.
'무엇이 그리 급했단 말인가?'
혼자 중얼거리며 내린다. 5번 홈에서 전철을 기다리는데 방송이 나온다.
"1번 홈에서 갈아타세요. 5번 홈에는 서지 않습니다."
내가 환승해야 할 대방역을 가려면 1번 홈으로 가서 타야 한단다. 계단을 올라가서 1번 홈을 찾아서 계단을 내려간다. 곧 청량리행 전철이 온다. 탔는데 사람이 많아서 서서 간다.
신림선 대방역에서 관악산역(서울대역)까지는 약 37분 소요 예정이다. 대방역에서 약 10여 분 기다린다. 신림선은 칸이 많지 않은 경전철이다. 급히 별다섯 대장님에게 톡을 보낸다.
"구로행 전철을 타는 바람에 갈아타야 해서 조금 늦을 거 같습니다. "
"빨랑 천천히 오세요."
'어떻게 오라는 것일까? 빨리? 아니면 천천히?'
나는 재치 있는 답문을 보며 전철을 타고는 다시 톡을 보낸다.
"11시 5분 도착 예정이에요."
알았단다.
아, 그런데 집결지인 관악산역 1번 출구로 가 보니 산우님들 일부가 관악산역(신림선)을 관악역(1호선)으로 잘못 알고 거기로 갔단다.
"그럼 거의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거네."
내가 지난번에 삼성산에서 일행을 놓치고 헤맬 때 어떤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니 관악역과 관악산역을 헷갈려서 가르쳐 준 적이 있다고 산행 후기에 적은 일이 있는데, 산우님들은 세세하게 안 읽어보는구나 싶었다. 하긴 후기를 열심히 써도 관심 있는 몇 분이 읽어주는 것이려니 한다.
암튼 이래서 자랑산 산행 팀이 두세 개로 나뉘어서 걷게 된다. 선두 5~6명 가고, 중간 10여 명 가고, 후미 별대장님 포함 몇 분이 관악역으로 간 이들을 기다렸다가 10여 명이 함께 온다.
나는 중간 팀에서 가고 있는데, 산우님들이 왜 내 닉이 눈꽃열차냐고 그런다. 시베리아가 어쩌고 그러신다.
"그게 아니고요. 제가 눈꽃열차 타 보는 게 소원이라서요. 아직 한 번도 못 타봤네요. 남편은 그런 거 싫어하고, 같이 탈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눈꽃열차를 혼자 타기는 좀 그렇잖아요. 하긴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는 것도 제 버킷리스트이긴 합니다."
그러고는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한다.
"제가 어려서 시골에 살았는데 벽장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벌써 서로 보폭이 달라 물어본 분은 앞서가고 나는 뒤로 처져서 대화가 끊긴다.
나는 어려서 벽장 구석에서 발견한 울 아버지나 어머니가 읽었을 법한 아주 오래된 소설책(누런 한지를 실로 묶어서 만든 정사각형 모양의 책인데, 한 서너 권쯤 있었다.) 나는 그걸 가져다가 읽었는데, 거기에 두 남녀가 시베리아 눈꽃열차를 타고 가면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눈이 내린 러시아 풍경은 아주 아름답고 낭만적이었고, 두 연인은 사랑을 나누고 싶어지면 아무 역에나 내려서 찐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는 다시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가면서 여행을 계속하는 이야기이다. 어찌나 묘사가 적나라한지 나는 읽고 또 읽었다. 아마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성 묘사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묘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었는데, 그만 이야기가 끊기고 만 것이다. 하긴 산행 중에 이런 긴 이야기를 어찌 다 한단 말인가?
내용은 지금까지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암튼 그랬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사춘기가 처음 시작되던 때에 읽었으니 나는 그 후 열병을 꽤나 앓았다.
"내 님은 누구실까? 어디에 계실까?"
당시에 이런 노래는 없었지만 나는 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며 나눈 두 남녀의 사랑을 열망하기도 했다.
관악산공원 대문 지나 관악산 인공폭포에서 기념샷 찍고 도란도란길 물레방아를 거쳐 육각정 정자로 간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조금 더 오르기로 한다. 경사가 급한 오름길 세게 오른다. 사각정을 찾아 오르는데 길이 전혀 새롭다. 이렇게 가파른 데크가 많이 있었던가 싶다.
널찍한 장소를 찾아 모여 앉아서 점심식탁을 차린다. 배드민턴 클럽 회원들이 배드민턴을 치는 장소 같다.
오늘 점심은 오아시스님표 돼지블백과 상추쌈, 수수부꾸미 개별 포장이 압권이다. 관악역으로 잘못 가서 거기서 택시를 타고 오셨단다. 거의 30인 분 이상을 어찌 매고 오셨을까? 수수부꾸미도 개별포장해서 나눠주신다. 나한테는 오아시스님 꺼까지 덤으로 던져주신다.(집에 와서 남편과 둘이서 전자렌지에 데워서 먹는데 안에 통팥이 고소하니 씹히는 게 넘 맛나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또 아매랑님은 말랑말랑 말린 대추를 개별포장으로 30여 명 분을 가져오셔서 나누어 주신다.
세상에나! 이런 섬김 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천성이 고운 분들이 아닐까 싶다.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야 말로 인생 최대의 기쁨과 보람을 준다고 하는데, 이 분들은 벌써 그것을 다 터득하신 것이리라. 부를 쌓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누리고, 건강하고, 또 자아실현도 좋지만, 그 어떤 것도 봉사와 섬김의 기쁨에는 따라오지 못한단다. 그래서 세계 유수의 빌게이츠 같은 재벌들도 구호와 섬김과 기부의 재단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리라.
어쨌든 우리 자랑산 산우님들은 오아시스님과 아매랑님 덕분에 산행 초반부터 호사를 누린다. 입이 즐겁다. 마음이 훈훈하다. 감동의 엔도르핀이 솟는다. 부디 다른 곳에서 더 좋은 것으로 여러 배로 받으시기를 축복드린다.
맛난 점심 먹고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서로 인사하고 단체사진을 찍는다. 출발! 본격적인 산행 시작이다! 총인원은 26명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도란도란 녹음이 짙은 산길을 걷는다. 날씨는 최적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바람도 솔솔 불어준다. 하늘은 미세 먼지 없이 쾌청하다.
선두팀은 가다가 쉬면서 후미를 기다려준다. 느릿느릿 천천히 여유 있는 산행이다. 별 대장님의 사존배감(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감사하고) 산행이다.
산에 꽃은 거의 없다. 간혹 병꽃이 보이기도 하지만, 철쭉은 이미 다 피었다 진 모양이다. 5월 초 연휴 기간에 울 외손녀가 첫돌을 맞아 외국에 다녀오면서 간 김에 여행도 좀 하고 오느라고 산행을 쉬었더니 꽤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다.
암릉구간 지나간다. 여기가 칼바위능선이나 싶었는데 아니다. 내가 잘못 안 것이다.
정작 칼바위 능선은 칼바위 국기봉이 있는 곳이다. 암릉 위에 태극기가 늠름하게 휘날리고 있다. 올라가서 기념샷을 남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칼바위 국기봉이다.
그런데 국기봉에서 찍은 내 사진에는 국기가 다 잘렸다. 나는 다른 사람 사진 찍을 때 국기 나오게 찍느라고 애를 썼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안 나오게 찍으려고 기다렸다 찍었는데 내 사진에는 여러 사람이 나온다. 많이 아쉽다. 이래서 또 다음에 이곳을 또 올라야 할 것이다.
"둘레길 평지길도 좋지만 이렇게 봉우리나 정상도 올라주면 더 기억에 남죠."
"그렇죠! 우리가 산 정상을 밟는 이유이기도 하죠."
내려가면서 별대장님과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눈다.
삼성산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몇 번 더 하고, 호암산으로 접어 들어서 넓은 평지에 도착했다. 이제 내리막길만 있는 모양이다. 인원을 세어보는데 한 분이 모자란다. 별대장님이 일일이 닉을 불러보니 산에서님이 안 보인다.
"오름길 힘들다고 아까 따로 내려가신다고 했어요."
누군가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별대장님이 전화통화를 시도한다. 통화불능지역이란다.
"어디로 내려오시든 뒤풀이 장소인 석수역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한참 가다가 통화가 연결된 모양이다.
안심하고 다들 부지런히 하산한다. 호암산도 암릉이 꽤나 멋진 산이다. 가다가 암릉 위에서 풍경 조망도 하고 사진도 찍느라 발걸음이 자꾸 멈춰진다. 암릉 위에 기이하게 자란 멋진 소나무 위에서도 포즈를 취한다. 암릉에서는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좋은 길에서는 거의 달리다시피 걷는다.
유적 발굴지역도 나온다. 꽤 넓게 빨간 그물을 쳐서 구획을 정해놓았다.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진귀한 보물이 나오면 안내문과 함께 팻말도 세워질 것 같다.
신랑각시바위(사랑바위)가 아주 멀리 보인다. 나무에 가려서 형상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사진에 담는다. 그런데 이건 사랑바위가 아닌 모양이다. 꼼꼼하신 기록맨 아매랑님이 올린 후기를 보니 그렇다.
내려가다 보니까 아주 가까이서 신랑각시바위를 볼 수 있는 지점이 나온다. 전망대로 가서 조망한다. 신랑각시가 정답게 나란히 서서 어깨를 맞대고 있다. 자연이 빚은 명 조각품이다. 역시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이다.
하산길 끝부분은 돌 계단, 통나무 계단이 많은데 아주 가파르다. 한 발 한 발 걷는데, 오른쪽 발목이 살짝 아프면서 불편하다. 다친 것도 아닌데 돌길에서는 발목도 무릎도 무리가 간다. 내가 암릉과 돌길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집에 가서 씻고는 맨소래담을 바르고 자야 할 것 같다.
석수역 쪽으로 하산해서 코다리찜으로 뒤풀이를 한다. 우리가 들어간 집보다 조금 더 맛있는 집이 있다는데 그곳은 장소가 좁아서 다른 곳으로 온 거란다. 그런데 이 집은 코다리와 고추만 넣어서 찜을 했다. 감자나 무나 이런 게 아예 안 들어갔다. 오리지널 코다리찜인 셈이다.
한 사람이 한 마리씩 먹는다. 한 테이블에 앉은 나와 아매랑님은 술을 안 마셔서 콜라 한 캔을 반씩 나누어 마시고, 마운틴님과 지수님은 막걸리 한 병으로 나누어 마시고, 밥은 따로 안 먹는다. 점심에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 배가 다 안 꺼졌는 데도 또 맛있게 먹는다. 코다리 머리 부분을 남겨서 아깝다고 아쉬워한다. 밥 한 공기 뚝딱 할 수 있는 양인데 말이다.
리딩해주신 별 대장님, 인 지기님, 맛난 음식으로, 간식으로 공궤 해주신 오아시스님과 아매랑님, 그리고 함산 한 자랑산님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