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외손녀가 첫돌을 맞았다. 울 딸이 한 번 유산 후에 가진 아이라서 더욱 소중하다. 울 사위는 외동아들이라서 아이를 많이 기다렸다. 울 딸은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임신 준비를 했는데, 첫 임신이 실패해서 마음고생을 좀 했다.
"엄마는 우리 낳기 전에 유산한 적 있어?"
"그럼. 그때는 무조건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기' 운동을 했지만, 엄마는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어서 두 번 소파수술을 했었지."
태아를 죽이는 일이 죄인 줄도 모르고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울 딸은 자연 유산이 되어서 나하고는 조금 다른 경험을 했지만, 공감하는 눈치였다.
아픔 뒤에 가진 아이라서 건강하게 태어나자 기뻐하며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있다. 부모는 물론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귀하게 태어난 손녀가 최고이다. 시터도 두고 있는데 아이를 잘 돌본다.
돌잔치는 G호텔에서 한다. 돌상 차려서 돌사진 찍고 가족끼리 오붓하게 점심 먹는 형태로 치른다. 우리 부부는 돌상 장식 꾸미는 걸 맡아서 하기로 했다. 필요한 물품은 울 딸이 모두 빌렸지만, 처음 해보는 장식이라서 어렵다. 벽에 붙이는 돌 현수막 세 장도 쩔쩔매며 붙인다. 붙이면서 울 남편과 옥신각신한다. 울 남편 고집쟁이는 이렇게 좀 하라고 하면 절대 그렇게 안 한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한 고집한다. 벽에 현수막 세 장을 붙여야 하는데 가로 공간이 좀 좁다. 그래서 나비 안 잘리게 겹치지 말고 붙이면 좋겠다는데 굳이 겹치게 붙인다. 그래서 내려오시라 하고, 내가 대신 의자 위에 올라가서 붙인다. 벽에 테이프가 잘 안 붙어서 애를 먹는다.
돌상 위에 놓는 것들도 어떻게 놓는 것인지 사진만 보고는 알아보기가 어렵다. 이렇게 놓았다가 저렇게 놓았다가 해본다. 결합해야 하는 것들도 있는데, 직감으로 맞춰본다. 돌상 위에 까는 천도 여러 장이라 순서가 있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어려운데 점차 익숙해진다. 스스로 터득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같은 물건을 가지고 만지작만지작거리면 사용법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의 지능과 인지 능력의 대단함이다. 드디어 돌상이 완성되었다. 뿌듯하다.
오늘 입은 예림이 한복은 지난번에 한국 왔을 때 돌쟁이 싸이즈로 내가 사준 것인데 팔이 좀 짧다. 몸무게는 또래보다 덜 나가는 편인데 팔다리는 긴 모양이다. 잘 어울리고 예뻐서 다행이다.
시부모님과 부모님, 우리가 해온 돌 선물 금목걸이, 금팔찌, 금반지를 돌상 위에 올려놓는다.
전문 사진사와 함께 바깥으로 사진을 찍으러 간 울 딸 부부와 외손녀가 돌아온다. 돌상에서 외손녀 돌사진을 찍는다. 주인공인 우리 외손녀가 비교적 힘들어하지 않고 잘 있어준다. 사진사 옆에서 돕는 이가 아이를 잘 어른다. 물건은 주산, 바늘꽂이, 판사봉을 집었다. 아무래도 머리가 좋아서 두뇌를 쓰는 일을 해서 돈도 많이 벌고, 또 손재주도 있고, 판단력도 좋을 모양이다. 이제 가족 기념사진을 찍는다. 울 딸 부부와 함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함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함께, 아이가 사진 찍느라 바쁘다.
출생부터 지금까지 매 개월마다 찍은 사진에다 돌사진을 추가해서 인주로 발도장 손도장 찍고, 양쪽 엄지 지장도 찍는다. 고급술 두 병에 노란 인주로 발도장 찍어서 봉인한다. 고이 보관했다가 시집갈 때 줄 거란다.
여섯 명이 앉은 원탁 테이블에 주문한 음식이 하나씩 나온다. 울 외손녀는 어린이 의자에 앉고 시터가 이유식을 먹인다. 시터는 우리 식사를 돕기 위해 나가서 미리 점심을 먹고 왔다. 원탁 데이블이 돌며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이 차려질 때마다 천천히 손이 간다. 충분히 많이 먹었는 데도 음식이 남는다. 중국은 먹고 남은 음식을 싸가는 풍습이 있어서 좋다. 다소 음식을 많이 주문해도 버리는 것 없이 포장해 가서 다 잘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울 외손녀 예림이가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길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