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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an 18. 2023

그 무엇에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

2019년 100주년이 되는 3.1절에 유관순 열사가 추가훈장으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다. 울 이화여고 선배님이신데, 참 자랑스럽다.


나 역시 불의에 항거하는 타입이다. 아닌 것은 그냥 보고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불이익을 당할 때도 많다. 성격이 일명 '잔다르크 유형'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내가 뭐 완벽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성격상 아닌 것을 그냥 보고 참고 봐주고 할 수가 없는 유형이라는 뜻이다.


사는 게 힘든 이유도 그렇다. 세상보다 나아야 할 곳이 도리어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항거 : 유관순이야기》는 오랜만에 눈시울을 붉히며 본 영화이다. 유관순과 조선 사람들이 1919년 4월 1일 병천 아오내장터에서 만세를 부른 뒤 잡혀 감옥생활을 하면서 1년 만에 서대문형무소에서 부른 대한독립만세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나도 덩달아 마음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촉촉이 젖어오는 눈가를 훔친다. 이런 선조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자유와 독립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값이 있는가는 오래 살고 짧게 살고의 문제가 아니다. 유관순처럼 18살의 나이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는 것, 그것이 진정 제 목숨값을 다하고 죽는 것이구나 싶다. 예수님도 33살에 온 인류의 목숨을 대속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죄인으로 십자가형에 바쳤고, 유관순도, 윤동주도, 독립을 원해 만세를 부르다, 시를 쓰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바쳤다.


하는 일도 없이 생명유지에 급급해하며 오래오래 사는 것, 그것은 제 목숨값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더군다나 잘못된 일을 하면서 오래오래 사는 것, 그것은 어쩌면 '저주'이거나 '형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조선인으로 일본형무소의 직원으로 들어가 동족을 고문하는 일을 한 니시다(정춘영)는 유관순과는 대조적인 인물로 나온다. 이 사람이 정작 조선인을 괴롭히고 고문한 일본인보다도 더 나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족인데 밥벌이를 위해 조국과 양심을 팔았기 때문이다. 친일파들은 지금도 권력과 부의 핵심에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사는데, 잘못된 이전 정권의 추종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떠한 저항도 없이 곧 잊고 살아가는데, 종교가, 기독교가, 그 앞잡이 노릇을 하며 살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쉽게 과거를 잊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잘 따져봐야 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이 바르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의미 있는 영화관람을 하며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나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며 대답을 해보며 영화관을 나다.


그렇다. 짧고 의미 있게 살다 간 사람들에 견주어보면, 지금 여기까지 살아온 것만도 너무 많이 살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남은 생애는 하찮은 욕심 같은 거 부리지 말고, 진정 뜻깊은 일에 목숨을 걸 수 있기를 바본다. 얼마나 더 사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이다.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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