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덕산기 계곡+취적봉
해늘산 산행은 거의 1년 만에 간다. 2024년 4월에 강화도 해명산+낙가산 갈 때 진달래 꽃산행을 했었다. 그전 3월에는 괘방산과 정동진에도 갔었다. 잼나게 잘 다녔는데, 왜 자주 안 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암튼 이번 취적봉과 덕산기 계곡 산행은 원정인 데다 오지 청정 계곡에서 놀 수 있어서 기대가 크다.
머털도사 고문님 리딩에다 체스님이 총무로 섬겨주신다. 총 36명 산행인데 28인승 리무진 한 대와 개인 차량으로 오시는 분이 8명이다.
오늘 산행에는 찬조 음식이 푸짐하다.
샌드위치와 망고 주스, 콩설기와 탄산음료(콜라, 사이다, 환타 중 택 1)를 버스에 타자마자 1개씩 받는다. 마침 생일이신 분이 있어서 케이크에다 수박 두 통도 들어왔단다. 이따 계곡에서 놀 때 먹을 거란다. 찬조해 주신 구름산님, 윤미님, 홍윤님, 보애님에게 감사하다.
오전 10시 30분 정선 석공예단지 주차장에 도착한다. 일부는 바로 덕산기 계곡으로 갈 거라서 차 안에 있고, 일부는 취적봉을 오르기 위해 내린다. 머털도사 고문님이 '배낭은 차에 두고 가볍게 하고 가라'라고 해서 작은 가방 하나만 어깨에 메고 물을 넣고, 스틱을 꺼내서 가지고 간다. 취적봉 팀은 덕산기 계곡 옆 도로길을 걸어서 고추밭길로 들어선다. 밭길 끝에 하얀 개망초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다. 꽃길에서는 다 함께 꽃이다.
"햐! 예쁘다."
걷다가 뒤돌아서서, 핸드폰 카메라에 포즈를 취한, 줄지어 선 우리들 모습이 곱기만 하다.
"누가 더 예쁠까? 아무래도 사람꽃!"
자화자찬 같지만 사람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어졌으니까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따라올 수 없는 품격을 갖춘 존재이다.
취적봉은 높이가 728.2m이고 거리는 약 3km, 2시간 30분 소요 예정이다. 산행 코스는 석공예단지~하들목교~시계바위~취적봉 정상~덕산 1교 갈림길~낙모암~덕산 1교이다.
취적봉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고 하나 1.3km를 초반부터 계속 가파르게 올라가야 한다. 시계바위를 지나면서부터는 점점 더 가파르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가파른 로프 구간을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오른다. 그래도 그리 길지 않은 거리라서 곧 정상에 도착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은 여유가 있다.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즐기는 주변 조망도 멋지다. 덕산기 계곡과 암릉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데 간간이 바람도 조금씩 불어준다.
취적봉은 작고 아담한 정상 돌비가 서 있다. 돌비 뒤쪽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우뚝 솟은 봉우리들, 논밭과 마을, 구불구불 덕산기 계곡이 흐르고, 암릉 위에는 고사목도 보인다. 정상 돌비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가는 이들도 있지만 호기심이 많은 산우님들은 돌비 뒤쪽으로 가서 멋진 풍경을 감상한다. 나도 호기심파이기에 따라가서 흐뭇한 표정으로 풍경을 감상한다. 정상에서 보는 뷰는 남다르다. 높건 낮건 산 정상은 그 어디나 제일 높은 곳이니까 오른 자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보기 위해 오른다."
누가 내게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나는 그렇게 대답할 것도 같다.
하산은 정상 아래 덕산 1교 갈림길에서 덕산기 계곡 쪽으로 가는데 1.3km이다. 아까 오르던 길보다는 조금 덜 가파르기에 걷기가 낫다. 그래도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서 길바닥이 잘 안 보이고 미끄럽다. 나는 스틱 짚고도 조심조심 걷는데, 스틱도 없이 걷는 사람들은 참 재주가 좋다. 몸의 균형감각과 발의 착지력이 뛰어난 것이다.
하산하다 보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보인다. 우리가 바로 그 옆 암릉길로 걸어서 내려왔던 것이다. 절벽을 쳐다보니 아찔하다. 계룡산도 암릉길 따라 걷는데 그 옆은 바로 천길 낭떠러지 절벽이다. 취적봉 암릉길은 계룡산보다 덜 험하지만 절벽 아래가 바로 덕산기 계곡이라는 게 좋은 점이다. 길게, 구불구불, 반달형으로 계곡이 조금씩 달라져 보이는데, 나뭇가지와 어우러진 계곡의 모습을 보면서 걷는 재미가 있다.
암릉길 멋진 암릉 위에서 지나온 암벽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 로프나 릿지 기구를 이용해서 90도 각도 암벽을 올라본 경험은 없지만, 바위 좋아하시는 리딩 대장님을 따라서 도구도 없이 불암산 영신바위 1구간 90도 암벽을 올라본 적은 있다. 그때 어찌어찌해서 바위 홈을 타고 반쯤은 올라갔는데, 중간에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손바닥과 무릎도 다 까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떨어지면 크게 다치겠구나!' 싶어서 간이 서늘했다. 그때 위에서 남산우 님 한 분이 휴대하고 다니던 자일을 내려주어서 잡고 간신히 올라갔다. 하산길 옆으로 펼쳐진 거대한 암벽을 바라보니 그때 기분이 되살아나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아본다.
하산 끝지점 덕산기 계곡 덕산 1교로 가는 길에는 징검다리가 있다. 징검다리는 왠지 운치가 있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 소녀의 풋풋한 첫사랑 때문일까?
나는 어려서 시골에서 초중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그런데 등하굣길에 강을 두 번이나 건너야 해서 징검다리를 꽤 걸었던 사람이고 때로는 징검다리도 없는 강을 맨발로 건너서 등하교를 했기에 이런 낮은 강을 보면 옛 추억에 가슴이 시큰해진다. 강에서 미역 감던 일 갯벌에서 게를 잡던 일, 모래밭에서 고무신으로 발야구하던 일, 어른이 된 후에도 잊히지 않는 어린 시절은 우리에게 낭만을 가져다준다.
하산해 보니 버스가 덕산 1교까지 온다고 했는데, 거기서 배낭을 가져와야 점심도 먹고 물놀이 후 여벌옷도 갈아입을 수 있는데, 덕산 1교에는 차가 없다. 저기 왼쪽 길 위로 올라가야 한단다. 뜨거운 도로길을 걸어간다. 며칠 전에 비하면 날씨는 그다지 더운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로길은 후끈하다. 한 300m쯤 올라가니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있다. 기사님 하시는 말씀이 덕산 1교에서는 차를 돌릴 수가 없어서 차 범퍼가 살짝 깨졌단다.
"아이구, 이를 어째?"
그래서 우리를 태우고 덕산 1교로 갈 수 없다는 얘기이다. 할 수 없이 배낭을 짊어지고 덕산 1교로 다시 걸어 내려온다. 다리 아래에 취적봉을 오르지 않은 해늘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취적봉 오른 이들 중에도 벌써 옷을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간 이들도 있다.
시간이 1시 30분이 넘어서 나는 배가 고팠기에 밥부터 먹을 생각에 배낭을 열어 싸 온 도시락을 꺼낸다. 산을 안 오른 이들은 이미 식사를 다한 듯했고, 함께 산을 올랐던 산우님들이 돗자리를 펴고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꺼내놓는다. 반찬 나물을 4~5가지씩 싸 온 이들도 있다.
"아침 일찍 준비하느라 얼마나 바빴을까?"
나는 감자전과 생채, 참외와 밥, 물만 싸왔는 데도 무지 바빴는데 말이다.
밥을 다 먹고 보애님 사 오신 수박으로 더위를 식힌다.
"버스 탑승지까지 수박 두 통을 어찌 들고 오셨을까?"
산우님들 섬기는 고운 마음에 수박이 더 달고 시원하다.
이제 드디어 물놀이 시간이다. 나는 무조건 옷 입은 채로 강물 속으로 들어간다. 바닥에 깔린 돌에 물때가 끼어 미끈미끈하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내가 신은 크룩소 신발이 동동 뜬다. 손으로 붙잡아서 신고 앉으니 목까지 물에 잠긴다. 물속에서는 시원한데 일어서니 춥다. 강밖으로 나가서 자갈 위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서 몸과 옷을 말린다. 바람이 부니 으슬으슬하다. 예전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런 날씨에는 옷이 금방 말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여벌옷을 갈아입지 않고 옷을 말릴 생각이다. 물론 옷은 가져왔지만, 갈아입는 것도 살짝 귀찮아서이다.
오후 3시 20분 버스를 타고 월통휴게소로 간다. 그곳에서 한방닭백숙과 오리백숙으로 뒤풀이를 한다. 4인 테이블에 한 마리씩 먹는다. 담백하니 맛이 있다. 아까 덕산기 계곡에서 먹은 수박과 함께 한방 백숙은 올여름 보양식이다. 홍윤님 생일케이크가 후식으로 나온다. 맛깔스럽게 입가심하고 귀경길에 오른다.
우리나라 3대 계곡은 지리산 칠선계곡, 한라산 탐라계곡, 설악산 천불동 계곡이라고 한다. 폭포도 많고 수량도 풍부해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 꽤 긴 코스이다. 그런데 이들 계곡들은 국립공원에 속해 있어서 들어가서 물놀이하는 곳은 제한적이다. 거의 하산 끝부분에 가서야 발을 담글 수가 있다. 나는 설악산 천불동 계곡만 가 보고 다른 두 곳은 아직 못 가 보았다. 언제 기회가 오려나 싶다.
내가 가본 청정 오지 계곡은 아침가리골, 영월 내리계곡, 그리고 오늘 온 정선 덕산기 계곡 등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리 많지 않은 오지라서 조용하게 오붓하게 즐길 수 있다. 장마 후에 바로 왔더라면 수량이 풍부해서 계곡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비나 눈이 오면 취적봉은 오르기가 어렵단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바로 옆길인 데다 낙엽도 많이 깔린 가파른 길이기에 산행을 자제해야 한단다.
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날그날 주어진 환경에 따라 최적의 산행과 계곡 물놀이를 즐기면 된다. 이열치열 취적봉 산행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옷 입은 채 물속에 잠겨 물놀이를 실컷 했으니 이만하면 된 거다. 무엇을 더 바라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리딩하면서 멋진 사진도 남겨주신 머털도사 고문님과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섬겨주시는 체스 총무님, 맛난 음식 찬조해 주신 분들, 이모저모로 사진을 찍어주신 사진작가님들, 함산 한 해늘 산우님들 모두모두 감사하다. 가능하면 자주 참석할 생각이니 담에 또 반갑게 만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