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지맥 1구간 마패봉
"올 들어 기력도 의욕도 한 단계 떨어진다."
스스로 느끼는 것이지만 그렇다. 젊어서는 알지 못했는데, 중년을 지나면서부터는 한 10여 년 간격으로 한두 번 그랬다.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또 그 상태로 적응을 해서 잘 살아간다.
'이제 노년의 시기이다. 욕심은 금물이다."
올해 또 그 증상이 나타난다. 적응해 가는 중이다. 작년 8월에 생긴 테니스엘보도 완전히 낫지 않고 약간 무지근한 느낌이 남아있다. 발목과 무릎도 10km 이상 장시간 험한 산을 타면 가끔 시큰거린다. 가파른 오름길에서는 가슴 숨소리도 쌕쌕거리고, 뒷목덜미도 당긴다.
예전 같지가 않다.
'내 몸과 마음의 신호이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 산을 탈 수 있을지 싶지만, 지맥 중에서는 비교적 짧은 구간이라고 해서 신청을 했다. 신선지맥 근처에 있는 월악산, 조령산, 주흘산은 다 타보았지만, 지금은 험한 산을 안 탄다.
이전에 혼자서 백두대간 조령산 신선암봉을 탈 때, 남산우 님 두 분이 오셨는데, 잠시 함산 하게 되었다. 그분들 하는 애기가 문경 산들은 정말 멋지다고 기회가 되면 다른 코스도 타보란다. 신선봉, 마패봉,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난다. 문경에 사신다는 그분들은 자주 다양한 코스로, 크게 무리가 가지 않게, 조령산과 주흘산을 오른다고 했다. 오늘 신선지맥은 아마도 그분들이 얘기했던 코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섯 개의 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려가고, 또 일부는 암릉구간이 꽤 있나 본데, 오후에 비소식이 있어서 괜찮을지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거의 매주 한 번은 산을 탔는데 6월에는 울 외손녀가 왔다 가면서 거의 한 달간은 아예 산을 안 탔다. 손주바보가 되어서는 외손녀랑 노는데 정신이 다 팔렸다. 그래도 그동안 탔던 산행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리딩하시는 질매실 대장님이 사전에 톡을 보내와서 '조금 쉬운 코스도 있다'라고 알려주셨는데, 상황을 봐서 정 힘들면 그쪽을 택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암튼 오늘도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위해 기도드린다.
신갈 간이정류장에서 타고 내릴 수 있다 하여 수원에 사는 나로서는 가장 늦게 타고 가장 먼저 내리고, 집에서도 약 1시간 이내 거리라 편리해서 고맙다.
질매실 대장님을 비롯해서 지맥 팀 산우님들을 만나니 그저 반갑기만 하다. 눈인사에 악수에 몇 번 함산 했다고 오랜 식구들 같다.
오늘 구간은 신선지맥 1구간으로 신선지맥 총 34km를 4~5개 구간으로 나눈 것 중 첫 번째 코스이다.
나는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미 낸 회비는 찬조금으로 하고 산행을 취소해야 하나 어쩌나 망설였다. 봉우리를 5개나 찍는다는데 오르락 내리락을 5번이나 해야 하는 지맥 산행은 내게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봉우리 1개만 찍으면 어떻게든 참여해 볼 수 있겠는데, 그러려면 거의 초반에 탈출을 해야 한다. 쉬운 코스로 하산을 혼자 하는 건 괜찮은데, 산을 내려와서 택시를 타고 목욕 장소나 뒤풀이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다행히 카카오 택시가 와주면 좋은데, 안 와주면 또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신선지맥 1구간인 지릅재~소조령 구간은 종 9km인데, 5시간~7시간 소요 예정이다. 들머리인 지릅재(540m)서 오전 9시 30분 정도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가는 동안 고속도로에서 앞에 가던 승용차가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꽤 막혔다. 지나면서 보니까 사람도 다치고 승용차 몇 대가 다 망가졌다. 그래서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야 지릅재에 도착했다.
들머리인 지릅재에서 가파른 덤불구간 살짝 오르고 약 2km를 완만한 능선길로 가다가 완만한 오름길 200m를 치고 올라가면 백두대간 길이자 계명지맥 분기점(725m)에 도착한단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약 1km를 가면 마패봉인 신선지맥 분기점에 도착, 마패봉(마역봉. 925m)~신선봉(965.9m)~연어봉(611m)~방아다리, 연어를 닮은 바위 등을 지나 날머리는 소조령이다. 산행 후 목욕은 수안보 한국콘도사우나에서, 뒤풀이는 산들식당에서 할 예정이란다.
선답자이신 알프스 대장님에 따르면 신선지맥 중 1구간은 최고의 경치를 볼 수 있고, 비가 오다 그치면 백두대간 조령산을 타고 넘어오는 운해로 풍경이 최고가 되고, 시야가 맑은 날 신선봉에서 바라보면 멀리 백두대간의 능선이 지리산 천왕봉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초반 들머리 지릅재에서부터 발 떼어놓기가 어렵다. 자꾸만 밑으로 미끄러지려고 한다. 날이 덥다고 얼음물에 미에로화이바와 보이차까지 물을 1500ml나 가지고 오고, 여벌옷에 바람막이 스패츠에 우비까지 챙기고, 기본적으로 도시락은 김밥과 삶은 계란, 토마토, 그러니 배낭이 꽤나 무겁다.
내가 느리니까 다들 앞서가고 후미를 맡은 녹두대장님만이 뒤에서 나를 살피면서 따라오고 있다. 오름길은 가파르든 완만하든 힘들다. 내가 생각해 봐도 느려도 너무 느리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반복한다. 지릅재에서 마패봉까지는 3km가 안 되는 거리인 것 같은데 쩔쩔매고 있다.
"아무리 풍경이 좋아도 올라가야 볼 수 있다."
나는 마패봉까지는 가고 어디로든 하산을 하리라 마음먹는다. 나의 느린 산행도 문제이지만 후미를 맡은 녹두 대장님 산행도 나 때문에 망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마패봉에 도착하니 먼저 오른 산우님들은 점심식사를 다 마친 상태이다. 나와 녹두 대장님이 빠르게 식사를 한다. 마패봉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마패봉 정상 이정표를 보니 조령3관문까지는 0.9km, 사문리탐방센터까지는 2.3km이다. 조령 3관문까지는 조령산 신선암봉 탈 때 걸어본 곳인데. 거기서부터 조령1관문까지가 너무 지루하게도 긴 도로길이라 다시 걷고 싶지가 않다. 약 6km인지 8km인지 한 2시간 정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도로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안 가본 길인 사문리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오기로 한다.
다들 신선봉을 향해서 가고 나는 혼자서 내려온다. 길이 너무나 좋다. 초반에는 신선봉 쪽으로 가고 있는 산우님들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린다. 나는 신선봉, 연아봉,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야호!"하고 소리쳐볼까 싶었지만 그냥 내려온다.
사문리탐방지원센터 하산길에는 마패봉의 유래, 산에서 멧돼지를 만났을 때 대처법, 윌악산 영봉에 사는 산양의 수, 월악산국립공원 탐방로 등에 대한 안내가 있다. 꼼꼼하게 하나씩 읽어보고 사진에도 담아보면서 여유 있게 내려온다.
어사 박문수가 이 길을 넘어가다가 마패봉에서 마패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쉬어가서 마패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산에서 멧돼지를 만났을 때는 소리치거나 도망가면 안 되고 눈을 똑바로 뜨고 멧돼지 눈을 바라보면서 기싸움을 해야 하고 멧돼지가 달려들 것 같으면 등을 보이지 말고 뒷걸음으로 걸어서 바위나 커다란 나무 뒤로 가 보이지 않게 숨어야 한다. 월악산 산양은 개체수 증가를 위해 몇 차례 산양을 풀어놓았는데 영봉 근처에 98마리가 살고 있단다.
군데군데 작은 솜사탕 같은 꽃들이 피어있다.
"무슨 꽃일까?"
이름은 모르지만 예뻐서 자꾸 발걸음이 머문다.(※그런데 송화님 후기에 보니 이 꽃이 털진달래란다.) 땅바닥에서 자라는 버섯도 담는다.
키 큰 소나무들의 시원스럽고 멋진 모습도 이렇게 저렇게 담아보며 햇빛이 안 보이는 숲그늘길을 맘껏 즐긴다. 나는 암릉보다는 이런 흙길 숲길을 더 좋아하기에 아주 만족을 하며 걷는다.
반쯤 내려오니 계곡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나무다리가 있다. 이따 수안보에서 목욕 예정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발을 담그고 얼굴도 씻고 쉬어가도 좋겠다 싶지만 그냥 내려온다.
"유명한 수안보 온천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계곡은 패스!"
가파른 계곡 암반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대고 살짝 이야기해 준다.
혼자서 천천히 걸으니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고 산과 계곡과 더 가까이 친해진다.
"나는 오늘 박문수 어사가 걸었던 과거길을 걸은 것이다."
약 1시간 30분 정도 내려오니 사문리탐방지원센터가 보인다. 이곳에서는 계곡 주변으로 야영도 하는 모양이다.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기는 한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하루 1회~3회 정도 다닌다고 나온다. 운행 시간표도 안 적혀 있고 해서 그냥 카카오택시를 부른다. 10분 이내 도착한단다.
오후 3시 수안보 한국콘도사우나에 도착한다. 택시로 약 23분 걸린다. 온천에 들어갈 때 이따 일행이 올 거라고 말하고 단체 요금 값으로 부탁해서 표를 끊고 들어간다. 나는 사실 온천욕도 좋아해서 한 달이면 두세 번은 가는 편이라서 딱 좋다. 일부러 수안보까지 가서 온천욕을 할 수도 있는데, 오늘은 이래저래 중간 탈출을 해서 일찍 하산했으니 2시간 이상 온천욕을 즐길 수가 있겠다.
여고 졸업 후 혼자 여행할 때 이곳 수안보 온천에 딱 한번 온 적이 있다.
"저 집이구나!"
택시를 타고 가면서 보니까 그때 갔던 곳을 알겠다. 그곳은 뽀글뽀글 온천탕이 온통 거품 같은 것이 올라오는 온천이었다. 몸이 미끌미끌 간질간질했던 느낌이 되살아난다.
택시 기사님이 그러시는데, 한국콘도 사우나는 콘도는 운영을 안 하고 온천욕만 하는 곳이란다. 사물함이 길게 커서 배낭도 쑥 들어간다. 온천탕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온탕, 열탕, 냉탕이 있다. 일반 목욕탕과 비슷하다. 물 맞는 곳도 발마사지 하는 곳도 없다. 그런데 냉탕 옆에 해변에서 일광욕할 때 사용하는 비치 침대 같은 게 두 개 놓여있다.
"저기서 좀 쉬면 되겠다."
나는 먼저 머리를 감고 비누로 몸을 씻고, 온탕 한 번, 냉탕 한 번 들어갔다가 수건으로 몸을 덮고 하얀 침대에 가서 눕는다. 자칫 잠이 들까 싶어서 정신은 바짝 차리고 누워 있다가 또 온탕 한 번, 냉탕 한 번 들어간다. 가끔 벽에 걸린 시계로 시간도 본다.
"아무리 빨리 내려와도 5시는 넘을 듯하고 6시는 넘지 않을 것이다."
내 예상은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 5시에 옷을 입고 산행 후기나 작성해 볼까 하고 있는데 옆자리 짝꿍 오키짱님이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닦으면서 나를 보고 알은체를 한다. 차 안에서 처음 만나서 얼굴도 제대로 안 보고 이야기만 나누다가 온천에서 만나니 전혀 낯설다.
"짝꿍!"
그제야 알겠다.
"벌써 내려온 거예요?"
"남자분 둘하고 세 명이서요."
"진짜 빠르네요."
나는 탄복을 한다. 오키짱님은 알파산 지맥팀 온 지 두 번째라는 데 완전 베테랑인 모양이다.
"시원한 맥주 한잔 먹고 싶네요."
"나는 술을 못 하지만 그럼 뒤풀이 식당으로 먼저 가요."
남탕에 들어갔다는 안면도님한테서 오키짱님에게 전화가 와서 밖에서 기다린단다. 밖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서 둘은 안면도님이 사 오신 캔 맥주 한 캔씩을 따서 한 모금씩 마시고 나는 가져온 얼음물을 마신다. 네이버 지도를 켜서 가는 길을 익힌 후 함께 산들식당으로 간다.
6시 15분 전 산들식당 도착한다.
"우리 팀 몇 시에 온대요?"
식당 주인 여자분에게 물어보니 예약이 6시~6시 30분 사이란다.
"곧 오겠네요."
감자전을 하나 시켜서 먹는다.
6시 10분쯤 일행이 온다.
"참 대단들 하시네요! 이 습한 장마 무더위에 신선지맥 1구간 암릉 봉우리 5개를 다 찍고 내려오시다니요!"
나는 쉬운 코스를 탔지만, 험한 산 타는 산우님들을 보면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러운 건 아니지만 그들만의 세계에 의미와 가치가 있다 여긴다.
"보통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두려움 없이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산들식당 뒤풀이는 삼겹살과 보쌈으로 했는데, 양도 푸짐하고 고기가 도톰하면서도 냄새도 안 나고 질도 좋다. 밑반찬도 하나하나 다 맛이 있다. 후식으로는 미리 사다 시원하게 해 놓은 수박이 나온다. 혼자서 19명이나 되는 단체손님을 정성을 다해 모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주인이 수안보산악회 회원으로 산행경험이 꽤 있으신 분이다. 식당 주인이 산우님이라서 산행 후 뒤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아시는 것이다. 맛있는 뒤풀이는 산행 피로를 싹 가시게 해 준다. 지맥팀은 늘 산행 후 목욕도 하고, 식당도 꽤 물색을 해서 가기에 가성비와 만족감이 높은 편이다. 리딩하시는 질매실 대장님과 식당 예약을 하시는 녹두 대장님 환상의 콤비 덕분이다.
다음에도 이쪽 지역 산행일 때는 다소 멀더라도 이곳 수안보 한국콘도사우나와 산들식당을 이용하자는 산우님들 의견이 많다.
나는 신선지맥 2구간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1개의 봉우리만 탄다."
'신선들이 노닐던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신선지맥 중에서도 '높고 뛰어난 암릉이 뾰족뾰족 돌층계처럼 솟아 있다'는 탁사등봉은 2구간 첫 번째 봉우리란다. 아마도 여기에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을 듯하다. 탁사등봉에서도 중간 탈출 코스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항상 지맥길에 대한 애정으로 연구와 섬김을 아끼지 않는 멋진 선두 리딩 질매실 대장님과 중간 리딩 백화사 대장님, 성실맨에 사람 좋은 후미 리딩 녹두 대장님과 함산 한 산우님들 모두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