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학바위능선
해늘산 창립 7주년 행사에 처음 만나 뵌 키 크고 잘생긴 두야 대장님 등극산행이 관악산에서 있다. 모두 36명 참석이다.
"이렇게나 많이?"
나는 우선 깜짝 놀란다. 이건 해늘산의 저력이다. 좋은 일에 너도 나도 함께 하려는 마음! 이게 해늘산의 자랑이기도 하다.
나는 수원이 집이라서 집결지가 수원인 산악회를 찾다가 다른 산악회에 한 달 전쯤 가입을 했다. 이 산악회는 한 달에 한 번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정기 원정산행을 한다. 거기서 만난 남산우님, 여산우님, 두 분과 우연히 여러 번 함산을 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에 총 3번 산행을 했으면 많이 함산한 거다. 남산우님과는 오늘 산행까지 하면 총 4번이다. 나는 보통 1주1산을 하고 있기에 한 달 동안 매주 산행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행을 같이 하면 친해진다. 밥도 먹고 물놀이도 하고 위험구간에서는 스틱도 받아주고 멋진 풍경도 함께 즐기니까."
그래서 그랬을까? 두 분 산우님과는 꽤 오래된 산친구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오늘도 함께 가자는 내 권유에 두 분 산우님이 선뜻 따라나섰다. 두야 대장님 등극산행이라서 축하의 자리라 그저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오전 10시 30분 낙성대역 4번 출구 안에서 만난다. 두야 대장님이 예쁜 수제 가방고리 액세서리를 선물로 주신다. 파란색, 연보라색 두 가지인데 나는 보라색을 받았다가 파란색이 더 이쁜 듯해서 바꾸기까지 한다. 지인분이 축하 산행에 오는 산우님들에게 주라고 만들어 주셨다는데 정말이지 소중한 선물이다. 배낭에 매달고 다니면서 볼 때마다 두야 대장님 생각을 할 것 같다.
"두야 대장님 좋은 산행지 공지와 리딩을 기대하며, 늘 안전하게 즐겁게, 산우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대장님이 되시길 빌어 드려요."
마음속으로 소원을 빈다. 내 기도는 늘 잘 이루어지기에 꼭 그렇게 될 것이라 소망을 가져본다.
참, 오늘 날씨가 어제 일기 예보에는 새벽에 비 오고, 낮 12시에 또 한 차례 비가 온단다. 그래서 함산 할 두 분 산우님에게 우비와 여벌옷 챙겨 오라고 톡을 한다. 그런데 집결지 가면서 또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비가 온단다. 그 후에는 살짝 흐리고 맑음이란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날씨 요정 아닌가? 비가 올 리가 없지."
사실 그동안 내가 산행하는 날은 일기예보에 비가 있어도 거의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만들어낸 너스레이다.
물론 틀린 적도 있다. 한 번은 강화지맥을 걷다가 그날은 하루 종일 비소식이 있었는데, 비가 내려도 너무 내린다. 거기다가 바람까지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내 선글라스도 날아가서 잃어버리고, 능선을 걸을 때는 모자와 비옷이 바람에 몸서리치는 걸 붙잡고 가느라 애를 먹었다. 심지어는 내 몸까지 날아갈 태세이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중심을 잡느라 도무지 걸을 수가 없다. 그날 아침에 리딩 대장님에게 날씨 요정 소리를 했다가 돌아오는 내내 놀림을 받았다.
"요새 날씨 요정 기가 딸린가 봐요!"
그래서 그 산악회에서 산행을 할 때는 찍소리를 못한다.
그렇지만 지금도 내가 산행하는 날은 대체로 비가 안 온다. 지난주 해늘 창립 7주년 기념산행에서도 그랬다. 산행을 1시간도 채 못했으니까. 아니다. 그 후에 뒤풀이를 다 마치고 집에 올 때까지도 비가 안 왔다.
암튼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다. 바람도 선선하니 불고 약간 흐렸다가 개이는, 산행하가 딱 좋은 날씨이다.
낙성대역 1번 출구에서 따끈한 콩설기 떡도 1개씩 받는다. 머털도사 고문님, 윤미, 산새 자문님, 이렇게 세 분이서 찬조를 하셨단다. 해늘산은 늘 섬기는 분들이 많다. 물심양면으로 회원들을 위해 기쁨으로 봉사하신다. 임원진, 운영진, 대장님들, 그리고 예쁜 사진 담아주시는 사진작가님들과 바리바리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거나 만들어서 섬기시는 분들이 있다. 회원이 3천여 명이 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낙성대역 1번 출구 밖으로 나와 서울대공학관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 버스에 타서 보니까 밖에 줄을 서 있는 분들이 낯이 익다. 배낭에 매단 산악회 명찰을 보니 글씨가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는데 명찰 색이 흰색이다.
'내가 모르는 산악회인데 어디서 본 것일까?'
그런데 나중에 서울대공학관 앞 건너편에서 두야 대장님 등극식을 하면서 보니까 내가 가입한 거의 매일 산행을 하는 산악회에서 몇 번 함산 한 회원이다.
"오늘은 다른 산악회에서 왔어요."
"여기는 해늘산악회예요."
나는 잽싸게 내가 오늘 참여한 해늘산 소개를 하고, 그쪽에서 뭐라고 산악회 이름을 말해주는데 못 들었다. 마침 두야 대장님 등극산행 축하 케이크에 불을 붙여서 끄려는 찰나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사탕목걸이에 축하케이크에 두야대장님 등극산행이 잔치 분위기이다. 행사를 마치고 현수막을 들고 해늘님들 단체사진도 찍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산행 시작이다.
"이런 길이 있었네!"
나는 서울대공학관 바로 앞마당을 지나 왼쪽 계단으로 관악산 연주대 오르는 길은 두어 번 가보았는데, 그 길은 지금 막아놓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살짝 걱정을 하고 있는데 오늘 해늘산은 길 건너편으로 오른다. 이 길은 처음이다.
한 20여 분쯤 오르니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다. 새벽에 비가 온 덕분이다!
"햐! 물놀이하면 좋겠다!"
그런데 그 계곡을 지나니 더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나온다. 먼저 올라간 선두팀이 이곳 널찍한 자리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쉬어간단다. 점심도 여기서 먹고 물놀이도 할 거란다. 나는 해늘 산우님들 둥그렇게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식탁교제를 누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카메라에 담아본다.
그리고는 같이 간 세 사람은 계곡 내려가기 좋은 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각자 싸 온 간식을 꺼낸다. 나는 김밥과 참외, 여산우님은 주먹밥과 사과, 남산우님은 따님이 만들었다는 바게트 빵과 뿌리는 생크림, 본인이 마실 카스캔, 우리 주려고 사 온 논알코올캔 등을 꺼내 놓는다. 바나나와 다른 간식이 더 있지만 이따 산행하면서 먹기로 한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남산우님이 먼저 옷 입은 채로 계곡 물속으로 들어간다.
"물이 안 차요. 수온이 딱 알맞아요."
어서 들어오라는 신호이다. 우리 둘도 산행할 때 계곡 물에서 옷 입고 알탕 하는 걸 무지 좋아한다. 여산우님 들어가고 나도 들어간다.
"좋다! 좋다! 이보다 더 좋은 순 없다."
해늘님들은 아직 아무도 입수 전이다. 아주 오래오래 점심식사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도 가져오신 다양한 음료(?)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리라.
어느 정도 물놀이를 하고 두 분 산우님에게 물어보니 산을 좀 더 타면 좋겠단다. 두야 대장님에게 물어보니 오늘 산행은 여기서 물놀이하고 바로 뒤풀이 장소로 갈 거란다.
현재 시간은 낮 12시, 오후 2시 30분까지 이곳에 있을 거란다.
"물놀이 시간이 너무 많은 데요."
그래서 우리는 일단 1시간 정도 산을 올라가 보고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서 뒤풀이에 합류할지 결정하기로 한다.
"이따 전화드릴 게요. 혹시 다른 장소로 내려가게 되면 뒤풀이 참석을 못할 것 같아서요."
우리는 짐을 모두 꾸려서 젖은 옷 상태로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른다. 옷이 젖어서 땀도 안 흐르고 시원하다.
곧 왼쪽, 오른쪽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길로 들어섰는데 아무래도 비탐길인 듯하다.
"관악산은 길이 999개 있어요."
산을 제법 많이 아는 산꾼 남산우님이 말한다. 관악산 오르는 길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오늘은 우리가 1,000번째 길을 오르는 거예요."
농담이지만 우리는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길이 젖은 데다 가파르고 낙엽도 많아서 이곳으로 다시 내려오려면 꽤 미끄럽겠는데요."
"올라가긴 하지만 여기로는 못 내려오죠."
내가 하는 말에 여산우님이 맞장구를 친다.
한 20여 분 정도 올라가니 연주대가 보이고 널찍한 등산로가 나온다. 이정표도 있다.
"이제 정코스네요."
"천상 다시 내려가기 어려우니 다른 코스로 하산해야겠네요."
"그러면 정상 가면 어때요?"
"좋죠. 올만에 정상 함 밟죠!"
이래서 세 사람이 의기투합이 되어 급 코스를 대략 정한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30분이다.
"그럼 두야 대장님한테 미리 전화할게요."
내가 전화를 거니 안 받으신다. 아마도 물놀이를 하는 중일 수도 있다. 그래서 문자를 남긴다.
"두야 대장님, 저희 수선화 3명인 데요. 정상 찍고 다른 코스로 내려갈게요. 뒤풀 같이 못해 죄송해요. 담에 봬요."
답장은 "네" 딱 한 글자이다.
'혹시나 조금 서운하셨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암릉, 암릉, 기괴한 암릉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끙끙대며 오른다. 암릉 위에 서면 사방팔방 조망이 화끈하게 터진다. 사람 사는 동네와 아파트들, 기암괴석, 지나온 암릉들, 연주대 쪽 통신소와 산봉우리들과 산 그리메, 저 멀리 남산타워까지 그림 같은 풍경들이 시시각각 펼쳐진다. 처음 타보는 관악산 학바위능선이다. 너무 위험해 보이는 암릉은 생략하고 우회로를 걸어보지만 암릉을 꽤나 많이 탔다.
KBS 통신소 지나 연주대가 가까이 바라다보이는 암릉까지 왔다. 저 길로 내려온 적은 있는데 올라가는 건 좀 겁이 난다. 그래서 연주대를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안전한 계단길로 우회하기로 한다.
드디어 관악산 정상이다. 오전에 비소식이 있은 데다가 날이 더워서 그런지 정상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비스듬히 서있는 관악산 정상 돌비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쉬어간다. 아까 점심 먹으면서 남겨둔 빵과 바나나, 사과를 먹고 이온음료와 단백질음료도 마신다. 여산우님 얼려오신 얼음물이 아직도 다 안 녹아서 그 물병에 이온 음료를 따라서 시원하게 해서 마신다.
조금 있으니까 어린 남자아이가 젊은 아빠랑 왔는지 우리 옆 의자에 앉아서 아이스크림 쭈쭈바를 먹는다. 아빠가 정상에서 팔고 있는 사람에게 사서 준 모양이다.
"너 참 대단하다. 관악산에도 오르고."
우리들이 칭찬을 하니까 의기양양하다.
"저, 아홉 살이 되면 한라산에 올라갈 거예요."
"지금 몇 살인데?"
"여덟 살이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여리여리하고 여자애처럼 곱상하게 생긴 게 겨우 일곱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데, 벌써 여덟 살이란다.
"그럼 내년이네! 충분히 올라갈 수 있겠다."
덕담을 해주고 관악산 정상석이 있는 암릉을 넘어가서 사당역 쪽으로 내려간다.
하산길은 가파른 데크길이 이어지는데 풍광이 아주 좋다. 그 어디를 돌아보아도 멋스럽다. 데크길 끝나니 역시나 웅장한 암릉길이다. 내리락 오르락 한참 간다. 온몸에 땀이 촉촉하다. 사당역 가는 길 길다. 돌문바위, 마당바위 지나서 시간을 보니 오후 5시가 넘었다. 데크 쉼터에서 쉬어가니 숲에서 천연 바람이 불어온다.
"6시는 되어야 하산하겠군!"
부지런히 걸어보지만 아직도 멀다.
지난번에 셋이서 함께 올랐던 돌길 하산길이 나타난다. 선유천약수터가 나온다. 부적합수이기에 먹지는 못하고 바가지로 퍼서 얼굴을 씻고 팔에 끼얹는다. 더위가 조금 가신다. 돌길 따라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졸졸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물줄기가 약하다. 그런데 곧 알탕을 해도 좋을만한 곳이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는 겨우 발만 담그고 일어선다. 나는 벌써 아까부터 오른쪽 허벅지 관절 부위와 무릎과 발목이 연결되어서 걷기가 조금 불편하다. 암릉과 돌길을 계속 걷다 보니 조금씩 무리가 간 모양이다. 몸을 옆으로 해서 스틱을 짚고 왼발 먼저 딛고 오른발을 나중에 딛는 식으로 내려온다. 여산우님이 물파스 비슷한 것을 오른쪽 무릎에 발라준다. 잠시 시원하다.
이리하여 오늘 관악산 산행은 우리가 초반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관악산 정코스 완주를 했다. 요즘은 트랭글을 안 사용하기에 정확한 기록을 알 수는 없지만, 산행 시간이 총 6시간이니, 시속 2km 정도 되는 내 보폭으로 환산해 보았을 때 총 12km는 걸은 듯하다.
내려오면서 또 다른 산악회 분들을 만나 잼나게 산행 이야기를 나눈다. 1968년생 동갑내기들로만 이루어진 산악회란다.
"젊으니 좋겠다."
사당역에서 <코다리&황태> 집으로 들어가서 코다리찜으로 뒤풀이를 한다. 셋이서 밥도 두 공기 주문해서 나누어 먹으니 딱 알맞다. 술은 소주 한 병을 남산우님 혼자서 마시고, 우리는 콜라 한 캔을 나누어 마신다.
두야 대장님 등극산행에 와서 뒤풀이를 함께 했어야 하는데, 산을 조금 더 올라보려다가 다른 산행이 되어서 조금 아쉽긴 하다. 그렇지만 새털같이 많은 날에 다음 기회는 늘 있는 것이니 위안을 삼아 본다. 셋이서 산행해도 좋지만 때로는 좋은 해늘님들과 더 멋진 산행길에서 자주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두야 대장님 등극 축하드리고, 이쁜 가방고리 선물과 떡 찬조해 주신 세 분께 감사드리고, 함산 한 산우님들께도 고맙다. 정이 많은 해늘산악회의 발전과 두야 대장님의 산행길이 늘 복된 발걸음이 되기를 축복드린다. 뜻밖에도 특별한 산행이 된 관악산 정코스 완주팀에게도 즐거웠다고 전한다. 생각할수록 모든 것이 두루두루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