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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물봉선 꽃길과 선녀폭포

청계산+선녀폭포 우중산행

by 서순오

오늘은 베스산에서 사패산+도봉산 1일 2산을 가려고 예약했는데, 서울에 하루 종일 비소식이 있다. 암릉이 많은 데다 총 13km에 비도 온다 하니 가기가 싫다. 요즘 내가 타기에는 너무 길다. 나는 암릉도 안 좋아하는 데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1일2산은 무리이다. 더군다나 사패산도 가보았고 도봉산은 여러 번 가본 곳이다. 새로운 곳을 좋아하기에 그곳을 다시 안 가도 괜찮겠다 싶다.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편이라서 아무런 미련 없이 일주일 전에 취소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내가 가입한 산악회에 올라온 산행지를 탐색해 보니 알파산에 청계산 산행이 있다. 청계산은 여러 번 가봤지만 계곡이 시원해서 여름 산행지로 가볍게 걷기에 좋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주1산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산행을 쉬는 것보다는 가는 게 좋다는 생각에 신청을 한다. 리딩 대장님 포함해서 8명 참석인데 그늘길로 살방살방 걷고 계곡에서 알탕도 해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본다.


오전 10시 30분 청계산입구역에 도착했다. 집결은 오전 11시, 2번 출구 나가서 공용주차장 옆 정자이다. 화장실 들렀다가 모자 챙기고 밖으로 나가니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진다. 에스컬레이터 옆 난간에 배낭을 내려놓고 스패츠를 차고 우비를 입는다. 스틱도 꺼내서 들고 간다.

'오늘 날씨공주 약발도 다 떨어졌네! 그렇지만 산행할 때만이라도 비가 안 오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혼잣말을 하면서 빗속을 걸어서 약속 장소로 간다. 알파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원래는 8명이 오기로 했는데, 3명이 취소를 해서 모두 5명이란다.

'아주 오붓하겠군!'

나는 사람이 많은 것보다는 적은 게 좋고, 또 혼산도 즐기는 편이라서 10명이나 5명 이내 산행일 때가 좋다. 여러 명이 함께 가더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혼자서 조용히 초록 숲길을 걸을 때, 그때가 가장 좋다. 자연 속에서 새소리, 물소리, 풀벌레소리, 바람소리, 나뭇잎과 풀이 흔들리는 소리, 빗소리를 들으며, 예쁜 꽃과 나무와 버섯들과 눈 맞추며 걷을 때, 내 영혼몸 가득 엔도르핀이 솟아 차오른다.


서로 인사를 하고 출발한다. 오늘의 리딩 하얀 대장님은 처음 만나는 여산우님인데, 목소리에 카리스마가 담겨 있다. 남산우님 산에님도 처음이고, 해피소피아님과 산천초목님은 몇 번 함산 했던 산우님들이라 무지 반갑다.


비가 조금씩 오고 있어서 다들 배낭 커버를 씌우고 비옷 또는 우산을 펼쳐 들고 걷는다. 다리를 지나 청계산 초입으로 들어서니 물소리가 요란하다. 밤에 비가 내린 데다 지금도 비가 오고 있어서 수량이 풍부하다. 우중산행이라 조금 불편하긴 해도 이따 계곡에서 물놀이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습도가 높고 여전히 여름 더위가 아주 가시지는 않은 상태라서 땀은 많이 흐르지만 걸을 때 바람도 아주 시원하게 불어주어 산행하기 좋은 날이다.


청계산 계곡 초입에서 한 번도 안 올라본 길로 들어선다. 돌길이 조금 가파른데 곧 잣나무 숲길이 나온다. 솔방울처럼 생긴 하얀 잣이 땅에 떨어져서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이거 주워 가요. 비싼 거예요."

리딩 대장님이 잣을 툭 치며 굴려주기에 나도 스틱으로 툭 쳐보지만 줍지는 않는다. 까는 게 힘들어서다. 아니다. 나는 주관이 있다.

"사 먹고 말지. 나는 산에서 아무것도 채취는 안 한다"

"혹 산삼 같은 게 발견되어도?"

자문해 본다.

"산삼을 만난다 한들 알아볼 수나 있을까?"

나는 한두 번 눈을 맞추고 카메라에 담아 AI에게 물어봐서 이름을 알아둔 꽃들도 또 산에서 보면 못 알아보는 수준인데 어찌 산삼을 알아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피식 웃는다.


암튼 가파르게 올라가 보니 진달래능선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쉼터이다. 무덤 있는 쪽으로 오르면 금방 갈 길인데 조금 더 힘들게 오른 셈이다. 진달래능선 조망터가 나온다.


비는 그쳤다. 비옷을 벗고 우산도 접어 넣고 걷는다. 가파른 길 아니고 완만한 그늘길로 살방살방 여유가 있다.


소망탑으로 내려가서 데크길 위에 올라가서 돗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한다. 나는 밥, 쇠고기조림고추볶음, 오이지무침, 사과를 싸 갔고, 다른 산우님들은 샐러드, 샌드위치, 옥수수, 김밥, 빵 등을 싸 왔다. 이야기 나누며 먹다 보니 배가 너무 부르다.


점심 먹고 다시 산행 시작해서 하얀 대장님과 남산우님 두 분은 앞서가고 뒤에서 나와 해피소피아님이 함께 걷고 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오늘따라 몸이 무거운 데요."

"그러게요. 습해서 그런 듯요."

앞에서 걷던 해피소피아님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어? 내 모자? 아까 거기 우리 쉬었던 데 두고 온 것 같아요."

갑자기 해피소피아님이 뒤돌아서 모자를 찾으러 간다. 선두팀이 암릉조망터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나는 곧 만난다.

"모자 잃어버렸대요. 찾으러 긴다고 내려갔어요."

해피소피아님은 한참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리딩 대장님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단다.

"아마도 핸드폰이 가방 속에 있는 듯요."

암릉 조망터에서 운무가 펄펄 날리며 산 위로 퍼지는 걸 바라보며 사진도 찍어본다.

"다시 올라오기 뭐 하다고 그냥 내려간대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 네 사람이 된다.


구불구불 돌고 돌아서 혈읍재 가기 전에 옛골 방향 선녀폭포를 향해 내려간다. 갑자기 운무가 확 밀려오면서 어두워지더니 세찬 비가 쏟아진다. 또 배낭 커버를 씌우고 다른 이들은 우비를 입는데 나는 우비를 안 입고 걷는다. 어차피 물놀이를 할 거니까 옷은 젖어도 상관없다. 왼쪽 가슴께에 배낭 줄에 매단 작은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만 젖지 않게 왼팔로 덮고 오른쪽 손만 스틱을 짚으면서 내려간다. 앞에서는 산에님이 후미인 내가 오나 안 오나 살피면서 천천히 걷는다.


오늘 산행길에는 유난히 물봉선이 많다. 길 양쪽으로 무리 지어서 촉촉이 비를 맞고 함초롬히 피어있는 수줍은 분홍빛 물봉선이 참 예쁘다. 물봉선 산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가에 핀 한두 송이도, 무리 지어 핀 것도, 쓰러진 고목과 어우러진 물봉선도, 이렇게도 저렇게도 담아본다. 그동안 많은 산행을 했지만 이렇게 많은 물봉선을 만나는 건 처음이다.


어느 정도 내려오니 계곡 물소리가 반긴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물놀이를 해도 좋을 만큼 계곡물이 풍부하다. 비가 온 덕분이다. 땀을 적당히 흘리며 내려왔기에 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지만 사진만 담고 그냥 내려온다. 우리는 목적지가 선녀폭포이다.


선녀폭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나는 가장 뒤에서 혼자 걷고 있었는데, 산천초목님이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내가 길을 잘 모를까 봐서 그런 듯하다. 그렇지만 이곳은 거의 5번가량 와본 곳이라서 길을 잘 안다.


드디어 선녀폭포다! 우렁차게 쏟아지는 선녀폭포에는 우리 알파산 네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다. 늘 사람이 많은 곳인데 한적해서 좋다. 산에님 먼저 물속으로 풍덩! 그리고 나도 물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간다. 둘 다 옷을 다 입은 채로다. 리딩 대장님은 여벌옷을 안 가져와서 윗옷을 적시면 안 된다며 반바지 아래만 젖게 들어가고 산천초목님은 아예 물속에 안 들어간다. 나는 혼자서 신났다. 여름 산행 중에 계곡이나 폭포에서 노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물 밖으로 나와서 남은 간식을 나누어 먹는다. 산에님 사 오신 옥수수가 찰지고 맛있다.


서로 보폭이 달라 선두팀 따로 나도 따로, 그래도 새로운 코스가 많은 데다 시원한 물놀이까지 산행은 참 좋았다.


옛골 쪽으로 하산하니 그때 또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배낭 커버 씌우고 우산을 꺼내 들고 걷는다. 남산우님 두 분은 한참 앞서 가버리고, 앞에서 가고 있던 리딩 대장님이 내 사진을 한 장 찍어준다. 오늘 산행은 이것으로 끝이다!


아, 그런데 모두 배가 불러 밥 먹는 뒤풀이는 안 하고 가기로 했는데, 헤어지기 아쉬워서 버스 타고 가서 청계산입구역에 내려 차를 마시고 가기로 한다. 산에님이 따뜻한 커피와 아이스음료로 섬겨주신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한참 나누다가 나는 먼저 일어선다. 제일 집이 멀어서이다. 리딩 대장님과 함산 한 산우님들에게 감사하다.


참, 해피소피아님과 통화를 해보니 모자는 찾았단다. 값이 꽤 나가는 모자인데, 어느 분이 허리춤에 찼다가 주인이라는 말에 돌려주었단다. 내려간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물봉선이무리 지어 피어있는 청계산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다!
처음 가보는 길, 여기로 올라간다.
잣나무 숲길
소망탑 근처 데크 쉼터에서 점심식사
정자 쉼터에서 쉬어간다.
청계산 매바위와 매봉 오르는 가파른 데크길이 보이지만, 우리는 왼쪽 완만한 길로 간다.
운무가 폴폴 일어난다.
암릉조망터에서 또 쉬어 가기
비가 내려 우의를 입고 걷는다.
수국, 등골나물, 담쟁이, 꿩의다리, 털여우꼬리풀
물봉선 꽃길
계곡물이 유혹하지만 사진만 찍는다.
선녀폭포 내려가는 길
청계산 선녀폭포
선녀폭포에서 물놀이
원시림 같은 천연의 길
청계산 마당바위 계곡
신기한 버섯
처음 걸어보는 데크길
이정표
봉숭아,칡꽃, 수세미, 밤, 뚱딴지(돼지감자)
옛골 내려오니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
설악초. 맨드라미
청계산입구역 카페에서 차담의 시간, 섬겨주신 산에님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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