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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이버섯 백숙과 송이버섯 죽으로 몸보신 산행

관악산

by 서순오

돌이 많아서 무릎에 무리가 가기에 조금 거리를 두었던 관악산을 요즘 자주 가게 된다. 여기저기 찾아봐도 관악산 공지를 올리는 이들이 많아서이다.

"안전을 위해서는 혼자보다는 몇 명이라도 함께 가는 것이 더 좋다."

자주 혼산을 했었지만 요즘 산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조금 그렇다.


그동안 나는 참 겁이 없었는데 서울 쌍문동에 살 때 한 번 동네 산길에서 강도를 만난 적이 있다. 저녁에 가족들과 외식을 할 예정이어서 현금을 좀 찾았고, 빌린 책을 반납하고 가려고 도봉정보도서관에 먼저 들렀다. 오후 5시 경이어서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고 도봉정보도서관 가는 길은 도로길로 가면 30여 분 빙 돌아가지만 산길로 가면 10여 분 정도 걸리는 지름길이다.

"빨리 갔다 와야지."

약속 장소는 쌍문역 근처 식당이어서 도봉정보도서관에서 돌아올 때도 지름길인 산길로 왔다.


그런데 헬스기구들이 놓여있는 곳에 남자 한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앉아서 운동을 하고 있다. 조금 께름찍했지만, 뒤로 돌아가기도 뭐한 게 그 운동기구들은 산길 한복판에 있다. 막 그 남자를 지나왔는데, 뒤에서 나를 잡아당기더니 과도를 내민다. 섬뜩했지만 갑자기 위험한 일을 당할 때는 말을 많이 시키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서 먼저 말을 시킨다.

"돈이 필요한가요? 10만 원 뿐이 없어요. 다 드릴게요."

내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자 그 남자는 내 팔을 단단히 움켜쥐면서 칼은 밑으로 내린다. 나는 돈을 빼서 건네면서 또 말을 한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죠?"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그리고 나는 그 사람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발걸음을 빨리해서 가족들과의 약속 장소로 향한다.

"큰일 날 뻔했네. 경찰에 신고해!"

가족들에게 얘기를 하니 신고하라며 난리였지만 나는 번거로운 게 싫어서 그만 두었다.

"필요한 사람에게 10만 원 적선했다고 생각을 하자."

그후 나는 혼자 산길 걷는 걸 무서워하게 되었다.


물론 그후로도 혼산을 자주 했고, 몇 년 전 어느 산악회에서 한여름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 광청종주를 한다기에 참여했다가 뒤처져서 혼자 하오개고개와 국사봉과 이수봉을 오른 적이 있다. 그때도 그리 무섭지는 않았는데, 요즘 더 겁이 많아졌다. 혼산을 할 때 산에서 혼자 오는 남자를 만나면 무섭다. 그래서 산에 갈 때는 지갑이나 돈은 아예 안 가지고 간다.


관악산 산행은 두야 대장님 리딩에 참여 인원은 총 5명이다. 신청 인원이 더 많았는데 다들 하루 전 더 고된 북한산 산행을 하고는 힘들다며 오늘 산행을 취소했단다.

"5명이면 오붓하지 뭐!"

나는 위안을 한다.


관악산역에서 산골지기님 차로 이동한다. 5명이라 자리가 딱 깔맞춤이다! 곧 밥터를 찾아 산길로 들어선다.

"오늘은 몸보신 산행이예요."

"그것도 좋죠!"

그렇지만 나는 외국에 사는 딸이 돌쟁이 외손녀를 데리고 10여 일 집에 왔다가는 바람에 두 주째 산행을 쉬었다.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3주 쉬면 또 꾀가 난다. 산행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산행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서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산행이 힘들어지는 요즘은 더 그렇다. 무어든 쉬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오래 간다.


한 10여 분 걸었을까? 다리 건너 아주 좋은 밥터를 찾아낸다. 산골지기님은 대형 군용배낭에 온갖 살림도구와 먹거리를 넣어 가지고 오셨다. 커다란 압력밥솥에 코펠, 왕닭 한마리, 자연산 능이버섯, 송이버섯, 한약재까지 두루 산우님들 몸보신 할 재료들을 펼쳐 놓으신다. 전력님은 전복무침에 달디 단 왕꿀배 한 개를 깎아 놓으시고, 산새 자문위원님은 녹두전에 맛깔스런 김치, 나는 약밥에 참외를 꺼내 놓는다. 두야 대장님은 녹두전을 데워주신다. 산골지기님 직접 담그셨다는 마가주가 또 인기이다. 나는 술을 안 먹지만 궁금해서 조금 따라 달래서 맛을 본다. 이것도 은근한 한약향이 나는 음료 같다.


한 30여 분 지나니 치지지이익! 코가 먼저 알아보는 건강식 한약 냄새 능이버섯 백숙 다 되었다는 소리가 난다.

"햐! 정말 대단하시다!"

압력밥솥 뚜껑에서 김을 빼니 금방 우리들을 안개 속으로 몰아넣는다. 김을 쐬니 피부가 뽀송뽀송 자연미인도 되겠다.

"짜잔~. 능이버섯 백숙 몸 보신 시간이닷!"

모두들 허겁지겁 먹는다. 내가 제일 잘 먹는다. 까만 능이버섯이 고기보다 맛있다. 산골지기님은 드시지도 않고 그새 또 송이버섯 넣고 죽을 만드신다. 송이를 죽에 넣기 전에 몇 개씩 집어 먹어보니 햐! 이건 또 송이향이 혀끝과 코끝을 자극한다. 절로 건강해지는 순간이다. 능이버섯 백숙과 송이버섯 죽까지 다 먹고나니 두야 대장님이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커피를 타주신다.

"커피는 또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관악산 커피전문점 맛이닷!"

나는 카페인에 민감해서 낮에 커피 먹으면 밤에 잠이 안 온다. 그래서 정오 이후 오후에는 커피를 거의 안 마시는데 오늘은 조금 따라 마신다. 오전 11시에 만나서 오후 1시까지 장장 2시간 몸보신 밥타임이 길었다.


"이제 조금 올라갔다 내려 오죠! 무너미고개로 해서 팔부능선까지요. 산골지기님 차에 무거운 배낭 갖다 두시라 하고요. 우리 먼저 올라가요. 2시간 정도 괜찮죠?"

오늘의 리딩 두야 대장님이 얘기한다.

"좋아요."

우리는 찬성을 한다.

"그런데 2시간 걸으면 산골지기님 너무 오래 기다리시는 데요. 배낭 차에 두고 올라오시라고 해야 겠네요"

올라가다 말고 두야 대장님이 산골지기님과 통화를 하신다. 우리는 마중하러 밥터 근처 다리까지 다시 내려간다. 곧 산골지기님이 올라오신다. 아, 그런데 배낭을 그대로 메고 오셨다.

"너무 무거울 거 같은 데요."

그리하여 약수터 지나서 잠시 쉬다가 두야 대장님, 산골지기님, 산새 자문위원님, 세 분은 거기에서 그냥 내려 가신단다. 전력님과 나는 따로따로 원하는 산행을 해보기로 한다. 전력님은 삼성산 쪽으로 오르고, 나는 원래 예정대로 관악산역에서 차로 이동 후 밥터로 왔으니 거기서부터 무너미고개~서울대관악수목원~안양예술공원 코스로 진행하기로 한다. 혼산이다!


무너미고개 지나 서울대관악수목원과 안양예술공원 쪽으로 걷는다.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로 아주 좋다. 서울대관악수목원은 통과할 수가 없어서 우회로를 걷는데 빨간 '만남의 다리'가 멋스럽다. 거기서부터는 약간의 오름구간도 있고, 전망데크가 몇 군데 있다. 주변 산 봉우리들과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를 조망해볼 수 있다.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간혹 사람들이 둘씩 셋씩 혼자도 지나가지만 사진 부탁은 안 한다. 조용히 사색하며 걷는다. 오롯이 나만 있는 이 공간이 참 좋다. 데크길 오름길에서, 전망 데크에서, 태국 젊은이 넷을 만난다. 함께 여행을 왔단다.

"사진 찍어줘요?"

내가 핸드폰을 내미니 먼저 이렇게 물어본다.

"네."

덕분에 혼산 기념샷을 남긴다. 이들과는 자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외국인 남자들이라서 살짝 경계를 했지만 그들과 함께라서 또 심심하지 않았다. 오늘 걸은 게 1만 6천보가 넘었다. 나는 보통 시속 2km이니까 약 8km를 걸은 셈이다. 1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4시 30분 하산 완료했으니 3시간 30분 소요되었다.


안양예술공원에서 20여 분 걸어서 2번 버스 타고 안양역에 하차, 지하철과 버스로 환승해서 귀가했다. 그런데 마침 또 급행이 와주어서 엄청 빨리 집에 도착했다. 몸보신 건강식에 만족할만한 혼산에 빠른 귀가까지 행운이 넘친 날이다.


참 남은 음식 버리는 게 아까워서 내가 싸 왔다. 귀한 능이버섯 백숙에 송이버섯 죽을 내일까지도 먹을 수 있겠다. 공지해주신 두야 대장님, 섬겨주신 산골지기님, 맛있는 시간 함께한 산새 자문위원님, 전력님, 모두모두 감사하다. 나중 또 좋은 산길에서 만나길 기대한다.

밥터를 찾아 가는 중~.
등골나물 꽃밭에서
능이버섯 백숙과 송이버벗 죽으로 몸 보신
무거운 군용배낭을 메고 턱걸이를 해보이는 산골지기님
약수터 지나 세 사람은 그냥 내려 간다 하고 둘은 산행을 계속하기로 한다.
걷기 좋은 길과 계곡길
이정표
고들빼기, 단풍이 드는 중~
서울대관악수목원
서울대관악수목원 우회로 정자 쉼터와 만남의 다리
데크 오름길과 통나무 계단 로프 오름길
전망데크에서
주변 조망
안양예술공원 맨발산책로
안양예술공원 노래하는 사람들,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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