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요즘 왜 자주 관악산에 가게 되는 걸까?

관악산 산행 : 문원폭포+케이블카 능선+용마계곡

by 서순오

자랑산 산행을 얼마 만에 참여하는가? 헤아려보니 5개월 만이다. 올해 5월 23일에 집에서 집결지까지 3시간이나 걸리는 도봉산 산행을 다녀온 뒤에 집결지가 너무 먼 곳은 안 가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했다. 그리고는 수원이 집결지인 산악회 밴드를 검색해서 두 군데에 가입을 하고는 다녀보려고 했다. 한 곳은 나보다 한 10살 정도는 더 젊은 이들이 많은 산악회인데, 내가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다른 한 곳은 또 너무 나이가 많은 분들이 주를 이루는 산악회로 대체로 산행을 하면 정상 안 찍고 한 5km 이내로 2시간 정도 걷는다. 하나는 너무 세고, 하나는 너무 수월하다. 이래저래 가입만 해놓고 산행은 몇 번 못했다.


자랑산 이전에 가입한 산악회들이 있어서 들어가 살펴보니 근교산행도 많고 매달 한 번씩은 정기산행으로 원정산행도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곳을 좋아하는 나는 그동안 가본 곳은 건너뛰고 한 번도 안 가본 곳이 나올 때는 참석을 했다. 그래도 1주1산은 꾸준히 해오고 있는 중이다. 할 수 있는 한 산행은 계속해볼 생각이다.


한번 가본 산을 잘 안 가는 내가 최근 들어 관악산을 자주 간다. 8월에도 관악산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한 번은 정상도 찍고 12km 정도 걸었다. 10월 들어서도 벌써 두 번째 산행이다. 지난주에도 관악산에서 자연산 능이버섯 백숙과 송이버섯 죽으로 몸보신 산행을 했다. 관악산을 왜 자주 가게 되는 걸까? 마무래도 이상하다.


"너무 안 가면 얼굴 잊어버린다."

추석연휴에 또 관악산이라서 좀 그랬지만, 이번 주에도 참여를 해야 1주1산 이어가기가 좋겠다는 생각에 자랑산 관악산 산행에 신청을 한다. 별다섯 리딩 대장님은 "천천히 살방살방 가 달라"는 내 요청에 "후미도 잘 챙겨주신다"라고 했으니 안심하고 가도 되겠다.


참석 인원은 대장님 포함 모두 16명이다. 자랑산에 자주 갈 때 함께 근교산행을 했던 산우님들도 많이 오신다. 집결지는 과천정부청사역 7번 출구, 오전 11시이다. 시간을 여유 있게 갔더니 30분 전에 도착했다. 늦어서 선두팀을 만나지 못한 채 산행을 했었던 도봉산의 기억을 떠올리며 집에서 일찍 출발을 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산우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

"더 젊어진 것 같아요."

서우님 말이다. 나는 요즘 살도 찌고 배도 나오고 갈수록 기력이 달리는데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인다니 다행이라 여긴다.


과천정부청사역에서 관악산 문원계곡 초입 산불감시초소로 가는 길에는 은행 알이 땅바닥에 엄청 많이 떨어져 있다. 도로길에도 전나무 숲길에도 수북하다. 어떤 아저씨는 아예 대야와 쓰레받기를 가져와서 은행 알을 주워서 담고 있기도 하다. 은행 알에서는 냄새가 고약하게 나서 주워 담는 것은 쉽지 않아서 산우님들은 '지뢰밭'이라면서 가능하면 밟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지나간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별다섯 대장님 소개와 서로 인사를 한다. 출발 전에 기념사진도 남긴다. 산불감시초소 오른쪽으로 오르니 이전에 한 번 와봤던 길이다.


올여름 8월 폭염에 찾았던 문원폭포는 물이 거의 없이 쫄쫄 가늘게 흘러내렸다. 그런데 오늘 보니, 하루 전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문원폭포가 아주 대장관이다. 8월에 왔을 때는 하부 문원목포만 보고 그 옆에 돗자리를 펴고 물놀이를 하고 왔는데, 오늘도 똑같은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한다. 나는 여기가 바로 문원폭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는 하부 문원폭포란다. 점심 먹고 조금 더 올라가니 상부 문원폭포가 나온다. 3단으로 흘러내리는 문원폭포가 우렁찬 물소리를 내며 세차게 떨어진다.

"햐! 정말 멋지다. 관악산에 이런 폭포가 있다니!"

바로 위쪽으로는 절이 있는지 폭포 옆 절벽에 '정숙'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사람들이 폭포를 보면서 감탄을 하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요란하게 즐기는 모양이다.

"산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소리칠 자유도 없단 말인가?"

나는 예전에 산 높이 올라가서 "야호!" 소리치면 메아리가 울려 퍼졌던 일을 떠올린다. '정숙'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암벽 사이로 좁은 돌계단이 있어서 올라갈 수가 있겠는데 가파른 데다가 젖어서 위험해 보인다. 아마도 연주암 오르는 지름길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아까 점심 먹었던 장소로 다시 내려가서 암릉길 철난간을 잡고 오른다. 일명사지 지나서 케이블카 능선으로 접어든다. 울퉁불퉁 암릉길이다. 암릉길은 대체로 조망이 좋은데 청계산도 광교산도 보이고 과천 시내도 보인다. 산봉우리들과 산마루금, 아파트들의 어우러짐이 한 폭의 그림이다. 조물주 화가는 그 무엇을 그려도 작품이다. 하늘은 티 없이 맑고 푸르고, 흰 구름도 낮게 피어나 한가롭다. 이런 그림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산을 오르는 이들이다.


나는 '왜 산에 오르느냐?'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하늘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라고 답하고 싶다. 답안이 꼭 한 가지일 필요는 없다. 다른 답을 또 쓴다면 '발아래를 내려다보기 위해서'라고, 아니 '내려오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예전에 쓴 수필 중에 <위로 아래로>란 글이 있다. 어렸을 적에 아이들 키우면서 영어를 가르치려고 자주 틀어주었던 영어 동요 <The people on the bus go up and down>에서 따온 제목이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위로 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인데, 우리의 인생도 바로 이렇게 '위로 아래로'를 반복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높이 오른 자도 너무 우쭐 댈 것이 없고, 아래로 내려온 자도 너무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한 번은 위로 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 산의 높이가 얼마나 높은가 낮은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태어나는 순간 모두가 동일한 선에서 출발해서 아무리 높이 오른 사람이라도 결국은 죽음의 자리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여기에다 나는 기독교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죽음이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인 영원한 하늘나라로 들어서는 관문임을 이야기했다.


케이블카 능선에는 우람한 암릉길이 오르기는 좀 어렵지만 멋스럽다. 우회로도 있어서 조금 더 쉽게 오를 수 있다. 암릉 위로 올라서면 그 어디에서도 인생샷이 나온다. 기이한 소나무들도 군데군데 암릉길 위에 서서 우리를 맞이한다. 두꺼비 바위, 새 바위를 배경으로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자랑산 현수막을 들고 단체사진도 찍는다.


어느새 하늘 높이 설치되어 있는 철탑을 지나 연주암이다. 이 철탑이 케이블카 능선의 상징일 수도 있겠다. 관악산에는 연주암이 대표적인 절이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사람이 아닌 다른 미물로도 태어날 수 있다는 교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불교인이 되지 못한 것 같다. 그에 비한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보다 훨씬 좋은 최상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기독교 교리가 내게는 마음에 든다. 그것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해서 그곳에 이를 수 있다. 믿음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기에 믿는 것도 안 믿는 것도 다 자기 몫이고 복이다.


연주암에서 잠시 쉴 때 서우님에게 했던 이야기가 있다.

"내게는 절에 대한 아픈 상처가 있어서 나는 절을 안 좋아해요. 우리 엄마가 내가 사춘기에 들어서던 여중1학년 때 아빠와 싸운 뒤 집을 나가서 신림동 비구니승들이 사는 절에서 1년 간이나 밥을 해주는 보살로 지냈어요."


여기까지 이야기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더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엄마는 소식 두절 상태로 있다가 발신자 표시가 없는 편지만 한 통 보내왔어요. 우표에 찍힌 소인을 보고 아빠가 엄마를 찾아냈고 우리 집은 모두 서울로 이사했어요. 서울로 이사한 뒤 나는 바로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요."


엄마는 서울로 이사한 후에 나를 절에 자주 데리고 갔기에 나는 절에서 잠을 잔 적도 있다. 그리고 엄마가 절에 갈 때마다 떡 같은 걸 하고 과일도 사서 가져갔기에 그걸 머리에 이고 달빛을 받으며 둘이서 저녁 산길을 오른 적도 여러 번 있다.

"그 절 이름이 무엇일까? 관악산에 있는 절인 것 같은데."

꼭 물어봐서 한 번 가보고 싶다.


이런저런 추억이 있는 관악산에 요즘 들어 자주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듯하다. 엄마가 이곳 산에서 얼마나 우리 형제자매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어서 울부짖었을까? 아직 젖도 떼지 않은 남동생까지 우리 네 남매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때로는 툇마루에 웅크리고 앉아서 달을 보면서 엄마를 기다리면서 구슬프게 노래 부르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 엄마 어서 빨리 돌아와요.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머리에 오늘도 우리들 사남매는 눈물밥을 삼킨답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가 그대로 잠이 들기도 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 보면 눈곱도 끼고 눈은 퉁퉁 붓고 입에 침도 흘리고 팔에는 머리를 벤 자국이 빨갛게 났었다. 우물로 가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씻고는 번쩍 정신이 돌아오곤 했다. 슬픈 추억이지만 돌아보니 아름답다. 추억은 그렇다. 희로애락애오욕 모든 것이 시간이라는 여과기를 거치면 모두 다 아련하고 애틋하다. 우리 사람이 생각하는 동물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연주암에서 내려오는 길은 데크길이 많다. 하얀 작은 솜사탕 같은 꽃송이들이 모여서 핀 등골나물이 데크길 양쪽으로 예쁘다. 군락지인 듯한데 꽃은 그리 많지 않다. 구절초나 개망초꽃처럼 무리 지어 피어 있으면 더 이쁠 것 같은데 조금씩만 피어서 아쉽다.


용마계곡은 계속 시원스러운 물소리를 들으며 산행할 수 있다. 잘 조성된 데크길과 너덜길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걷기는 좋다. 하루 전 내린 비 덕분에 풍부한 수량으로 계곡 산행이 싱그럽다. 자유롭게 힘차게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길을 그저 바라보면서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찌꺼기와 불순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힐링 산행이다.


한참 가고 있는데 선두팀 일행 꼬리가 안 보인다. 내 앞에는 건강하자님, 뒤에는 줄곳 후미를 보며 오시는 푸른솔님인데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한다.

"전화해봐요?"

"그냥 둬요. 아무래도 저 위 능선길로 간 것 같은 데요."

"이제 와서 저기로는 못 올라가요."

"그러게 한참 내려왔잖아요."

잠시 쉬면서 셋이서 서로 한 마디씩 한다.

"어차피 이산가족 되었으면 따로 내려가는 수밖에요. 이쪽 길로 가면 과천향교 나온대요."

"오늘 산행 도착지가 과천향교니까 거기서 만나면 다행이고, 못 만나면 그냥 귀가하는 거죠. 우리는 술도 못 마시고 뒤풀이는 안 하고 갈 거라서요."

나와 건강하자님이 한 마디씩 하니까 푸른솔님은 듣고만 있다. 아무래도 뒤풀이가 아쉬운 모양이다.


그런데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하산 700여 m 정도를 남겨 둔 지점에서 우리 후미팀은 뜻밖에도 선두팀을 만난다. 모두들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일어선 상태이다.

"어서 가서 발 담가요."

별다섯 대장님의 말에 우리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계곡 물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얼굴도 닦는다. 시간이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팔도 씻고 머리에도 물을 묻혀서 매만졌을 것 같은데, 그냥 잠시 후에 일어선다. 단체가 움직일 때는 선두를 따라가야 하기에 느린 사람들은 늘 그렇다. 그래도 무척 시원하다. 발만 담가도 피로가 쫙 풀리는 게 신기하다. 찬물족욕의 효과이다.


관악산 산행은 과천정부청사역 7번 출구~문원폭포~케이블카 능선~연주암~용마계곡~과천향교 코스로 총 8km, 5시간 소요(점심, 휴식 시간 1시간 포함) 되었다. 휴식과 점심시간 1시간이니 여유 있게 걸은 셈이다. 근래 들어서는 암릉길이라 조금 고되기도 했지만,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고, 산우님들 화사한 웃음소리에 물소리도 싱그러워서 보람찬 산행이었다. 안전산행 리딩하면서 예쁜 사진 담아주신 별다섯 대장님과 즐겁게 작품사진 남겨주신 콜럼보 대장님과 인테리어 지기님, 함산 한 산우님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특별히 하산길에 따로 떨어져서 함께 걸은 처음 오셨다는 건강하자님과 후미 봐주신 푸른솔님에게 더 많이 감사하다. 담에 또 좋은 산길에서 만나길 바라본다.

수북이 떨어진 은행 알 줍는 사람
늙은 호박
산행하기 전에 문원계곡 초입 산불감시초소에서 단체사진
문원계곡 다리
하부 문원폭포
하부 문원폭포 옆에서 맛있는 점심식사
상부 문원폭포
상부 문원폭포에서
상부 문원폭포 옆 돌계단길
여기로 다시 내려와서 암릉길로 오른다.
게이블카 능선에서 주변 조망
케이블카 능선 멋진 임릉 위에서
두꺼비 바위에서
새 바위가 보이는 두꺼비 바위 옆에서 단체 사진
새 바위 조망
케이블카 능선
등골나물
용마계곡과 데크길
이끼 낀 바위와 꽃과 단풍
용마계곡에서 물놀이
시화가 있는 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능이버섯 백숙과 송이버섯 죽으로 몸보신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