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은근슬쩍 멋진 관악산 암릉길을 세 코스나 완주

관악산 : 선유천 국기봉+파이프 능선+케이블카 능선

by 서순오

알파산에서 관악산 산행을 또 간다. 물 건너 사는 울 딸이 돌쟁이 외손녀 데리고 와서 10여 일 우리 집에 있다 가는 바람에 두 주간 쉰 산행을 한 주간에 두 번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사실 공지에 올라온 걸 보니 약 6km라고 해서 좀 수월하겠다 싶었다. 로버 대장님과는 처음 산행이라 리딩 스타일을 잘 알지 못했다. 아, 그런데 이런 암릉 산행을 이렇게나 힘들게 끝장나게 해 본 것은 근래에 들어서는 처음이다. '약 6km, 산행 코스는 이리저리 초보답게'라고 적혀 있어서 완전히 낚였다고나 할까? 파이프 능선은 한 번 타 보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암릉 위험 코스가 한 군데 있어서 이래저래 피하고 있는 상태였다. 파이프 능선이 코스에 적혀 있었다면 아마도 참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엊그제 수요일에 관악산을 다녀왔는데, 내게는 1주2산 이상을 너무 고되게 하면 무릎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조심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수요일에는 자랑산에서 16명이 문원폭포~케이블 능선~용마계곡 코스로 약 8km, 오늘은 알파산에서 5명이 선유천 국기봉~파이프 능선~케이블카 능선 코스로 약 8km 이상을 걸었다. 오늘 관악산 산행은 암릉길로만 세 군데나 탔다. 한 번 가본 선유천 국기봉도 한 번도 안 올라본 암릉길로 리딩하기에 따라갔고, 자꾸만 피하던 파이프 능선을 얼결에 올랐고, 지난주에 왔던 케이블카 능선은 반대로 걸었다.


로버 대장님은 은근 스리슬쩍, 암릉 위에서는 '여기 밟아라, 저기 짚어라' 하시며 아주 세심하게, 때로는 느린 나보고 선두를 서라고 하다가, 어느 순간 조금 길이 좋다 싶으면 앞장서서 내리 달리신다. 아주 리딩의 고수이시다! 로버 대장님 산행에서는 참여한 회원이 아무리 초보더라도 자기 수준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산행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산행 후에는 다소 힘은 들었지만 잘 해내었다는 기쁨에 뿌듯하고 대견하다 여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관악산의 멋진 곳을 한 번에 몰아서 리딩해주신 로보 대장님을 비롯해서 암릉 산행을 즐기시는 함께 한 산우님 세 분 모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무릎 보호대까지 차고서도 가장 느렸지만 염려했던 대로 바위 위를 많이 걸어서 무릎과 허리가 조금 뻐근하다. 스틱을 짚고 워낙 조심조심 걸어서 아픈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긴 하다.


다만 한 가지, 사방팔방 조망이 좋은 선유천 국기봉에서 개인 사진, 단체 사진을 찍는데, 자세히 보니 태극기 오른쪽 끝부분이 다 찢어져서 너덜거린다. 지난 8월에 왔을 때는 괜찮았는데, 비바람에 펄럭이며 몸부림치며 제 몸을 찢기운 듯하다.

"아무래도 관악구청에 민원을 넣어야겠어요. 태극기 갈아서 달으라고요."

내가 안타까워서 한 마디 하자 다른 산우님이 말을 받는다.

"다른 봉우리 태극기들도 잘 찢어진 대요."

그렇다면 산봉우리에 높이 매다는 태극기들은 좀 더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 달면 좋지 않을까 싶다. 비바람, 폭염과 폭우, 폭설과 한파에도 잘 견디는 그런 재질로 말이다. 기왕 산봉우리를 지키며 나라의 위상을 세우는 태극기이니 만큼 산을 오른 사람들이 온전한 모습의 태극기 아래에서 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파이프 능선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다. 파이프 능선을 오르며 바라보는 풍경이 아주 멋지고 암릉 오르는 수준이 그 정도이면 자주 올라도 좋겠다 싶다. 특히나 오늘은 비 온 뒤 개인 날의 산행인 데다 계절이 가을로 넘어가는 자락이라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어서 암릉 타는 재미가 더 쏠쏠했다. 바람을 맞으며 발아래 시원스레 펼쳐지는 인간 세상의 풍경을 바라보며 암릉 위에서 쉬어가는 순간들은 그야말로 천상의 세계가 아니고 무엇이랴!


관악사와 연주암 지나 케이블카 능선으로 들어선다. 참, 나는 지금 관악산에 있는 절을 한 곳 찾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우리 친정 엄마가 약 1년간 지냈던 절이다. 출가를 생각한 건 아니고, 힘든 세속을 떠나 그곳에서 그냥 마음 수련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촌시골에서 여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봄이었는데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엄마는 집을 나갔다. 1년 뒤 엄마를 찾았고 우리 집은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 후에도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엄마는 절에 자주 다녔기에 나도 따라갔다. 실은 나는 이사오자마자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아직 믿음이 약한 상태였다. 엄마는 절에 갈 때마다 이것저것 떡이며 과일이며 나물 등을 보자기에 바리바리 싸서는 머리에 이고 갔는데 나도 그것을 나누어서 같이 이고서 어둑어둑한 산길을 달빛을 받으며 올라갔다. 나이가 드신 엄마는 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신다. 물론 나도 모른다.


그런데 관악사를 지날 때 절 앞마당 기와가 올려진 담장을 보니 딱 그때 보았던 아래쪽 장면들이 펼쳐진다.

"풍경이 낯이 익은 게 아무래도 이 절인가 보다."

나는 절을 잘 안 보고 절 사진도 잘 안 찍는데 관악사를 일부러 담아본다.

'그때 엄마가 있었던 곳은 비구니승들이 사는 절이라고 했던 것 같고, 스님은 보이지 않고 비구니승들만 있었는데, 여기가 아닌 것일까?'

'왜 이제야 그 절을 찾아보고 싶은 것일까? 지금은 친정 엄마가 천주교로 개종해서 또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 와서 절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렇지만 사람이 지나온 어느 순간에 꽂히면 그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계속해서 추적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내가 최근에 우연히 관악산을 자주 오르게 되고, 앞으로도 관악산을 속속들이 파헤치며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가 생겼다.


하산길은 케이블카 능선이다. 지난주에는 오를 때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내려가다 보니 더 힘들다. 암릉이 울퉁불퉁 모양도 가지가지이다. 새 바위, 두꺼비 바위만 보고 갔었는데, 그 바위들이 이쪽에서 볼 때와 저쪽에서 볼 때가 또 다르다. 바위 모습들이 웅장하다. 정부과천청사 쪽을 향해 걷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하산길 내내 돌길이다.

"이렇게나 길었어?"

"햐, 힘들다! 이제 그만 걸었으면 좋겠다."

다들 앞서가고 나는 뒤로 처져서 안간힘을 쓰며 걷는다. 오후 4시가 넘어 5시가 다 되어가니 날은 점점 어두워진다. 해는 안 떨어진 것 같은데 오후에 또 비소식이 있어서이다.

"비 오기 전에 내려가야 하는데!"

또비님이 후미로 오는 나를 살피며 길이 헷갈릴 만한 곳에서는 기다렸다가 알려주신다.


드디어 계곡 물소리가 요란하다. 멍석길 따라가니 우리 일행들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나도 얼른 합류한다. 피로가 쫙 풀리는 찬물 족욕이다. 나는 얼굴과 팔도 씻고 머리도 매만진다. 나는 모자 쓰는 게 싫어서 산행이 끝나면 바로 모자를 벗기 때문에 눌린 머리를 조금 세워줘야 한다. 늦게 도착한 만큼 짐 챙기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데크 계단 내려오세요."

"네."

로버 대장님 말에 대답을 하고 뒤따라간다.


오늘 관악산 산행은 약 8km, 6시간 소요되었다. 휴식, 점심시간 포함해서다. 거의가 다 암릉길이었기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린 셈이다.


산행 후에는 대체로 뒤풀이를 가는데 나는 생략하기로 한다. 술을 안 마시니까, 또 뒤풀이 때 많이 먹으면 뱃살이 찌니까,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함산 한 산우님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뒤풀이하는 시간은 산행 못지않게 즐거운 시간이지만 나는 그래서 그냥 집으로 오는 것이다. 역시나 오늘도 금정역에서 지하철 환승할 때 급행을 타서 빨리 집에 왔다. 뒤풀이 안 하고 오길 잘했다.


리딩의 고수 로버 대장님, 후미 잘 챙겨주신 또비님, 암릉 타기의 명수들 여산우님 두 분, 늘품님과 밸리님, 모두에게 두루 감사하다. 나중 또 멋진 산행길에 반갑게 만나길 기대한다.

선유천 국기봉 가기 전 처음 올라보는 암릉길
저 뒤로 선유천 국기봉이 보인다.
선유천 국기봉 가기 전 암릉 위에서 사진 찍는 풍경
선유천 국기봉에서 단체사진
계곡 옆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지만 모기가 많아 조금 더 오른다.
바로 여기서 오붓하게 맛있는 점심을 먹는다.
남근석, 의자 바위
올라가야 할 파이프 능선 조망
파이프 능선 오르는 중~.
파이프 능선에서
파이프 능선에서 연주대 쪽 조망
관악사
고운 단풍
케이블카 능선
케이블카 능선 멋진 암릉들과 주변 조망
두꺼비 바위, 새 바위
멋진 뷰를 배경으로
새 바위를 배경으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요즘 왜 자주 관악산에 가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