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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설악산 단풍길 십이선녀탕 음률에 온몸을 적시고

설악산 단풍 산행 : 십이선녀탕 복숭아탕

by 서순오

"설악산을 언제 가봤던가?"

한참 되었다. 나는 기록광이라서 찾아보면 알 수 있지만 기억상으론 그렇다. 특히나 남교리 십이선녀탕은 2022년 10월 15일에 가고, 오늘 다시 간다. 그때는 안내산악회에서 무박산행으로 한계령~귀때기청봉~대승령~십이선녀탕~ 남교리 코스로 약 22km, 자그마치 14시간이나 걸렸다. 점심, 휴식시간 포함해서이다. 100대 명산을 찍을 때 안내산악회에서 자주 함산하던 H대장님에게 특별부탁을 해서 1:1 리딩을 해주셔서 험한 너덜지대 귀때기청봉과 길고 길어서 지루한 대승령과 남교리 십이선녀탕 코스를 무사히 완주하였다.


그런데 요즘 내 체력으로는 길고 험한 산행은 조금 버거워서 설악산 남교리에서 십이선녀탕 복숭아탕까지만 왕복으로 걷는 B코스를 선택했다. A코스는 장수대~십이선녀탕~남교리 코스이다. 3년 전에는 귀때기청봉 너덜지대를 오르며 보는 일출도 멋졌지만 십이선녀탕 단풍이 거의 절정이어서 황홀한 산행을 하였다. 안내산악회 리딩 대장님은 따로 있었지만, 나와 함께 한 대장님이 있었기에 한껏 여유를 부리며 너무 힘들면 자주 쉬어가면서 사진도 많이 찍으면서 유유자적 걸었다. 많은 산행지 경험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설악산 산행이었다.


올해는 아직 산행지에서 고운 단풍을 보지 못해서 기대를 하며 간다. 질매실 리딩 대장님이 하루 전에 답사도 다녀오시고, 산행 중 약 1시간 정도 비소식이 있다며 우비를 챙겨 오라고 공지하셨다. 그렇지만 취소자는 거의 없어서 28인승 차량 두 대로 56명이 함께 했다.


집결지는 사당역 10번 출구, 버스를 한 번 환승해서 가는데, 가다 보니 깜빡하고 식탁에 준비해 놓은 이온 음료를 안 가지고 왔다.

'물 대신인데 어쩌나?'

사당역에 내려 이온 음료 두 개를 산다. 시간은 약 30분 정도 남았다. 지하철역 안으로 내려가서 화장실에 들르려고 하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한다. 장비 대장님이시다. 나는 순간 알파님인 줄 알았다.

"불량식품 먹고 가요. 사줄게요."

"아뇨. 저는 아침 많이 먹고 나와서 안 먹어요. 장비님이나 드셔요."

화장실에서 나오니 기다리고 있던 장비 대장님이 김밥, 어묵 같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신다.


장비 대장님은 중국여행 전문가이시다. 거의 한두 달에 한 번씩은 공지를 올려서 회원이 몇 명이 되든 중국 산행도 끼여서 여행을 리딩하신다. 언제 가볼 기회가 있으려나 싶지만, 나는 천계산, 태항산 등 몇 군데를 다녀오고는 거의 3개월 정도 온몸이 다 아픈 몸살을 되게 치르고는 중국 산은 다시 안 가기로 정했다. 산이 너무 높고 돌계단도 무지 많기 때문이다.

'맛있는 거 먹고 조금 쉬운 코스로 관광지 돌아보는 거면 모를까?'


전철역 밖으로 같이 나와서 커피를 사주시기에 들고 질매실 대장님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고 보니 장비 대장님은 해늘 산악회이다. 오늘 영동 천태산을 간다. 나는 시간이 겹쳤기에 암릉구간 만만치 않은 천태산에 비해 강도가 낮은 설악산 십이선녀탕을 택한 것이다. 거기는 찬조가 많아서 떡이며 음료며 이것저것 준다 했는데, 입맛이 저절로 다셔진다. 해늘산이 인정이 많고 따뜻하고 푸근해서 안기고 싶은 산악회라면, 알파산은 보다 객관적이면서 정석에 가까운 전문적인 산악회라고나 할까? 내가 가입한 산악회가 다섯 군데라서 다 특색이 있다. 공지된 산행지가 안 가본 곳이면 좋고, 가봤더라도 다른 계절이면 좋고, 쉬운 코스이면 대환영이다. 산을 잘 탄다면 어디든 갈 수 있으련만 지금은 내 사정이 그렇다.


언제나 반가운 질매실 대장님 리딩에 한두 번 지맥 산행 인연으로 친근한 산우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알파 설악산 2호차에 오른다. 내 옆자리는 산지기 고문님이시다.

"16년 전 알파를 만든 분이셔요."

나는 알파에 온 지가 얼마 안 되어 잘 모르지만, 매니저 대장님 소개에 '산지기님이 바로 알파의 역사구나!' 하며 감탄을 한다.

그렇지만 어제 여고 동창들과 한 합창 연습과 경희궁, 역사박물관 관람 후기를 작성해야 해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아무리 기록광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쓰기가 싫어지니까.'


사당역에서 출발해서 가평휴게소에 한 번 쉬고 약 3시간을 달려서 장수대분소에 도착한다. A팀이 내리고 B팀은 남교리까지 간다. 오전 10시 40분이다. 1호차에서 8명, 2호차에서 5명, 모두 13명이 십이선녀탕 팀이다. 선두는 산의 향기님이 맡아서 해주신단다.


설악산 남교리 십이선녀탕 계곡은 초입에서부터 우렁찬 물소리를 내며 흐른다. 어제도 오늘 새벽에도 비가 내려서 계곡이 모두 폭포 같다. 십이선녀탕 폭포 이름을 자세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폭포 아닌 곳이 없다. 높은 암릉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요리조리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자연의 악보를 연주하는 장엄한 음악 같다.


약 1시간 30여 분 정도 오르니 산의 향기님이 계곡 쪽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고 간단다. 로사님이 도시락을 차에 두고 내려왔다기에 함께 앉아서 싸 온 음식들을 십시일반 나누어 먹는다. 먹는 도중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에 우산을 꺼내 들고 식사를 한다. 산우님들 한 사람 한 사람 정성스레 사진을 찍어주시는 서정님 덕분에 작은 폭포 앞에서 개인 사진을 찍는다.


비가 계속 내리기에 우비를 입고 짐을 꾸려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복숭아탕까지는 1시간 정도 더 가야 해요."

촉촉이 비에 젖은 길은 완만하여 걷기가 좋다. 돌길, 흙길, 돌계단길, 나무데크길 위에 수북이 쌓인 젖은 단풍잎들이 운치가 있다. 나무에 달려 빨강, 노랑, 주홍, 연두, 오색 찬란하게 빛나는 단풍들이 온몸과 마음을 화려한 색감으로 물들여준다. 십이선녀탕 크고 작은 폭포 물소리는 오케스트라의 현악 오중주 같다.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십이선녀탕 계곡 음악을 들으며 고운 단풍의 세계로 점점 빨려 들어간다.

"지금까지 산행해 봤지만 이렇게 웅장한 물소리는 처음 들어봐요."

다른 산악회에서 오신 산우님들이 한 마디씩 하면서 나를 앞질러 간다.

'그럼 그럼요!'

나는 속으로 동감을 하며 일부러 귀 기울여 물소리 연주를 한참 동안 집중해서 듣는다.


드디어 설악산 십이선녀탕 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숭아탕에 도착한다. 위에서부터 내려 떨어지는 폭포가 중간에 한번 동그란 웅덩이 같은 소에 떨어졌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져 흐르는데 중간 소가 복숭아 씨앗을 닮아 붙은 이름이란다. 복숭아탕 전망대에서 복숭아탕 폭포 위의 절벽과 폭포의 위, 아래까지 두루 조망을 한다. 폭포 주변으로 단풍이 참 곱다. 서정님과 스틱님이 산우님들 하나하나 사진을 여러 장 찍어주셔서 설악산 십이선녀탕 단풍숲에서 즐거운 모델을 한다. 사진작가님들에게 감사하다.


핸드폰에 기록된 오늘 걸은 걸음 수를 보니 2만 2천 보 이상이다. 남교리에서 십이선녀탕 복숭아탕까지 약 10km, 쉬엄쉬엄 4시간 20분 소요(휴식, 점심시간 포함)되었다.


나는 남교리에는 황태 덕장이 있기에 특산품 황태 10마리와 나뭇가지까지 있는 마가목도 사가지고 온다. 좋아하는 황태찜 맛있게 해서 먹고, 관절과 뼈에 좋다는 마가목도 차를 끓여서 먹어야겠다.


뒤풀이는 버스로 1시간 홍천으로 이동해서 <박대감>에서 돼지갈비로 한다. 서울 사당까지는 1시간 30여 분 걸린다. 장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차가 막히지 않고 시원스레 달려서 산행 못지않게 기분이 좋다. 내 수준에 맞게 여유 있는 쉬운 산행이라 돌아보니 가슴이 뿌듯하다. 늘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80%까지만 사용하는 것이 목표인 나는 이래서 오늘도 여분의 행복을 느낀다. 좋은 곳 리딩해주신 질매실 대장님, 2호차 안내 매니저 대장님, 그리고 B팀 일일 리딩 산의 향기님, 예쁜 사진 남겨주신 서정님과 스틱님, 그리고 즐겁게 함산 한 산우님들에게 감사하다.

위치 표시판
수북이 쌓인 단풍길에서
십이선녀탕 위로 놓인 예쁜 다리를 여러 번 건넌다.
점심 먹고 작은 폭포에서
이정표
고운 단풍길 십이선녀탕 계곡에서
설악산 십이선녀탕 응봉폭포
설악산 십이선녀탕 복숭이탕
설악산 십이선녀탕 복숭이탕 전망대에서
십이선녀탕 고운 단풍과 장엄한 폭포의 조화
AI가 만들어준 설악산 십이선녀탕 단풍산행 지브리풍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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