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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청계산 석기봉, 망경대 암릉길

청계산 단풍 산행 : 갱매(수종)폭포+석기봉+망경대

by 서순오

자랑산 별다섯 대장님 리딩에 모두 10명이 참석한 청계산을 오르다 보니 문득 내가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 떠오른다. 오늘 청계산 산행은 대공원역~갱매(수종)폭포~혈읍재~석기봉~망경대~청계사 코스이다. 그동안 여러 번 청계산을 올랐지만 한 번도 안 가본 길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가본 부분이 포함되어 있지만, 거의가 내게는 새로운 길이다.


♡새로운 길 /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시인은 같은 길을 걸어도 늘 다른 새로운 길이라지만, 내게는 전혀 새로운 길이 신선하고 풋풋한 흥미를 준다.


가장 먼저는 청계산 오르는 초입이 안 가본 길이다. 대공원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서로 인사한 후 서울대공원 이름표 포토존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억새와 구절초가 단풍과 잘 어우러진 대공원길을 지나간다. 대공원 전시장은 언젠가 들어가 본 것 같은데 하도 세월이 오래되어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득하다. 한참 걸어가다가 태극기가 휘날리고 구부러진 노송 두 그루가 멋스러움을 자랑하는 건물 앞에서 멈춰 서서 감상을 하고 또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제 잠시 후 그곳을 지나 바로 왼쪽 계단길로 청계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걷기 좋은 숲길이다. 산길 중간에 도로를 하나 건너간다. 급하게 구부러진 도로길에 수시로 버스와 자동차가 와서 위험하지만 기다렸다가 조심조심 지나간다. 다시 산길로 오르니 역시나 흙길 완만하여 걷기가 좋다. 나는 이런 길이 참 좋다.


집결 시간이 오전 11시였기에 금방 점심을 먹는다. 별대장님은 갱매(수종)폭포까지 가서 식사를 하고 싶다 하시는데, 아침을 안 먹고 나온 자랑산님들이 배가 고프다면서 아우성이다. 널찍한 밥터에서 각자 싸 온 도시락과 간식을 꺼내 놓으니 돗자리 두 개 펼쳐놓은 게 가득 찬다. 홍어회, 부침개, 약밥, 바게트, 갓김치, 삶은 계란, 김밥 등이다. 과일도 푸짐하다. 사과, 바나나, 감, 무화과 등이다. 언제나 산에서 걸을 때는 땀도 흘리고 더운데, 앉아서 밥을 먹다 보면 추운 게 신기하다. 다들 여벌로 가져온 도톰한 웃옷을 입고 앉아서 커피까지 마시며 여유를 부린다.


주섬주섬 짐을 꾸려서 갱매폭포를 항해 간다. 역시나 길이 좋다. 갱매폭포로 내려가는 길만 조금 가파르다. 처음에 올 때는 폭포 가는 길이 꽤나 거칠었는데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그런지 매끈하다. 갱매폭포에 제법 물이 많다. 폭포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을 남긴다. 이곳은 몇 번 왔기에 오른쪽 옆으로 난 가파른 데크길 오름길이 궁금했었다.

"저기로 가면 옥녀봉이 나올까? 매봉이 나올까?"

이정표가 없기에 잘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 길은 천연의 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때가 타지 않은 길이다. 나는 그런 새로운 길이 좋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갱매폭포로 흘러드는 계곡이 위에서부터 계속 아래로 흐르고 있기에 내도 건너간다. 계곡 양 쪽으로 키 큰 나무에 조금씩 들기 시작한 연둣빛, 노랑빛 단풍과 돌에 낀 이끼와 아무렇게나 자라난 무성한 덤불과 물소리가 싱그럽다.


마른 낙엽 덤불에 빨간 열매 한 송이가 눈에 띈다. AI에게 물어보니 천남성 열매란다. 열매는 예쁜데, 독성이 강해서 먹으면 구토, 복통, 설사, 인후통 등을 일으킨다며 주의하라고 알려준다.


자랑산 산우님들은 발이 빨라 앞서가기에 나 혼자 후미로 걷는다. 고즈넉하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걷기가 좋아 윤동주 시인의 시에 내일을 붙여서 외워본다. 멈춰 서지 않고 꾸준히 걷는 길은 소망의 길이다.

'언젠가 이곳을 혼자 함 걸어봐야겠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계곡길을 건너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된다. 계속해서 조금씩 더 가파른 오름길이 나온다. 숨이 차서 헉헉댄다. 그렇지만 오를수록 단풍 고운 곳이 많다. 사진도 찍으면서 쉬어간다. 나무에 달린 단풍도 예쁘지만 길과 돌과 바위 위에 수북이 떨어진 단풍들이 운치를 더한다. 오르는 건 힘들지만 이런 맛에 산행을 하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다.

'모두들 다 힘든 순간이 있지만 지나고 보면 그 맛에 산다고나 할까? 우리 인생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저 살아간다면 과연 무슨 재미가 있을까?'


"이제 1/3 남았어요."

좀 되다 싶게 한참 오른 후에 또 쉬어가기에 별대장님에게 물어보고는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쉰다.

"아직도요?"

또 오른다. 곧 암릉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는 조망터가 나온다. 서울대공원 쪽인가? 한가운데 호수가 보인다. 소나무 뒤 절벽 쪽으로 다가가서 내려다보니 독수리 바위가 보인다. 살짝 내려다보고 독수리 머리 부분만 보이는 독수리 바위를 담는다.


"매봉은 가지 말재요."

자랑산 여산우님들이 힘들게 오름짓을 하고는 코스를 줄여 달라고 한 모양이다.

'나야 뭐 대환영이지.'

나는 반기면서 혈읍재 쪽으로 따라간다. 이 길은 여러 번 걸어본 길이다.

같은 길이라도 여러 번 걸으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한 무리의 활짝 핀 억새가 한들거린다. 반갑게 눈 맞춘다.

'가을마다 가던 억새 산행도 올해는 못 가는구나! 가본 곳 또 가는 건 좀 그렇고, 긴 코스 산행은 지금은 무리이니까.'


혈읍재는 얽힌 사연이 있는 곳이다. 조선 연산군 때 유학자 정여창이 스승 김종직 선생의 부관참사 소식에 은거지로 가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넘었다는 고개라고 적혀 있는 안내판이 있다. 옛날에는 왕권이 바뀌면 반대편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요새도 사람들이 권력에 목숨을 거는 이유일 것이다. 국민들이 위탁해 준 권력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쓸 수 있는 그런 정권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저 사리사욕을 위해 정적 제거를 일삼는 그런 정권이라면 곧 버림을 받을 것임을 역사는 또렷이 보여줄 것이다.


혈읍재에서 가파른 데크길 올라가서 망경대와 석기봉을 오른다. 이정표 옆에 '등산로 폐쇄'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지만 길은 나있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별대장님을 따라간다. 한 번도 안 가본 길이라서 흥미진진하다. 아, 그런데 아뿔싸! 이곳은 위험한 암릉구간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절대 따라오지 않았을 그런 곳이다.


망경대라는 위치 표시판을 지나고 암릉구간이 나타나는데,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 나온다. 저쪽 바위에서 별대장님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손을 잡아서 건네준다. 나는 그래도 겁이 난다. 밑으로는 낭떠러지이다. 망설이다가 겨우 건너간다. 로프를 잡고 암릉 모서리를 잡고 석기봉 암릉 위로 겨우겨우 올라가니 좁은 암릉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아찔하다. 오금이 저린다. 호수가 보인다.

'저기가 바로 서울대공원일 것이다.'


별대장님과 인지기님 덕분에 여산우님 넷이 이곳까지 올라왔다. 다른 이들은 모두 우회로로 갔다고 한다. 인지기님이 암릉 조금 아래쪽에서 사진을 찍어주기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어렵게 석기봉까지 올라갔지만 겁이 나서 개인 사진은 찍을 생각도 못하고 내려온다. 암릉 내려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가느다란 로프 잡고 미끄러지듯이 뒷걸음으로 내려간다. 석기봉 내려와서도 암릉 구간이 꽤 많이 있다.

"청계산에 이런 암릉이 있다니!"

그동안의 청계산 산행에서 보지 못한 청계산의 당차고 거친 모습이다. 언제나 포근포근하고 자상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다.


이수봉도 생략하고 이수봉 삼거리 지나 바로 청계사로 하산한다. 이 쪽 길도 올라갈 때는 꽤 가파른 암릉길에 데크길도 많은 편인데 내려갈 때는 한결 수월하다. 여러 번 걸어봤기에 익숙한 길이라 편하다. 자랑산님들은 정말 빠르다. 내가 청계사에 도착하니 다들 절을 다 둘러본 듯하다. 나는 또 절은 자세히 안 보니까 따라서 함께 내려간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걸어갈 새로운 길! 산행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어느 산인들 새로운 길이 아니겠는가? 가본 산이든 안 가본 산이든 그런 자세이리라.


"책 한 권을 100번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쓴 사람과도 맞먹는다."

다작도 중요하지만 한 권을 여러 번 깊이 읽는 것도 중요하다. 산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산을 여러 번 오른다는 것은 그 산이 그 사람의 일부일 수도 있다. 나는 새로운 다른 산을 오르는 걸 좋아하지만 말이다. 나이가 더 들어 기력이 달리면 나도 집 근처 작은 산인 수원 팔달산을 거의 매일 오를 수도 있겠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고, 무엇이 좋고 안 좋고의 문제인 것이다. 사람에 따라 저마다 다 취향이 다르니까. 그 어느 쪽이든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산행을 계속하는 의미일 테니까.

서울대공원 이름표 포토존에서
대공원길 구절초
대공원길 억새에서
서울대공원 전시장
처음 올라보는 청계산 초입길과 살방살방 걷기 좋은 흙길
곱게 단풍 든 담쟁이
갱매(수종)폭포에서
궁금했던 갱매(수종)폭포 옆 오름길 데크길
천연의 계곡길 꽃도 피고 단풍이 곱다.
예쁘지만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되는 천남성 열매
계속되는 오름길
AI가 만들어준 지브리풍 청계산 단풍 사진
독수리바위
독수리 바위가 보이는 소나무와 단풍에서
혈읍재 가는 길 억새와 단풍
혈읍재에서
청계산 석기봉 가는 암릉 위험하다.
청계산 석기봉에서
석기봉 올라갔다 내려오는 중이다.
석기봉에서 내려와서도 만만치 않은 암릉길을 오르내린다.
암릉길 옆 단풍은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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