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딸이 16개월 된 외손녀를 데리고 한국에 온다 하기에 미리 이것저것 준비를 했다. 제일 먼저는 낮잠 이불을 빨아서 말리고, 베이비룸을 설치하고 천 부분은 분리해서 빨아서 널었다. 우리 집에 책이 많아서 내 방은 사방팔방 벽면이 모두 대형 책꽂이로 채워져 있다. 거실은 넓지만 사람들 움직임이 있어서 아기 재우기는 좀 그렇고, 작은 방도 베이비룸 설치하기에는 좀 작아서 내 방을 울 딸과 외손녀에게 쓰라고 줄 거라서 방에 있는 잔챙이 물건들은 모두 치웠다. 책상과 서랍장 위에 장식으로 올려놓은 것들도 울 남편 방 서랍장 위로 옮겼다. 내 방에는 침대가 없어서 접이식 매트 하나를 베이비룸 옆에 놓으니 딱 알맞다. 그럭저럭 울 딸과 외손녀가 10여 일 동안 지내고 가기에는 괜찮겠다.
9월 22일 월요일 오후에 울 딸이 온다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로 마중을 갔다. 아기를 데리고 오기에 늘 단골 리무진을 불러서 편하게 오고 가는 데도 내가 마중을 가면 더 좋긴 하다. 아이와 캐리어와 유모차를 혼자 들고 오기에는 조금 무리이기에 내가 마중을 가서 도와준다.
울 외손녀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리무진 타고 가는 동안 많이 울어서 애를 먹었는데, 이번에는 네 번째라 그런지 별로 안 울고 자동차 지나가는 것을 보며 신기해한다. 그렇지만 비행기 타고 오는 동안에는 많이 울었다고 한다. 고도차가 나서 귀가 먹먹해서 낯선 느낌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
울 외손녀는 외가인 우리 집에 와서는 제법 잘 지냈다. 그런데 울 딸이 오는 날부터 내가 갑자기 몸이 안 좋다. 머리도 아프고 편도도 붓고 콧물에 기침 가래까지 딱 감기증상이다. 평소에는 감기도 잘 안 걸리는데, 하필 울 딸과 외손녀가 온 때에 아프다니 정말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할 수 없이 약을 지어서 먹었더니 또 계속 잠이 쏟아진다. 그게 거의 일주일 간이나 그런다.
그러고보니까 울 딸과 외손녀가 오면 산행이나 여행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전 주에 두 번이나 연달아서 여행을 했더니 좀 피곤했던 모양이다. 금요일에 여고 친구들과 덕수궁 돈덕전을 돌아보고 토요일에는 공주 여행으로 정안 알밤도 줍고 공주산성과 금학생태공원을 걸었다.
어쨌든 울 딸은 시부모님이 은퇴 후에 울 딸 집 옆으로 이사 와서 애를 봐주고 시아버님이 집안 일과 살림을 아주 깔끔하게 해 주셔서 울 딸이 육아에서 벗어나 잠깐잠깐 쉴 수도 있고 개인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단다. 거기다가 전문 시터까지 두고 있어서 실상은 네 사람이 울 외손녀를 보고 있는 셈이라 한결 일이 수월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와 보니 내가 아프고, 울 남편은 또 애를 봐 본 적이 없어서 낯을 가리고, 그러다 보니 온전히 울 딸 혼자서 애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목욕시키랴 우유와 이유식 준비해서 먹이랴 놀아주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거기다가 또 이것저것 협찬을 받아서 먹으러 다니는데 엄청 바쁘다. 애 자는 사이에는 포스팅도 한두 개씩 해야 한다.
사실 나는 뭐 여기저기서 협찬을 하겠다고 하면 귀찮기만 하다. 그 장소를 찾아가야 하고 또 후기를 써야 하고 그런 건 내 적성에 안 맞다. 쿠팡에서도 초장기에 체험단에 선정되어서 좀 해보았는데, 그것도 엄청 성가시다. 생필품이나 식품 살 때마다 같은 제품에 후기를 매번 써야 하는 게 번거롭기만 하다. 늘 먹는 두부나 김밥 재료나 이온음료 분말 등에 뭐 쓸 거리가 있단 말인가?
'한 번 쓰면 끝이지.'
매번 똑같은 것에 다른 글을 쓰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그래서 그 무엇을 사도 후기를 안 쓰니 쿠팡체험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냥 물건만 사니 넘 편하고 좋다.
그런데 울 딸은 체험하고 포스팅하는 게 아주 재미가 있나 보다. 시간을 쪼개서 하니 내가 봐도 울 딸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
"아기를 키울 때는 아기 키우는 것에만 집중해도 좋은데! 힘은 들어도 그때가 가장 행복한 때니까."
지나고 보니 그렇다. 애들 키울 때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내가 울 애들 키울 때 생각이 난다. 큰애 아들과 작은 애 딸이 22개월 차이로 태어났다. 나는 신혼집을 장만해서 서울 쌍문동 아파트에 살 때였다. 그런데, 그때 친정집을 새로 지었고, 남동생 둘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나이 드신 할머니가 계셨다. 엄마 아빠는 식당을 하면서 가게 딸린 집이라 거기서 생활하셔서 나보고 3년만 들어와 살면 좋겠다 해서 우리 집을 월세 놓고 친정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가보니 완전 육아에 집안일에, 동생들 도시락도 싸줘야 하고 식구들 밥도 해서 먹여야 하고, 빨래며 집안 청소도 해야 하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죽하면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했을까? 3년 있다 나오려고 하니 친정엄마가 조금 더 있으라며 허락을 안 한다. 그렇게 6년을 원치 않는 친정살이를 했다. 결국 큰 남동생이 결혼하고 나서야 나는 따로 나와서 살 수 있었다.
나는 울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다니던 대학원도 휴학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아 육아의 세계로 친정살이로 내 인생을 몰아갔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아이들 키울 때 그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내 뱃속에 있다가 태어난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만큼 창조의 기쁨을 주는 게 또 있을까? 나는 지금도 애를 낳을 수만 있다면 하나 더 낳아 키워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울 딸은 울 외손녀를 데리고 와서는 거의 바깥에서 생활을 한다. 아침 산책, 문화센터 체험활동, 맛있는 점심 먹으러 가기, 스튜디오에서 드레스 입고 사진 찍기, 키즈카페에서 놀기, 쇼핑몰 돌아보기 등 엄청 바쁘다. (※가족여행을 가볼까 했지만 아이가 더 크면 가자고 미루었다.)
울 딸이 기본적으로 하는 건강검진을 할 때는 내가 한나절 외손녀를 봐주었는데 재워놓고 가니 잘 자고, 깨서는 책을 읽어주니 아주 좋아하고 잘 논다.
울 딸이 미용실에 머리 손질하러 갔을 때는 애가 우유 먹고 나니 졸린 것 같다. 그래서 베이비룸 안에 넣어놓고는 "코 자자!" 라고 하니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누워서 뒤척이더니 스르르 잠이 든다. 이렇게나 쉽게 잠이 드는데 울 딸은 애 재울 때는 한참 동안이나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는 거실에서도 사람소리가 들리면 안 된다고 "쉬~" 하면서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다.
애를 키울 때 애 중심으로 길들이면 엄마가 힘들다. 그렇지만 엄마 중심으로 애를 길들이면 엄마가 편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육아가 쉬운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어린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을까?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결혼해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되면 맞추어가야 해서 힘들고, 또 둘만 살다가 애가 태어나면 모든 것이 애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또 힘들다.
올 때마다 귀여운 짓을 하나 둘 하는 울 외손녀가 눈에 선하다. 울 딸은 내가 아파서 도움이 못 되어 많이 힘이 들었는지 조금 뾰로뚱하다. 한국에 오면 울 딸에게는 독박육아가 되어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데도 친정엄마인 나는 또 하노라고 했기에 '애도 하나 못 키우나?',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비교를 하면 안 되는데 내가 저희들 키울 때는 아이 둘을 한꺼번에 키워야 하는 데다 친정식구들까지 매 끼니를 챙겨야 해서 훨씬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간에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활동력이 대단한 울 외손녀가 건강하게 예쁘게 잘 자라나길 기도한다. 초보 엄마인 울 딸도 점점 지혜로워져서 아이를 힘들지 않고 사랑스럽게 기쁘게 잘 키웠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최상의 행복감을 누리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