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생각하며 경희궁과 역사박물관 돌아보기

이화 크리스마스 콘서트 합창 연습(7)+경휘궁+역사박물관

by 서순오

매번 내가 합창 후기를 써서 이번에는 성숙이가 쓰나 했는데 또 나보고 쓰란다. 기록하는 건 습관이니까 뭐, 어차피 쓸 거 그냥 쓴다고 했다.


그런데 내 핸드폰 저장공간이 말썽이다. 핸드폰은 16기가짜리에다 128기가 SD카드까지 장착하고도 내 기록을 당해내질 못한다. 시시콜콜 뭐든 다 기록을 하니까. 지나고 보면 '이런 게 있었어?'라고 할 때가 있지만, 또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그동안 참 많은 죽음을 경험했다. 가장 먼저는 여고시절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우리 남동생의 죽음이다. 4대 독자 집안에 아들로 태어난 데다 무척 영리한 아이였기에 별명이 똘똘이였다. 집안 모든 식구들이 그 아이만 생각하고 그 위로 태어난 4명의 다른 모든 형제자매들은 다 배제를 했다. 큰딸인 나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났지만 내 중심으로 돌아가던 집안이 갑자기 그 남동생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못마땅했다. 죽고 나니 잘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날 경복궁에서 서울시대회 백일장을 하고 궁 안을 좀 돌아본 후에 집에 가보니 남동생 두 명이 모두 연탄가스 중독으로 할머니와 함께 수유역에 있는 병원으로 갔단다. 엄마 아빠는 서울로 이사 오면서도 시골에 남겨놓고 온 우리 집 논을 짓는 이들이 빻은 쌀이며 고추며 장을 봐 온다며 내려가시고 없었다. 나는 급히 병원으로 가보니 똘똘이는 숨이 끊어졌다 하고, 그 아래 막내 남동생만 산소통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보고 죽은 애를 데리고 집에 가 있으라 하기에 택시를 타고 이불에 싼 그 애와 함께 집에 왔다.


당시에 엄마는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식당 안에 작은 방이 있었다. 나는 그 애를 방에 눕혀놓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몸을 만져보니 아직 온기가 있는데 손목의 맥은 뛰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혹시 아이가 살 수 있을까 하여 솜에 식초를 묻혀서 코에 대주기도 하고 이불에 싸서 땅바닥에 엎어놓기도 하고 팔다리를 주물러 보기도 하였다. 가게 골목에는 백열등 가로등 전구가 주홍 불빛을 쏟아냈지만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 모습이 푸르뎅뎅해져 갔다. 그렇게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자고 뜬 눈으로 죽은 아이와 실랑이를 했다. 작은 막내 남동생은 산소통 속에서 살아났지만 결국 그 위의 아이는 살지 못했다. 나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 밤에 그렇게 남동생과 함께 했다. 죽음은 그렇게 내게 처음으로 낯선 얼굴을 내밀었다.


그 후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 시아버지의 죽음, 또 교회 같은 구역 여전도회 회원의 죽음, 유난히 가까이 지내던 교회 여집사님의 죽음, 내가 여고시절 참여했던 독서서클에서 가장 잘 나가던 최형의 죽음, 동서의 죽음, 조카의 죽음, 여고 친구 중에서도 특별한 만남을 했지만 이유를 모르게 소원해졌던 친구 세 명의 뜻밖의 죽음, 손으로 꼽아보니 그렇다. 죽음의 이유와 원인도 다양했다.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이는 우리 할머니가 유일했다. 거의가 암이나 고질병 등 질병으로 죽었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도 여럿 있었고, 심지어는 자살도 있었다.


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죽음을 맞으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먼저 데려가신다'는 성경 말씀을 떠올려본다.

이 땅이 아무리 좋다 한들 천국만 같겠는가? 사람들은 대체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살 만큼 살았으면 언제 가도 좋다 생각한다. 물론 지금이라도 아프지 않고 갈 수 있으면 더 감사하다 여긴다.


그래서 잠시 잠깐 사는 이 땅에서의 삶이기에 가능하면 사는 동안 서로 잘 지내다 갈 수 있어야 한다. 그이가 없어서 너무 안타깝다, 아쉽다, 그런 느낌이 들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없어도 뭐 괜찮다, 있으나마나이다, 심지어는 잘 죽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면 인생을 잘 살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왕 태어난 거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알콩달콩 살아가면 좋을 것 같다. 가장 먼저는 가족끼리, 친구끼리, 자신이 속한 모임이나 직장에서부터 그러면 참 좋을 것이다.


이화 크리스마스 콘서트 합창 연습은 일곱 번째 날을 맞았다. 모두 13명 참석이다. 송경희 지휘자님, 박은미, 차은미 반주자님 섬김으로 음정도 세부적인 부분도 잘 살리면서 화음을 이루었다. 노래하는 곡이 <인생>이니 만큼 남은 인생 더 잘 살아가야겠다 다짐을 한다.


오늘 간식은 박은미 총무님이 공수해 온 마녀김밥(묵은지, 참치, 계란 김밥)과 문미정 친구의 약밥과 차은미 친구 따님의 휘낭시에로 푸짐하고 달콤했다. 박은미 총무님 하는 말이 목사님인 이혜정 친구가 오늘 또 찬조금을 주어서 합창 당일까지도 김밥 간식을 먹을 수 있겠단다.


금요 연습팀 이벤트는 흥선 대원군의 별장이라는 석파정과 서울미술관이었다. 그런데 9명의 친구가 나뉘어서 박은미 친구와 고성숙 친구 차로 가는 도중에 입장료가 2만 원이라는 말에 너무 비싸다며 급의논 중 장소를 바꾼다. 바로 경희궁과 역사박물관이다. 나는 두 군데 다 안 가본 곳인 데다 무료입장이라 반긴다. 탁월한 선택이다.


경희궁 먼저 돌아보는데 아름다운 나무가 우릴 반갑게 맞이한다. 아래쪽에 구멍이 나 있고 연리지 같은데 둥치가 안으로 푹 파여 들어간 모습이 마치 일부러 파낸 모습 같다. 위로는 나뭇가지를 높이 뻗고 나뭇잎도 많이 달렸다. 수령이 꽤 되는 고목이다.


경희궁 숭정전으로 올라간다. 일월오봉도가 있다. 역사 선생님 출신인 김명옥 친구가 해설을 해주는데 일월오적도라고도 한단다. 우리가 못 가본 석파정 얘기도 하다가 대원군이 신하가 살고 있는 그곳을 차지하고 싶어서 고종을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임금님이 자고 간 곳은 다른 사람이 살지 못하기 때문에 수를 쓴 것이란다.

"결국 신하를 내쫓고 차지한 곳이 바로 석파정?"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의 욕심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자신보다도 백성을 생각하는 임금님, 국민을 위하는 대통령이 그립다.


경희궁 안 쪽 두 곳은 보수 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나와서 역사박물관 쪽으로 간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경희궁 고풍스러운 건물과 푸른 잔디밭이 잘 어우러진다. 역사박물관 앞에 전시물들이 있다. 옛 건물의 단청을 칠한 기와, 어처구니들을 일부분 떼어다 전시해 놓았는데 멋스럽다.


역사박물관에는 광복 80주년 기념 전시가 있고, 기획 전시는 대홍수에 대한 것이다. 서울도 예로부터 홍수 피해가 심했던 모양이다. 시람도 소도 떠내려가는 모습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늘 겪는 것이다. 인간이 우주를 지배하지만 또 인간은 우주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세대 근처에서 노인요양원을 운영하는 김현주 친구가 1층 로비 카페에서 차를 산다 하기에 티 타임을 가진다. 동창회, 여행, 합창, 의상 얘기 등 화기애애한 시간이다. 끝없이 술술 풀어지는 이야기를 뒤로 하고 일어선다. 기회는 또 있으니까. 합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가보고 싶은 곳도 여행하고, 일거삼득 즐거운 금요일이다.

"친구들 모두 고마워! 우리 남은 인생, 사는 동안은 즐겁게 살자!"

덕수궁 돌담길 정동문화축제 현수막, 이화 돌담길 은행나무
이화 크리스마스 콘서트 합창 연습(7) 마치고
간식 : 타임, 김밥, 약밥, 휘낭시에
경희궁 아름다운 나무
경희궁 아름다운 나무에서
경희궁 숭정문에서
경희궁 숭전전, 일월오봉도
경희궁에서
역사박물관 앞 전시물
일월오봉도에서
광복 80주년 기념 전시실
소설가 박경리 <토지> 집필 모습
대홍수 기확전시실 돌아보기
비 내리는 미디어 아트 전시실에서
역사박물관 1층 로비 카페에서 티 타임
역사박물관 앞 도선전도
광화물 길거리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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