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차마고도 산행
나는 무엇이든지 하기 싫을 때는 안 하는 편이다. 물론 하고 싶을 때는 열심히 한다. 산행도 그렇다. 1주 1 산을 계획해 놓고 한두 달 전부터는 마땅한 산행지가 공지로 올라오면 미리 예약해 둔다. 근교산행은 당일 아침이라도 컨디션이나 다른 일정에 따라서 예약도 취소도 가능하다. 그래서 크게 부담이 없는데 원정산행은 산행비도 온라인으로 송금해 놓고 예약을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가는 것이 좋다. 3일 전까지 취소를 하연 전액 환불받지만, 3일 이내 취소를 하면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산악회에 따라서는 예약하고 좌석 지정하고 돈을 보낸 후에 취소하면 '좌석 지정료'라는 게 있어서 5천 원이나 1만 원을 제하고 환불해 준다.
"뭐 이런 게 있어?"
처음에는 참 희한하다 생각을 했는데, 어떤 사람이 산행 예약을 단체로 해놓고 출발 임박해서 취소를 해서 낭패를 본 적이 있단다. 산행 버스도 다 예약해 놓았는데 갑자기 취소를 하니 손해가 컸단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신중한 예약과 취소를 위해서 운영위에서 '좌석 지정료'라는 것을 정하자고 했단다. 산악회마다 다 자기 법이 있는 거니까 이용하려면 따라야 한다.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샜지만, 어쨌든 산행 예약을 하고 출발 3일 내에 취소를 했다. 가기 싫으면 안 가는 것이 내 법칙이라서 산행 당일 아침까지도 컨디션이 'NO!'를 외칠 때는 과감하게 포기를 한다. 그리하여 오늘은 해늘산에서 홍천 계방산 눈꽃산행을 예약했는데, 아침에 취소를 해서 산행비만 나갔다. 그런데 실은 집결지 사당 탑승 시간이 새벽 6시 30분이라서 너무 빨라서 그런 것이다. 수원 우리 집에서 사당역까지 가려면 버스 한 번 환승해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시간이 조금 촉박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버스는 첫차가 5시 20분 정도에 있는 걸로 나오는데 조금 늦게 오거나 환승할 때 버스 배차간격이 좀 있게 오면 자칫 늦을 수가 있다. 가면서도 불안하고 동동거려야 한다. 그래서 대체로 이런 경우에는 예약을 잘 안 하는데 '계방산 눈꽃 1번지'라는 말에, 요즘 날씨도 춥고 해서 스키 장갑도 사놓고 덜컥 예약을 한 것이다. 그런데 또 새벽 3시부터 알람을 1시간 간격으로 3개를 해놓고도 일어나기가 싫어서 꾸물대다가 두 번째 알람인 새벽 4시에 일어났다. 5시에는 집을 나가야 하기에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도시락을 싸 가야 하는데 몸도 찌뿌둥하고 뭐 만들기도 싫다. 열심히 준비해서 가더라도 탑승버스를 놓칠 수도 있고, 아, 오늘은 아니다! 포기하자."
그러고는 카페에 취소글을 올리고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한다. 약 2시간가량 꿀잠을 잤다. 꿈도 꾸었는데 어디 여행을 간 것 같은데 숲 속을 걷는데 나무 위에 꽃송이가 주렁주렁 아주 탐스럽게 피어서 사진에 담는 꿈이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그리고는 다른 산악회 카페에 두루 들어가서 살펴본다. 오전 11시 출발 북한산 산행이 두 군데 있다. 자주 가는 자랑산, 오랜만인 알파산이다.
"뭐야, 이거? 산행 신청한 사람이 130명이 넘네!"
나는 알파산에 가기로 한다.
"많은 사람이 오니까 반가운 얼굴들도 볼 수 있겠다."
그리하며 뜻밖에도 알파산 정기산행 북한산을 가게 되었다.
집결지인 불광역까지는 2시간 소요 예정인데 환승시간 추가 30분 해서 약 2시간 30분 잡고 오전 8시 30분 집에서 나온다. 매교역까지 도보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또 두 번 환승해서 간다. 불광역 2번 출구로 나가니 역사 안에 자랑산님들이 모여 있다. 참석 인원이 18명이다.
"다른 산악회! 계방산 가려다 못 가고 여기 왔네."
다들 의아해하기에 인사하고 지나간다. 낯익은 알파님들을 만나 밖으로 나와 장미공원으로 간다. 여기가 행사장이다. 12월 최다 산행자 시상을 한단다. 운영진이 출석 체크를 하기에 찬조금 2천 원을 내고 떡도 한 개씩 나누어 주기에 받는다.
아는 이들은 많지만 워낙 인원이 많아서 눈인사만 하고 옆을 보니 낯선 이가 있어서 물어본다. 어여쁜 여산우님이다.
"닉이 뭐예요?"
"처음 왔어요. 국화예요."
"아, 그래요? 그럼 나랑 오늘 같이 산행해요."
이리하여 북한산 일일 파트너가 된다. 처음 온 사람은 누군가 챙겨줘야 하기에 아는 사람 찾을 생각을 안 하고 동행하기로 한다.
'산에서 꽃을 만난 게 맞네!'
나는 새벽에 꿈속에서 본 예쁜 꽃을 생각하며 기분이 좋다.
장미공원에서 축하 행사를 한다. 2026년을 이끄실 피오르 회장님이 인사를 하고 매니저 운영팀장님 사회로 진행을 한다. 열심히 산행해서 상을 받는 이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행사를 하는 동안에도 산행을 할 때도 도란도란 재미가 있다. 살가운 여산우님이라서 동행하는 동안 내내 어째 둘이서 산행을 온 것 같은 정겨움이 있다. 가다가 강풍 대장님을 만나 함산한다. 쉬어갈 때 이정표에서 사진을 찍는다.
다시 걷다가 정자 옆에 있는 시비가 눈에 띄어 담아본다. 오탁번 시인의 <사랑하고 싶은 날>이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다 사랑하고 싶은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랑하고 싶은 날 / 오탁번♡
앵두나무 꽃그늘에서
벌떼들이 웅성 날면
앵두가 다람다람 열리고
앞산의 다래나무가
호랑나비 날갯짓에 꽃술을 털면
아기 다래가 앙글앙글 웃는다
태초 후
45억 년쯤 지난 어느 날
다랑논에서 올벼가 익어갈 때
청개구리의 젖은 눈알과
알밴 메뚜기의 볼때기에
저녁노을 간지럽다
된장독에 쉬 슬어놓고
앞다리 싹싹 비벼대는 파리도
거미줄 쳐놓고
한나절 그냥 기다리는
굴뚝밭 왕거미도
다 사랑하고 싶은 날
강풍 대장님, 국화님, 산지기님이랑 같이 간식을 먹는다. 국화님은 계란말이, 나는 누룽지와 뜨거운 물, 삶은 계란 세 개, 부침개를 싸 갔다. 다들 출석 체크할 때 2천원 찬조금 내고 받은 콩설기 떡을 먹는다. 나는 그건 울 남편 갖다 줄 거라서 계란 한 개와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는다. 계란말이도 맛이 있어서 몇 개 집어먹는다. 부침개는 모두 안 먹어서 도로 가져온다. 국화님이 싸 온 빵 한 개를 울 남편 갖다 주라며 내 가방에 넣어준다.
"고마워요."
차마고도를 걸으며 강풍 대장님이 우리 둘 사진도 많이 찍어 주신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나는 국화님과 강풍 대장님 사진도 많이 담는다.
"처음 와서 사진 넘 많이 찍는 거 아니에요?"
"나를 만나면 사진 많이 찍어요."
국화님이 좀 쑥스러워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굿 포토존이 될만한 곳은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코스는 북한산 차마고도만 걷는 거라서 편안한 산행이다. 중간에 암릉 오름코스가 두 군데 있지만 어렵지 않다. 그래서 뭐 포토존이랄 곳도 없지만 우리는 즐겁게 족두리봉, 비봉 등 주변 봉우리들과 차마고도, 병풍 같은 암벽을 배경으로 서서 예쁜 사진을 남긴다.
불광사 쪽으로 내려가는 암릉길에서 낙화유수 대장님, 윤달님, 아라이 대장님을 만나 또 사진을 찍는다. 배경이 향로봉 뒤쪽 봉우리인 것 같은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국화님이랑 가까이 살면 근교산행도 같이 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사는 곳이 삼송이란다.
"넘 멀다!"
서대문구, 은평구 쪽 산행 공지를 주로 하시는 낙화유수 대장님 공지에 가면 좋을 것 같다. 아쉽지만 또 다른 산행지에서 만나길 바라본다.
나는 뒤풀이는 안 하고 오는 사람이라서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국화님은 뒤풀이에 가기에 알파 여산우님에게 잘 부탁을 하고 온다.
"나는 많이 먹고 살찌는 것보다는 나아!"
오늘 북한산 산행은 불광역 2번 출구-장마공원-탕춘대-차마고도-불광사 -연신내 코스로 약 3-4km, 2시간 소요(간식, 휴식 시간 포함) 되었다. 가볍게 걸은 산행이라 그런지 몸에 부담이 없다. 그래도 어째 조금 더 걸어도 좋겠다 싶긴 하다.
'3-4시간 코스가 좋긴 한데!'
너무 힘들어도 안 되고 또 너무 쉬워도 안 되고 나한테 딱 맞출 수는 없다. 이런 산행이든 저런 산행이든 잘 따라가면 된다. 꽃꿈을 꾸고 꽃 같은 사람을 만나 즐거운 북한산 차마고도 산행! 두루두루 감사하다.
오늘 처음 오셨다는 예쁜 국화님과 오손도손 잼나게 산행했다. 올만에 뵌 질매실, 쉬크석, 강풍, 아라이, 산사진, 산지기, 낙화유수 대장님들도 반가웠다. 겸아님, 해피소피아님, 메아리송님, 윤달님 등 산우님들도 정겨웠다. 날씨도 좋고 적당한 코스 걷기라 여유가 있다. 열심히 산행해서 상 받은 산우님들 축하드린다. 임원진과 운영진, 대장님들, 함산한 산우님들 모두 감사하다. 나중 또 좋은 산길에서 뵙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