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산행
4050수도산 산악회에 가입해서 첫 산행을 했다. 작년 11월에 가입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렇게 되었다. 이 산악회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하면 내가 가입해서 주로 이용하고 있는 산악회들이 대부분 다 이곳에서 갈라져 나왔단다. 산행을 하면서 산우님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옆에서 듣다 보니 그랬다.
"회원 수가 무지 많다는데 도대체 몇 명인 거지?"
나는 사람 많은 거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또 회원 수 많은 산악회는 어떤 산악회인가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4050수도산 카페에 들어가 보니 회원 수가 자그마치 3만 명이 넘는다.
"대단하군!"
어느 산악회든지 가입하고 첫 산행을 해야 준회원에서 정회원이 된다. 준회원은 산행 공지 중 일부만 볼 수 있고, 산행 후 올리는 사진도 못 보고, 원정산행 공지도 볼 수가 없다. 정회원이라야 회원들이 볼 수 있는 글을 다 볼 수가 있다. 그래서 한 번은 가야 정회원 등업이 되겠다 싶어 이번 주에는 이미 1주1산으로 엊그제 목요일에 자랑산에서 도덕산+구름산을 다녀왔지만, 오늘 한 번 더 4050수도산에서 청계산을 가기로 한다. 이 산악회는 하루에도 한 10여 군데씩 산행이 있다. 다양한 만큼 산행지 고르기가 좋겠다.
청계산입구역에서 낮 12시 20분에 만난다. 참석인원은 24명이다. 근교산행에 좀 많은 산우님들이 참여한 편이다. 그런데 산행 중 여산우님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산 같이 조망이 좋은 산은 리딩 대장님에 따라서 80-90명씩 참여를 하기도 한단다.
"세상에나!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면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네."
나는 기함한다.
아무튼 청계산 산행은 초입에 계곡 오른쪽에 무덤이 있는 샛길로 올라가 진달래능선을 타고 간다. 무덤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가다 보니 새로운 무덤들이 생겨났다. 봉분도 새로 하고 둥그렇게 돌로 테두리도 해놓고 꽃도 갖다 놓았다. 그새 누가 죽은 모양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번 오고 가는 것이지만 세상은 그가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여전히 잘 돌아간다. 최근 들어 유명인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다. 이름과 업적은 남겠지만 그가 없다고 해서 세상이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니라서 그의 존재감이라는 게 그렇게 큰 것일까 싶기도 하다.
진달래능선 지나 넓은 터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나는 집결 시간이 늦어서 간단하게 삶은 계란과 비트와 포카리스웨트만 싸 갔는데, 다들 너무 푸짐하게 싸 왔다. 여산우님들 편육에 오리고기, 샐러드, 어묵탕 등 여러 산우님들이 먹을 만큼 넉넉하게 싸 왔다. 남산우님들도 직접 만든 샌드위치와 부침개 등을 싸 왔다. 밀러 대장님은 오리고기를 구워주신다. 조금씩 먹었는 데도 다 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부르다. 카페인에 민감한 나는 옆에 앉은 여산우님에게서 커피를 딱 한 모금만 입가심으로 얻어 마신다. 이렇게 먹고도 이따 또 하산 후 뒤풀이에서 돼지갈비를 먹는단다. 나는 오늘도 뒤풀이는 생략해야겠다.
날씨가 영상 3도~13도라 꽤나 덥다. 나는 얇은 내복을 입고 기모셔츠에 얇은 바지와 잠바를 입었고 패딩 조끼 하나를 챙겨 왔다. 점심 먹을 때부터 입은 겉 잠바는 입고서 오르는데 더워서 가다가 벗는다. 철쭉군락지도 지나 1,000 계단 오르기 전에 쉬어간다. '청계산의 유래'라는 안내판이 있다.
<청계산의 유래>
청계산의 유래를 살펴보면청계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라고 한다.그전에는 청룡산이라 불렀다.청룡산의 유래는 과천 관아의 진산을관악산으로 볼 때 과천 관아의 왼편에 산이 있어 마치 풍수지리의 ‘좌청룡’ 형국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수리산을 관악산의 오른편에 있다 하여 백호산이라고도 불렀다.
청계산과 연관된 시조
목은 이색(고려말 학자)
청룡산 아래 옛 절
얼음과 눈이 끊어진 언덕이
들과 계곡에 잇닿았구나
단정히 남쪽 창에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종소리 처음 울리고
닭이 첫 울려 하네
한문 독음과 해석이 궁금하여 AI에게 물어보니 자세히 잘 알려준다.
靑龍山下古寺 청룡산하고사
청룡산 아래 옛 절에
氷雪斷絶之岡 빙설단절지강
얼음과 눈이 끊어진 언덕이 있고
原野溪谷相連也 원야계곡상연야
들판과 계곡이 서로 이어져 있네
端坐南窓 단좌남창
단정히 남쪽 창에 앉아
讀周易 독주역
주역을 읽고 있는데
忽聞雞鳴 홀문계명
문득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안내판의 시조 내용을 바탕으로, 의미를 살려 정제한 ‘완전한 한문시 형식(오언·칠언 혼합, 고시체)’으로 정리해 주기도 한다. 실제 목은 이색의 정본 한시라기보다는 안내판 시조를 한문시로 재구성한 것이란다. AI가 확장해서 다시 쓴 한시라고 할 수 있겠다.
靑龍山下古寺幽 청룡산하고사유
청룡산 아래 고요한 옛 절
氷雪消殘斷嶺頭 빙설소잔단령두
얼음과 눈은 녹아 언덕에서 사라지고
原野溪谷相連處 원야계곡상련처
들판과 계곡은 서로 이어져 있다
端坐南窓讀易秋 단좌남창독역추
남쪽 창가에 단정히 앉아 주역을 읽다
忽聞曉鷄聲一動 홀문효계성일동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문득 들으니
人間時序入心 인간시서입심류
인간 세월의 흐름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청계산에 대해 알아가며 쉬다가 이제 1,000 계단을 올라간다. 청계산도 매바위와 정상 매봉을 오르려면 계단을 꽤나 올라가야 한다. 한바탕 가파르게 올라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곧 돌문바위가 나타난다.
"돌문바위를 통과해서 세 번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일명 정기바위로 알려진 돌문바위에서 여산우님 몇이 세 번 돌기를 한다. 나는 기독교 신앙인이라 그런 건 안 믿기에 안 돈다. 그냥 사진만 찍고 올라간다. 신기하게도 이 산악회 사람들은 아무도 사진을 안 찍는다. 내 사진을 찍어준 여산우님에게 사진 찍으려나 물어봐도 고개를 흔든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나는 재미가 좀 없다.
사진을 찍다 보니 나 혼자 뒤처져서 부지런히 선두팀을 따라간다. 곧 매바위가 나오는데 우리 팀은 아무도 없다. 급히 다른 팀 사람에게 인증숏 부탁하고 청계산 정상 매봉으로 간다. 그곳에 다들 모여서 쉬고 있다.
"정상석에서도 단체 사진 안 찍어요?"
나는 정상석에서 개인 사진을 남기고 물어본다. 처음에는 그렇다고 하더니 여산우님들이 무어라고 하니까 단체 사진은 찍는단다. 밀러 대장님은 사진 찍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신단다.
"그렇군!"
하산은 옛골 쪽으로 하기로 한다. 매봉에서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가 혈읍재 쪽으로 가다가 중간에 옛골 쪽으로 간다. 길은 좋다. 자주 왔던 길이라 익숙해서 쉽다. 계곡이 나오는데 얼음이 언 곳이 있다. 선녀폭포까지 휘리릭 내려온다. 선녀폭포에는 물이 없을 거고 있더라도 얼었을 것이다. 왼쪽길로 내려와서 군부대 뒷길로 간다. 전에는 이곳을 막아 놓았더니 이제 또 터 놓았다. 안 그러면 저쪽 군부대 건너편으로 해서 도로길 따라 한참 가야 하는데, 이쪽 숲길로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긴다.
약 8km, 3시간 30분 소요되었다. 휴식, 점심시간 30여 분 포함해서이다. 다들 사진을 안 찍고 내려오니 시간이 비교적 적게 걸렸다. 나는 뒤풀이를 안 할 생각이라 인사를 해야지 했는데, 아무도 안 보인다. 앞서 간 이들이 있고 내 뒤에 오는 이들이 있다. 어차피 그냥 올 거라서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 환승해서 집으로 온다. 버스에서 보니까 뒤에 오시는 분들이 마포갈비 쪽으로 가는 걸 보니 그곳이 아마도 뒤풀이 집이 아니었나 싶다.
큰 부담 없이 느리게 천천히 산행에만 집중해서 리딩하시는 터프가이 밀러 대장님과 정겨운 산우님들 덕분에 즐거운 청계산 산행이었다. 이제 길을 텄으니 마땅한 산행지가 있으면 자주 참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