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 수리산 산행 : 관모봉+태을봉
산자산에 가입 후 두 번째 산행으로 청계산을 예약했는데, 리딩 대장님이 개인사정으로 산행 공지 취소를 했다. 이런 경우는 드문데, 다른 산악회에 나온 청계산을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둔다. 수요일이 아닌 목요일 공지도 살펴봐도 마땅한 곳이 없다. 너무 여러 번 간 곳이거나 돌이 많은 곳은 안 가고 싶고 생각이 많다.
'이번 주는 쉬어야 하나 어쩌나?'
매주 토요일마다 산행이나 여행을 하고 있는데, 이번 토요일은 대학 동창 모임이 있다. 그래서 미리 며칠 앞당겨서 산행을 하고 싶은데 말이다.
아침까지도 결정을 못하다가 가볍게 간식 준비해서 무조건 나가 보기기로 한다. 혼산으로 수리산 관모봉과 태을봉이 좋겠다. 산악회에서 수리산은 여러 번 갔지만 수리산둘레길 코스로만 갔고, 지난번에 한번 관모봉과 태을봉 코스가 있었는데 비가 와서 안 갔다. 혼산으로 관모봉과 태을봉은 한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간지가 꽤 되어서이다. 산악회에서 가는 날은 기온이 떨어져 춥고 비도 온다 하니 거추장스러울 듯해서 예약했다가 취소했다. 예전에는 날씨에 상관없이 산행을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편하고 쉬운 게 좋다.
오늘은 집을 나서기 전에 울 남편 먹으라고 북어뭇국 끓여놓고, 현미 누룽지와 북어뭇국, 오이장아찌, 물을 준비해서 배낭에 넣는다. 겨울에는 늘 가지고 다니는 아이젠과 우비와 우양산도 배낭에서 꺼내지 않고 그냥 둔다. 산에서의 날씨는 혹시 모른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다 안 녹고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너무 햇빛이 쨍하거나 갑작스럽게 비가 올 수도 있으니까. 암튼 배낭은 꽤 무겁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옷도 최대한 얇게 입었다. 그 대신 안에 내복을 입었다.
오전 9시 30분 집을 출발한다. 도보로 매교역까지 20분, 지하철로 한 번 환승해서 명학역까지 30분, 환승하는 시간까지 총 1시간 예정이다. 아, 그런데 가다가 트랭글 앱을 핸드폰에 설치하고 로그인을 하려다가 잘 안 되어서 실랑이를 한다. 그러다가 깜빡하고 그만 명학역을 지나치고 말았다. 내리려는데 문이 금방 닫혀 버린다. 할 수 없이 관악역에 내려서 다시 거꾸로 한 정류장을 돌아온다. 그사이에 시간이 또 지나가서 오전 10시 40분에 명학역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수리산약수터에 도착하니 정자에 남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배낭도 없다. 스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 사람 없는 게 좋은데!'
나는 속으로 놀라면서 걱정을 한다.
예전에 도봉구에 살 때 산길을 걸어 도봉정보도서관에 가다가 한 번 돈을 뺏긴 적이 있다. 운동기구들이 있는 곳에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흉기를 들고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겁을 집어 먹고 있는 돈을 다 꺼내서 주었다.
그 후 산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앉아 있는 남자를 보면 경계를 하게 된다. 산에서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는 건 괜찮은데 남자 한 사람을 만나는 건 좀 그렇다. 세상은 자꾸 험해지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에 무섭게 느껴진다.
울 딸은 절대 혼자 산에 가지 말라고 그러는데 혼자 오면 좋은 점이 많다. 내 보폭대로 걸을 수 있고 코스도 맘대로 변경할 수 있고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간혹 시도 한 수 나오기도 한다.
내가 산악회에서 늘 가던 가운데 가파른 길로 올라가니 조금 있다가 그 남자가 오른쪽 완만한 길로 올라와 내 앞에서 간다. 중간에 길이 합쳐지기 때문이다.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가다가 한참 아래를 내려다보며 해찰을 한다. 관모봉 가는 가파른 길로 오르니 저 앞쪽에서 또 보인다. 조금 더 가니 관모봉과 수리산둘레길 분깃점이 나오는데 그곳 나무의자 쉼터에 그 남자가 앉아 있다. 간격을 두고 나이 든 남녀 두 사람이 또 다른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둘레길로 간다. 나는 그 남자가 무서워서 관모봉 포기하고 두 남녀를 따라 둘레길로 들어선다. 남자가 뒤에 가는 나를 쳐다본다.
"관모봉 가려는데 저 남자가 수리약수터에서부터 계속 같이 가게 되어 무서워서 다른 길로 가는 거예요. 사람 있는 곳은 괜찮으니까요."
허리가 굽은 여자는 지팡이를 짚고 앞에 가고, 남자는 라디오인지 드라마인지 유튜브인지를 엄청 크게 틀어놓고 들으면서 뒤따라 간다. 언젠가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 내용이다. 남자가 이혼을 하자고 하면서 이튿날 카드도 안 되게 해 놓았느니, 평생 아내로서 집안일에 남편 내조한 게 억울하다느니 어쩌느니, 뭐 그런 내용이다. 안 좋은 이야기인데, 라디오 소리가 워낙 커서 온 산에 다 들린다. 듣기가 싫다.
'산에까지 와서 라디오를 듣는 건 또 뭐람! 산에서는 자연의 소리를 들어야지. 혼산의 이유는 조용히 혼자 걷고 싶어서인데 시끄럽기만 하다! 어서 벗어나야겠다.'
가다 보니 이정표에 관모봉 오르는 길이 나온다. 관모봉까지 700m가 채 안 되는 거리이다. (600 몇 m라고 쓰여있었는데 정확한 숫자는 기억을 못 하겠다.)
"얼마 안 되네!"
나는 얼른 그들을 지나쳐서 관모봉 쪽으로 오른다. 처음 가보는 길이다. 암릉이 꽤 있다.
"수리산약수터~관모봉~태을봉을 가파른 코스로 오르고, 하산은 어디로 하지?"
산을 오르면서 계속 생각한다.
"가보면 알겠지. 마음 내키는 대로!"
관모봉까지는 계속 오름길이다. 조금 가파른 길이다. 암릉길도 있지만 험하지는 않고 오르기가 좋다. 몇 군데 암릉 조망터가 있는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어디가 어디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탁 트인 공간에서 발아래를 조망하는 기분은 시원스럽다. 비스듬한 암릉길에 짧은 줄이 달려 있다.
"앙증맞기도 해라!"
그동안 오른 산들의 엄청난 암릉 위에 박힌 철 난간이며 아슬아슬한 로프구간을 기억하며 빙긋 미소가 지어진다.
가파른 데크길과 암릉길을 올라가니 널찍한 전망데크가 나오고 슬기봉 쪽인지 태을봉 쪽인지 봉우리들 조망이 된다. 거기서부터는 암릉길이 꽤 있다. 그렇지만 또 우회로가 있어서 나는 그 길로 간다. 관모봉 오르는 마지막 구간도 암릉길이다. 위험하지는 않다. 암릉길 끝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게 먼저 보인다. 반갑다.
'사진 한 장 못 찍고 여기까지 왔는데 사람 하나 없으면 어떡하지?"
나는 관모봉으로 올라서며 혼자 생각한다. 그런데 관모봉에는 두 사람이 있다. 젊은 여자 한 사람, 아까 약수터에서부터 본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자 한 사람, 둘 다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다. 남자는 스틱을 의자에 기대어 놓았다.
"저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내가 다른 의자에 배낭과 스틱을 내려놓고 젊은 여자에게 카메라를 내민다.
"몇 장 찍어주세요."
여자는 관모봉 표지석과 그 위에서 나부끼는 태극기가 다 나오게 여러 장 찍어준다.
"사진 찍어 드려요?"
"아뇨!"
여자는 자기 개인 사진은 안 찍는 모양이다.
나는 고마워서 간식을 나누어 먹을까 하여 묻는다.
"삶은 계란 한 개 드실래요?"
"아뇨!"
나는 의자에 앉아서 점심으로 싸 온 것들을 꺼낸다. 현미 누룽지에 보온병에 싸 온 뜨거운 북어뭇국을 부어 불려놓고, 오이장아찌에는 찬물을 부어 짠맛을 우려낸다. 그리고는 계란 한 개를 까서 먹으면서 오이장아찌를 집어 먹는다. 집에서 담근 것인데 짜지 않게 한다고 했는 데도 장아찌이다 보니 짜다. 누룽지가 불자 함께 먹으니 그새 짠맛이 많이 가셨다. 어느 정도 다 먹어갈 즈음 또 여자에게 물어본다.
"계란 3개나 싸와서 하나 드려도 되는데 드실래요?"
"아뇨."
"어디서 올라왔어요?"
"수리약수터요."
"저도 거기서 올라왔어요."
"근데 못 보았는데요."
"아, 제가 조금 돌아와서요."
그리고는 나이 든 남자를 흘끗 쳐다본다. 남자는 우리를 등지고 앉아 있다. 조금 있으니 여자 한 사람, 남자 한 사람이 올라온다. 나보다 높은 곳에 앉은 여자는 점심을 먹는 것 같았고, 금방 올라온 남자는 조금 쉬었다가 내가 올라온 암릉길로 내려간다. 내가 무서워했던 나이 든 남자는 그대로 앉아 있다.
"태을봉 안 가실 거예요?"
"네."
내 사진을 찍어준 젊은 여자가 수리약수터 방향 데크길로 내려간다. 그래도 아직 다른 여자가 점심을 먹고 있었으므로 괜찮다. 나이 든 남자가 일어나서 스틱을 들고 태을봉 쪽으로 간다. 내가 짐을 챙기는 사이 점심 먹던 여자도 어디론가 가고 없다.
나는 천천히 관모봉 암릉과 태극기 주변 조망을 하며 조금 더 시간을 보낸다. 처음 왔을 때는 관모봉 암릉이 꽤 위험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 아담하다.
'그새 내 담력이 커진 것일까? 여러 번 와서 익숙해서일까?'
관모봉은 세 번째 왔기에 낯설지가 않다. 오늘까지 혼산으로 두 번, 산악회에서 한 번이다.
관모봉에서 태을봉 가는 길은 평지길이 많아 걷기가 좋다. 마지막 부분에 오름길이 나오지만 그리 가파르지는 않다. 초반오름길에서 어떤 여자가 좁은 길 한복판에 앉아서 지팡이로 원을 그리며 숫자를 세고 있다. 내가 가까이 가도 길을 비켜줄 생각을 안 한다.
"좀 지나갈게요."
"저쪽 길로 가세요."
희미하게 나 있는 옆쪽 길을 가리킨다."
"반듯한 길을 가로막고 뭐 하시는 거래요?"
"에이! 숫자 세다 쉬어서 잊어먹잖아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짜증 섞인 투다. 아마도 주술적인 무슨 행동인 듯하다. 어느 점쟁이가 복채를 두둑이 받고 내린다는 처방이 "수리산에 올라 관모봉 쪽을 보고 원을 100번 그으라"라고 했던지 뭐, 그런 걸 거다! 예전에 우리 친정 엄마가 그런 걸 좋아해서 내가 잘 안다. 암튼 나는 그 여자가 안 비켜주어 말다툼이 날 수도 있기에 낙엽이 쌓인 옆길로 올라간다. 이리하여 수리산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세 사람 만났다.
마지막 구간 로프가 쳐진 암릉길 올라가니 태을봉이다. 태을봉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두세 사람 만났는데, 태을봉에는 사람 하나가 없다. 조금 기다리니 내가 오른 길 쪽에서 젊은 여자 하나와 반대쪽에서 남녀 커플 한쌍이 올라온다. 나는 이번에도 젊은 여자에게 태을봉 기념사진 부탁을 한다. 정상석 앞쪽은 진흙인데 엊그제 비나 눈이 내려서인지 질척 질척하다. 등산화 밑쪽이 푹푹 빠진다. 좀 단단한 곳으로 살피면서 걸어서 미끈한 돌비 정상석 옆으로 가서 선다. 사진을 여러 컷 찍어준다.
그 여자도 자기 폰을 내밀기에 내가 사진을 찍어준다. 아주 다양한 포즈를 취한다. 배를 정상석에 맞대고 찍는 포즈도 한다.
"저건 무슨 의미일까? 기를 받는다?"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는다.
"슬기봉 안 가실 거예요?"
"네. 관모봉과 태을봉도 찍었으니 여기서 그냥 내려가려고요. 잘 다녀가세요."
나는 슬기봉은 한 번도 안 가봐서 다음 기회에 가보리라 기약을 하며 군포문화회관 쪽으로 내려오기로 한다. 이정표를 보니 2km이다.
"1시간 정도면 내려가겠군!"
태을봉 전망대에서 남자 두 명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한 남자는 신문을 뒤적이고 있다. 조망터 사진을 찍고 가파른 데크계단이 이어지는 길을 휘리릭 내려간다. 오를 때는 계단이 힘들어도 내려갈 때는 쉽다.
산본고등학교 쪽으로 가다가 남자 한 사람이 태을초등학교 쪽으로 가기에 따라간다. 미리 지도를 체크해 보았더라면 산본고등학교 쪽으로 내려갔을 텐데, 혹시 그쪽 길이 역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싶어서이다. 그런데 내려가보니 도보로 산본역 가기는 좀 그렇겠다.
"걸어서 30분이나 걸리네!"
산본역 가려면 버스도 군포문화회관 앞에서 좌석버스를 타야 한다. 그래서 바로 버스로 집까지 가는 걸 검색해 본다. 일반버스 타고 한 번 환승하면 바로 집 근처까지 간다.
"그럼 버스로 가야지."
태을초에서 10여 분 걸어서 군포문화회관 정류장으로 간다. 고천행 버스를 타고 의왕시청에 내려서 거기서 수원 오는 버스를 갈아타고 집까지 1시간 내로 온다. 버스가 금방금방 와서 기다리지도 않고 많이 걷지도 않고 초고속으로 왔다. 집에 오니 오후 3시 30분이다. 엄청 빠르다! 혼산 하면 이렇게나 시간 절약이 된다. 집결시간 등 정해진 시간이 없으니 아침 일찍 나가지 않아도 되고, 간식을 충분히 구색 맞추어 가져갈 필요도 없고, 뒤풀이를 안 해서 부담도 없고, 빨리 집에 돌아와서 쉴 수도 있고, 두루두루 좋다. 혼산의 장점이다.
또 혼산의 단점도 있다. 산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정상에 사람이 없으면 사진을 못 찍을 수도 있고, 혹 다치거나 했을 때는 응급처치를 할 수도 없다.
오랜만에 혼산을 해보니 많은 사람이 다니는 산은 괜찮은데, 사람이 별로 없는 호젓한 산은 좀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가능하면 혼산보다는 산악회를 통해 몇 명이 같이 가는 것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