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이번 토요일에는 단종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 여행을 가기로 해서 산행이 어렵다. 지난주도 천안과 안성 여행하느라 산행을 쉬었다.
'가능하면 1주 1산은 해야 하는데...'
그래서 여기저기 내가 가입한 산악회 공지를 찾아보다가 관악산을 가기로 한다. 리딩 대장님 공지에 남산우님 딱 한 명 신청을 했다.
"난 사람 많은 거는 안 좋아하니까 오붓하니 좋겠다. 킹콩 바위 오르고 요리조리 걷는다니까 돌이 많지 않은 흙길로 걸을 수도 있겠다."
아침에 참가신청을 한다.
사당역 소공원, 오전 11시 집결이다. 나는 오전 9시 10분에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가면 1시간 내로 갈 수 있지만 요즘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어서이다. 매교역까지는 도보 20여 분, 지하철 두 번 환승해야 하니까 환승 시간 포함해서 조금 여유를 두고 나선 것이다.
아, 그런데 수원역에서 환승해서 자리가 나길래 앉아서 알람을 설정해 두고 눈을 감았는데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에 워낙 일찍 깨니까 이 시간대에는 살짝 졸음이 오기도 한다. 집에 있을 때는 새벽에 3시 30분 정도에 깨서는 이것저것 할 일(성경 쓰기, 책 읽기, 글쓰기, 음식 만들기 등) 다 해 놓고, 누워서 한 시간 정도 자기도 한다.
사람의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
"지하철로 30여 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인데 잠이 들다니!"
알람이 울려서 눈을 떠 보니 총신대입구(이수)역이다.
"어? 사당 지나쳤나? 내려야 하나?"
그러는 사이 지하철 문이 닫혔다. 지하철 문 위쪽에 붙은 노선표를 보니 다음 정차역은 동작역이다.
"지나쳤군!"
급히 시계를 보니 사당역에 내렸으면 5분 정도 시간이 남게 집결지에 도착하는데, 동작에서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 갈아타면 10분 정도 늦겠다. 리딩 대장님에게 문자를 보낸다.
"제가 사당 지나쳐서 동작까지 와버려서 10분 정도 늦겠어요. 어쩌죠?"
답문이 온다.
"조심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오늘은 참여 인원이 적어서 다행이다. 많았으면 엄청 미안했을 뻔했다.
사당역에서 두 분 남산우님 호위무사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지난번 정기산행 때 올랐던 길로 오른다. 산길로 들어서니 활짝 핀 진달래가 반겨준다. 올 들어 처음 만나는 연분홍 진달래이다.
"와우! 진달래 피었네."
나는 환호성을 지르면서 진달래 가까이 가서 폰에 담는다. 그새 두 분은 한참 앞서간다.
"천천히 가요."
오늘의 리딩 대장님이 나를 기다렸다가 얘기한다.
"그래서 왔죠. 갈수록 산행이 힘들어요."
내 말에 맞장구를 치신다.
"나도 그래요. 연달아 안 쉬고 7일을 내리 산을 타니 좀 무리인 것 같기도 해요."
산행이 힘든 이유는 다르지만 그래서 천천히 살방살방 간다는 이야기이다.
한바탕 올라치니 양 바위가 나온다. 귀가 꼬불거리는 모습이나 입과 눈, 코 등 어쩌면 그리도 양과 닮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바위에서 저런 부드러운 느낌이 나오다니!"
자연의 조각가는 위대하다. 나는 양 바위를 또 찬찬히 눈 맞추고 일행을 뒤따라간다. 양 바위 아래쪽에 진달래가 피어있어서 눈 맞추며 가는 재미가 있다.
킹콩 바위 위쪽에서 쉬어간다. 산행코스에는 있는데 어딘지 몰라 나중에 대장님한테 물어보니 거기가 킹콩 바위 위였단다. 아래에서 보아야 킹콩 바위 모양이 제대로 보인다고 하니 언젠가는 그 바위를 꼭 보아야겠다.
흙길, 너덜지대 오름길 지나 늘 먹는 밥터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공터 옆에 약수터가 있다. 부적합수이긴 한데 혹 야영을 하게 되면 그 물을 정수해서 쓸 수 있다며 남산우님이 좋아한다. 넓은 터 한쪽에 제단 같이 생긴 돌이 보여서 그 위에 밥상을 차리고 점심을 먹기로 한다.
"셋이 앉으면 딱이겠는데요."
나는 배낭에서 접이의자도 꺼내지 않고 넓적한 돌 앞에 돌의자 비슷한 돌 위에 앉는다. 돌의자가 낮아 자칫 뒤로 넘어갈 것 같지만 중심을 잘 잡고 앉는다.
우리들 밥상은 나름 푸짐하다. 리딩 대장님은 잡곡밥에 겨자잎 무침, 미역줄기 무침, 물미역 초장까지 싸 오셨고, 남산우님은 쌀국수에 단감과 커피, 나는 현미누룽지에 삶은 계란, 대저토마토를 싸갔다. 먹는데 정신이 팔려 그만 깜빡하고 사진은 못 찍었지만 엄청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다.
"이곳을 여러 번 왔는데 왜 약수터도 돌제단도 알아보지를 못했을까?"
사람이 보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알겠다. 늘 지나가지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우리는 그 무엇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샛길로 올라가는 길에도 군데군데 진달래가 피어있다. 두 호위무사님은 10m 정도 앞서 가시면서 자주 뒤를 돌아보며 내가 잘 오고 있나 살펴 주신다.
등산로 정코스가 나오면서 이정표와 데크길이 보인다. 가다가 암릉 사이에 자란 소나무를 보고 대장님이 발걸음을 멈춘다.
"이거 1억짜리 소나무예요."
그리 크지 않은 소나무가 암릉 위에서 어렵게 자라난 모습이 꼭 분재를 해놓은 모양새다. 정원 같은데 암릉이랑 소나무랑 통째로 옮겨 놓으면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명작품이 되겠다.
서울대 조망터가 나오기에 추억의 장소라서 찍어본다. 나와 얽힌 이야기들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둔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는 안 해도 그만이다.
"여기가 관악산의 매봉이에요."
잠깐 사이, 대장님이 누군가 바위에 노란 페인트 같은 걸로 '매봉'이라 쓰인 곳으로 우릴 안내한다. 좀 안쪽에 숨어 있어서 일부러 올라가야 보인다.
"여긴 처음이네요! 사진 찍어야죠."
관악산을 구석구석 아시는 대장님 덕분에 관악산 '매봉' 인증을 한다.
곧 하마 바위에 이른다. 아래쪽에서 보니 커다란 하마 모양이 나오기에 사진에 담는다. 외국인이 산행하면서 나를 보고 사진 찍어주냐는 손가락 신호를 보내며 쳐다본다. 그렇지만 호위무사 두 분은 벌써 하마의 등 위로 올라갔다. 나도 사진 안 찍고 얼른 따라 올라간다. 하마 등 위에서 뒤 아래를 보면 하마 엉덩이 쪽에 악어 바위가 보인다. 길쭉하게 살짝 벌어진 입이며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영낙없이 악어같이 생겼다. 신기방기하다. 이곳에서는 개인 사진을 여러 번 찍었기에 악어 바위만 찍고 그냥 내려간다.
샌드위치 바위, 해치바위 등도 지나간다. 헬기장과 데크가 있는 곳에서 쉬어간다. 남산우님 가져오신 단감 양이 너무 많아 아까 점심때 다 먹지 못하고 남겼는데 여기서 나누어 먹는다.
하산은 헬기장 아랫길로 내려간다. 낙성대역이 하산 지점인데 처음 가보는 길이다. 대장님이 멋진 암릉 조망터에서 지나온 길과 여러 능선들, 삼성산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알려주신다. 암릉 사이에 이제 막 망울을 맺고 있는 진달래가 곧 꽃을 피울 태세이다. 차암 예쁘다.
서울대 쪽도 훤히 내려다보인다. 입학식, 졸업식을 하는 노천극장과 운동장도 아주 가까이 보인다.
"금방 내려가겠네."
그런데 대장님이 아니란다.
"갈 길이 멀어요."
서울둘레길이 나오고 또 더 아래로 내려가니 관악산 둘레길이 나온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길고도 길다.
산 아래쪽에는 진달래꽃도 제법 많이 피어 있다. 꽃을 담느라 자꾸 발걸음을 멈춘다. 두 분 호위무사님은 나를 버리고 막 가버리는 것 같지만 한참 가다가는 또 기다리고 있다. 숲 속 낙엽 속에서 도토리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려는 듯하다. 길가 흙 속에서 싹을 내밀고 현호색이 이제 곧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가랑잎 낙엽이 하얀 눈처럼 숲 속에 수북이 깔려 있기도 하다.
물맛이 좋다는 <천지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보냉병과 물병에 약수를 받아 온다. 거기서부터는 진달래가 여기저기 막 피어나 진달래 산행이라고 해도 좋겠다. 두 분 호위무사님들과 신기한 바위 이름 알아가며 관악산 진달래 산행! 자그마치 2만 보를 넘게 걸었다. 바위가 많아 꺼려지는 곳이 관악산인데 이렇게 순한 길도 있다니, 참 길이 많은 게 산이기도 하다. 새로운 길을 알려주신 대장님과 도란도란 함께한 남산우님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