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도 보고 영화도 보고 장도 보고 일거삼사오득

수원화성 성곽길의 봄

by 서순오

"이번 주 토요일에 여행을 가면 꽃을 보겠구나!"

그런데, 뜻밖에도 지난 토요일에 이화 교정에서 노오란 꽃을 만났다.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영춘화이다. 돌담에 가지가 늘어지면서 군데군데 피어 있는 그 꽃을 보느라고 한참이나 발걸음을 멈췄다.

"드디어 기다리던 봄이 왔구나!"

아직 추위는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지만 꽃은 봄을 몸으로 느끼고 피어난 것이다.


오늘은 수원미디어센터에 영화 <중경삼림>을 보러 간다. 오전에 비가 내려 습기를 머금은 날씨가 뿌옇다. 이슬비도 한두 방울씩 내리고 있어서 노란 양우산을 쓰고 간다.


가는 길에 지동시장에서 처음 보는 저울을 담아본다. 반찬가게인데 조금 일찍 문을 닫은 것 같은데, 문을 열었을 때는 잘 안 보이던 물건이다. 공중에 달려있는 건데, 아마도 반찬 중량을 달아서 팔 때 쓰는 용도인 것 같다. 수원천 지나며 천 위에 설치된 정조대왕 능행차 모형도 담아본다.


수원화성 성곽길 동남각루로 올라가려는데 꽃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얼른 그 옆으로 다가간다. 꽃이 꽤나 많이 피어 있다. 속눈썹이 긴 매화꽃이다. 동남각루를 배경으로 매화꽃이 나오게 사진에 담는다. 매화는 수원화성 성곽길과 잘 어우러진다. 옛것이고, 고고하고, 우리 것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수원화성 성곽길 올라가면서도 성벽 사이로 그 매화를 담아본다. 매화꽃 뒤로 전통시장의 간판들이 보여서 그리 예쁘게 구도가 나오지는 않지만 애써 사진을 찍어본다.

"혹시 멋진 컷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봉돈 쪽으로 가는데 또 매화꽃이 피어 있다.

"와우! 봄이네!"

조금 더 가니까 진노랑 산수유꽃도 많이 피어 있다.

"올 들어 처음 만나네!"

꽃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영화 시작 시간이 20분도 채 안 남았다. 서둘러서 걷는데 오늘 열기구는 마치 커다란 하얀 알처럼 앉아 있다. 남수헌 한옥숙박시설 옆으로 내려간다. 공사가 5/10일까지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외부는 다 지었어도 내부공사가 남아 있나 보다. 수원시에서 하는 사업인데 안내 현수막에 공사 책임자가 '안중근'이라고 되어 있어서 신기해서 한번 더 쳐다본다.


수원미디어센터에서 영화 <중경삼림>(※1)을 보고 나오니 날씨가 활짝 개었다. 그냥 집으로 갈까 하다가 수원화성 성곽길을 조금 더 걸어보기로 한다.

"내일 산행을 할까 했는데 마음이 내키지를 않으니 그냥 오늘 수원화성 성곽길을 걷는 것으로 하자."

1주 1산은 또 이래서 지킬 수가 있게 되었다.


이번 금요일에는 가족끼리 <왕과 사는 남자> 영화를 보고, 토요일에는 천안여행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단종과 관련된 장소인 청령포 등 영월 여행도 할 예정이다. 이래저래 산행을 조금 쉬게 되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분들이 더 기력이 있을 때는 산행을 했는데 이제는 여행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언젠가는 나도 산행을 안 하고 여행을 하는 날이 올런지도 모르겠다.


창룡문 쪽으로 가까워지니 열기구가 떠오른다. 소리 없는 열기구에서 둥둥 둥둥 소리가 나는 것 같이 경쾌한 느낌이 난다.

"언젠가는 나도 한번 타 봐야지. 울 딸이랑 외손녀가 오면 그때 타 보면 되겠다."


창룡문, 동북노대, 동북공심돈 지나 연무대로 간다. 계속 열기구가 조금씩 이동하는 모습과 수원화성 성곽길을 담는다. 늘 보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동암문은 보수공사 중이라 옆길로 지나간다. 수원화성 성곽길은 성벽 옆으로 난 돌길도 있지만 그 아래쪽에 걷기 편안 흙길도 있어서 아랫길로 간다. 비탈진 길에 보라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제비꽃이다. 올봄 들어 네 번째로 만나는 봄꽃이다. 영춘화, 매화, 산수유, 제비꽃, 지금은 초봄이라서 이렇게 손가락으로 꽃이름을 세어보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지천에서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그 누구도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자기 생긴 모습 그대로 맘껏 가장 아름다운 자태로 피어나는 꽃들이다. 크기도 모양도 향기도 서로 다 다르지만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나비와 벌, 새들은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한다. 꽃들을 왔다 갔다 하면서 흥겨운 잔치를 벌인다.

"봄이 아름다운 이유라고나 할까?"


방화수류정 가까이 오니 햇볕이 잘 드는 쪽에 매화가 만발해 있다. 막 피어나는 봄꽃과 수원화성 성곽길을 함께 담는 게 오늘의 내 마음속 미션이다. 사진작가라면 어떻게 구도를 잡아야 할지 잘 알련만 나는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찍으니 영 마음에 드는 사진 찾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방화수류정과 용연과 그 옆에 키 큰 나무로 서서 축축 늘어진 능수버들을 함께 담는 건 아무렇게나 찍어도 얼마나 멋스러운지 감탄을 한다. 초록초록 능수버들 가지에는 이제 막 물이 오르고 있다. 그 앞에 서보니 나도 유명 배우 같이 꽤 괜찮아 보인다. 배경이 사람을 돋보이게 한다.


용연을 한 바퀴 돌고 화홍문으로 흐르는 수원천 징검다리를 건너 세게로 가는 이정표까지 걷고 오늘 수원화성 성곽길 코스는 마감하기로 한다.


성곽길을 조금 더 걸어도 좋지만, <메가박스>에 가서 <왕과 사는 남자> 예매를 하고, 전통시장 장도 보려면 너무 늦으면 안 된다. 전통시장은 오후 5시~6시 정도면 문을 닫는다. 그 시간쯤 가면 물건들이 싸다. 장 본 물건을 들고 영화관 가기는 좀 그래서 먼저 영화표 3매를 예매한다. 그리고는 전통시장으로 가서 1팩에 1만 원짜리 족발 2팩에 1만 5천 원, 1팩에 5천 원짜리 딸기는 4팩에 1만 원, 양파 1망 2천 원, 콩나물 2 봉지에 1천 원, 5천 원짜리 사인머스켓은 2천 원, 이렇게 사서 배낭에도 넣고, 두 손에 나누어 들었다. 20여 분 거리 집까지 오는데, 무겁지는 않고 딱 들고 올 만하다.


하루에 3가지 일을 유익하게 했으니 일거삼득이다. 아니다. 세계유산 걸으며 건강을 챙기고, 예쁜 봄꽃도 만나고, 좋은 영화도 무료로 보고, 싼 값에 장도 보고, 일거사득, 일거오득이다!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에 일거삼사오득!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다.


(※) 영화 <중경삼림>에 대해서는 따로 기록하기로 한다.

수원화성 성곽길 동남각루와 매화


산수유
매화
동북노대에서 본 열기구
창룡문과 열기구
열기구를 배경으로
제비꽃
매화와 방화수류정과 용연
동북포루와 산수유
방화수류정과 용연을 배경으로 능수버들 옆에서
동북포루와 방화수류정과 용연
화홍문과 산수유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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