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이화 경영 함께 걷기
"하필 비 소식이 있을 게 뭐람!"
제5회 이경 함께 걷기를 하는 4월 4일 토요일에는 오전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낮 12시까지 계속 온단다. 며칠 전부터 하루 두세 번씩 일기예보를 들여다보아도 변함이 없다. 아니 이틀 전에는 오전 11시까지 비가 온다더니 하루 전에는 낮 12시까지로 늘어났다. 우리 이화 경영 동창 회원들 40여 명이 모여 함께 이화 교정을 걸을 시간에 딱 비가 온다는 것이다. 이경 함께 걷기 단톡방에는 동창회 회장님 이하 준비하시는 임원진들이 조용하지만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구미리 회장님이 말문을 여신다.
"굿모닝입니다! 다행히도(!) 내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약한 비가 예보되어 있으며, 이후에는 날씨가 개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봄비를 맞으며 봄꽃을 즐기고,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예보를 고려하여 박물관 앞 집결은 그대로 진행하되,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박물관 현관 앞에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가볍게 사용하실 수 있는 우의도 준비해 두겠습니다. 물론 개인 우의를 준비해 오셔도 좋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고, 내일 반갑게 뵙겠습니다!"
문장마다 끝마침표를 써야 할 자리에 느낌표를 쓰는 것은 다분히 강조의 의미일 것이다.
나는 금방 댓글을 단다.
"비 오는 날 산책도 나름 운치 있습니다."
이어서 부회장님이 바로 댓글을 다신다.
"맞아요. 사진도 더 잘 나오고요. 나름 재미있답니다."
그러고는 비 오는 날 우의 입고 4명의 여자분들이 찍은 사진을 한 장 참고하라며 올리셨다.
"주최 측이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비가 와도 즐겁다!'를 외치고 있습니다!"
구미리 회장님 답글이시다.
"네."
박성연 부총장님의 간단한 대답이시다.
그렇지만 나는 댓글 쓰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속으로 외친다.
"날씨 요정이 있는데, 설마 비가 오겠어?"
지금까지 20여 년 간 산행하면서 일기 예보에 비가 있었던 날에 실제로 비가 오는 날은 한두 번에 불과했다. 물론 산행 대신 여행 하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2024년 5월 초인데, 강화지맥 2구간(혈구산+퇴모산+덕정산) 산행을 할 때였다. '날씨 요정'이라고 설레발쳤다가 엄청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 그날은 비가 어찌나 거세게 오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서 내 선글라스도 날아가 버리고 모자도 옷도 어찌나 휘날리는지 붙잡고 걷느라 애를 먹었다. 나무가 없는 외길 좁은 능선길을 걸을 때는 심지어 몸까지 날아갈 뻔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바람 쪽으로 등을 돌리고 얼굴을 숙이고 몸을 구부리고 잉잉 울부짖는 비옷과 모자를 붙잡고 겨우 걸었다.
그런데 여행 갈 때 가이드님이 '비 요정 세네 명 있으면 날씨 요정 한 명이 못 당해낸다'라고 해서 '아 그렇구나!' 했었다.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 많은 산 정상을 오르는 동안 비가 온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여행 중에도 거의 온다는 비는 안 오고 날씨가 아주 맑았으니 내가 날씨 요정인 건 맞는 것 같다. 후훗!
어쨌든 오늘 날씨는 최고였다. 이대역에서 집결지 이화박물관 앞으로 가는데 새벽에 비가 온 뒤라 미세먼지도 없고 하늘이 맑고 깨끗했다.
"축복의 날이야. 이경 함께 걷기는 제1회부터 제5회까지 비가 온 적이 한 번도 없잖아!"
임원진 준비팀은 이화박물관 앞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명찰을 준비하고 선물도 챙겨두고 있다. 참가자들이 도착하면 바로바로 출석체크를 하고 하나씩 주신다. 오늘의 사진작가 서지희 고문님은 미리 온 사람들은 동기들끼리 사진도 찍어주신다. 시간이 되어 대강당, ECC관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두 팀으로 나누어 두 명의 이화 재학생 해설사들의 안내로 이화 교정을 돌아본다. 특별히 오늘 단체 사진은 이연주 전 부회장님 따님이 외손녀와 함께 와서 예쁘게 남겨주어서 감사하다.
한 팀은 대강당으로 올라가고 우리 팀은 해설사를 따라 ECC관 안으로 들어간다. ECC관 위쪽으로는 진달래가 많이 피어 있는데 그 길은 안 걷는다. ECC관은 많이 와본 곳이고 이전에 설명도 다 들었는데 아쉽다. 눈치를 채신 구미리 회장님이 ECC관 설명을 조금 듣다가 생략하고 본관을 먼저 가자고 해서 바로 나간다.
이대 본관은 그야말로 이화의 역사이다. 두 가지를 강조해서 설명해 준다. 하나는 본관 중앙 뾰족한 부분에 십자가가 은으로 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모두 다 긁어가서 지금처럼 돌로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전쟁의 흔적으로 3층 건물이 훼손되어 복원하면서 최대한 비슷한 돌로 만들었지만 조금 다르다는 것과 현관으로 들어가는 돌계단에 총탄 자국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돌계단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구미리 회장님이 미리 공부를 많이 해오셨는지 본관이 '파이퍼홀'이라고 알려주시면서 파이퍼 부부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주신다. 그들은 일면식도 없는 한국 이대 본관에 대한 소식을 듣고 복원 비용과 보수유지 관리비까지 보내 주셔서 반은 본관을 복원하고, 반은 남겨서 지금까지도 그 돈으로 사용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보수유지 관리비로 쓰게 될 거라고 한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몸소 실천하신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시다.
본관 3층에는 아파서 늘 기도했던 애다를 기리는 '애다 기도실'이 있다고 하는데 한 번도 못 가보았다. 언젠가 꼭 가보리라 마음먹는다.
대강당을 먼저 돌아본 다른 팀이 마침 본관으로 왔기에 돌계단 위에서 우리 팀과 함께 단체사진을 남긴다. 옆쪽에 보니 본관에 대한 안내가 있어서 읽어 본다.
♡본관 Pfeiffer Hall♡
국가등록문화유산
1935년 건축, 보리스 건축사무소 설계
이곳은 본교 캠퍼스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화강암을 완자무늬로 쌓아 올린 고딕양식으로 건축했다. 건물 전면 위편에 십자가 조각을 부착하여 본교가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대학임을 상징하고 있고, 3층 중앙에 자리한 애다 기도실은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뛰어난 건축미와 한국 최초의 여성고등 교육기관의 대표적 건물이라는 상징성을 인정받아 2002년 5월 31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본관의 영문이름은 파이퍼홀로서 이는 거액의 건축 기금을 기부한 미국인 파이퍼 부부를 기리기 위해 명명된 것이다.
본관 왼쪽 길에 있는 돌의자와 해시계 쉼터로 간다. 안내문에는 ‘그레이 부인 기념 돌의자와 해시계’라고 적혀 있다.
♡그레이 부인 기념 돌의자 & 해시계♡
1935년 제작자 미상
본교 신촌캠퍼스 건립에 크게 공헌한 그레이 부인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돌의자와 해시계이다. 그레이 부인은 1935년부터 본교 건축을 지원하기 위해 기부를 하였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학교 발전을 도왔다. 이러한 공로를 기려 1995년에 설치되었다. 이곳은 교정 속에서 잠시 쉬어가며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화의 전통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쉼터가 되었다.
누군가의 이름이 남아 있는 공간은 늘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다. 오래전, 이화를 위해 기부를 했던 파이퍼 부부나 그레이 부인의 이름이 시간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돌로 만들어진 본관과 돌의자는 우리가 공부하고 쉬어가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물질과 시간을 내어 이곳에 무언가를 남겼고, 그 덕분에 이화는 지금
그 혜택을 한껏 누리고 있다. 선뜻 기부금을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우리는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알지 못해도, 얼굴을 본 적 없어도, 누군가의 선택과 마음이 이렇게 다른 누군가의 삶에 유익을 끼치고 있다. 해시계는 조용히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이곳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남을 수 있을까?"
진선미관으로 간다. 이곳은 예전에는 기숙사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지금은 교수 연구실과 <자연솜씨> 교직원 식당으로 사용된다. 진선미는 이화의 교훈이기도 하다. '가장 최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대학'이라는 뜻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 이름 때문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건물이다.
진선미관 앞쪽, 본관 뒤쪽에 이화 우물이 있다. 정동 이화여고에도 유관순 우물이 있는데, '이화'라는 뿌리가 같기에 이곳에도 만들어 둔 것이리라.
팔복동산으로 올라간다. 돌계단 오름길 한참 올라가야 해서 오랜 선배님들 몇 분은 우물 근처 나무의자 쉼터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이런 길이 있었다고?"
돌계단 오르기 전에 보니까 새로 생긴 건물들도 있다. 그만큼 학교가 커지고 발전한 것이다.
산길 오름길 지나 뒷길에는 개나리가 노랗게 피었다. 도로길 따라 팔복동산으로 간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이곳에 한 번 오른 적이 있다. 기억이 조금 가물거리지만 아마도 안산에 갔다가 이 도로길을 따라 이화로 내려올 때 지나왔던 것 같다.
♡팔복동산♡
이곳은 선대 스승님들이 자주 찾으시던 숲 속의 기도실이다. 특히 8대 총장 김옥길 선생님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곳을 찾아 기도하시곤 했다. 팔복동산은 이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기도하는 곳이다.
1.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2.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3.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5.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6.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7.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10절〉
동그란 원 모양으로 통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팔복동산 안내문이 있는 쪽에는 돌의자가 놓여있다. 아마도 이 돌의자에 앉아서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우리도
모두가 통나무 의자에 앉아서 설명을 듣는데 기도의 자리라 그런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모두들 일어나 이화역사관으로 향하고 나는 잠시 뒤에 남아 팔복동산을 둘러본다. 동그란 통나무 의자 뒤 한쪽에 나무 둥치가 파인 오랜 고목 하나가 지나온 세월을 기억하는 듯 우뚝 서 있다. 그 옆에는 진달래 한 그루가 고목에게 위로를 던지는 듯 활짝 피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세상의 가치관과는 정반대의 팔복은 내게도 조용히 위로를 보내고 있다.
이화역사관으로 가는 길에는 개나리가 예쁘게 피어있다. 이화역사관은 처음 가본다. 한옥으로 되어 있는데, 마당 왼쪽에는 빨간 명자나무가, 오른쪽 뜰에는 진분홍 겹복사꽃이 활짝 피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한껏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한옥은 한옥대로 꽃은 꽃대로 있어도 예쁘지만, 함께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나서 고풍스러움과 화려함이 더욱 빛이 난다.
"넘 예뻐 예뻐!"
감탄사 한 마디에 엔도르핀이 팡팡 솟아 1년씩 젊어지면 10번 외치면 10년은 젊어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설명을 듣는데, 나는 이 꽃으로 갔다가 저 꽃으로 갔다가 어쩔 줄을 몰라한다.
"우리 이경인들이 여기 명자나무 꽃 앞에서 이화역사관 한옥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으면 좋겠는데!"
나는 오늘의 사진작가가 아니라서 속으로 그러고 만다. 이화박물관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다.
이경동창회 정현주 수석 부회장님이 오늘의 이화박물관 해설사님이시다. 하양 저고리, 검정 치마, 옛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옥 앞에 서니 모두들 돌계단에 신발을 벗어놓고 따라서 안으로 들어간다. 이화역사관 안에는 이화의 모든 것이 다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스크랜튼 선교사님이 이화학교를 세운 이래로 최초인 것들이 많다. 보구여관은 여성을 보호하는 집으로 간호학과의 시초가 되었고, 여기를 거처 유학을 다녀와 최초의 김에스더 의사가 탄생하기도 했다.
메이퀸 1호는 스크랜트 선교사님이신데, 외모보다는 리더십을 제일 먼저 보고 선발했단다. 이후에는 여기에다 건강미도 더했다는데, 세간에서는 메이퀸을 외모 보고 선발한다느니 그래서 여성을 상품화하느니 어쩌니 말이 많아서 그만 없애고 말았단다. 그렇지만 리더십과 건강미와 외모의 아름다움이 합쳐진 여성이라니, 그것이 오늘의 이화인을 만든 것이라 생각하니 자부심이 마구마구 솟아난다.
'이화호'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기도 했고, 이화도서관은 건립 당시에만 해도 대학도서관 중에서는 가장 큰 부지를 가진 도서관이기도 했단다. 돌아보면서 특별한 것은 한옥의 문들이 거의 창호지를 바르지 않고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채광과 단열에 좋게 하기 위해서였단다. 우리 전통 가옥인 한옥의 형태를 유지하되 더 살기 좋게 현대의 기술을 적용한 사례라고나 할까? 이화인의 지혜가 엿보인다.
팸플릿에 담긴 <이화역사관 소개>를 실어본다.
이화역사관은 창립 120주년을 맞이한 2006년에 이화학당 최초의 한옥교사를 복원했습니다. 이 한옥교사에 설치된 이화역사관 전시실은 이화여대의 역사를 사진자료와 함께 전시해 놓은 상설전시실과 매년 주제를 달리해 꾸며지는 기획전시실을 비롯한 영상실, 편지방, 기도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06년 5월 26일 개관 이래 이화역사관은 한국여성의 꿈과 염원, 그리고 비전을 느낄 수 있는 역사체험의 공간으로서, 이화여대를 찾는 수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화역사관은 이화여대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교육이념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열어가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화역사관 한옥 전시실에서의 역사기행을 통해 이화의 역할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갖길 기대합니다.
나는 오늘 돌아본 이화역사관과 한 번도 못 가본 이화박물관을 따로 와서 보리라 생각한다. 다른 많은 곳은 여행하면서도 정작 이화인이면 꼭 가보아야 할 곳은 빠뜨렸기 때문이다. 그래야 누가 이화에 대해 물어보면 중요한 부분을 제대로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강당은 서울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 전신)이 지어지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중요한 행사가 치러지는 공간이기도 했단다. 설립자이신 스크랜튼 선교사님의 뜻인 기독교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학생과 교직원들이 매주 채플을 드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경영대학 건물인 신세계관으로 이동해서 뷔페식 점심식사를 하고 이어서 총회를 할 예정이다. 4년이라는 학창 시절을 이화에서 보내고, 매년 몇 번씩 학교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이화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선후배님들이 하나 되는 이경 함께 걷기 시간이 앞으로 더 많은 이경인이 참여하여 단합과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화에 선뜻 소중한 기부금을 보내주신 분들처럼 우리의 기부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