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시대가 도래하기 전 각 가정에는 ○○가

있었다 (**대 에세이 출판 사업 교정본)

by 동그라미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이 유명한 도입 문장을 조금 바꿔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행복한 가정이건 불행한 가정이건 모두 엇비슷한 이유로 제각기 다른 문제를 다루는 비서 같은 가족 구성원이 있다. 놀랍지도 않게 이 사실에 분통을 내고 있는 나 자신이 우리 집안의 바로 그 비서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심부름을 하면 남은 동전 몇 개를 챙길 수 있는게 좋아 적극적이던 게 화근이었을까? 잔돈을 모아 쮸쮸바를 먹기 위해 심부름을 자처하던 나는 어쩌다보니 정규 과목으로 컴퓨터 수업을 받은 첫 세대였다. 컴퓨터가 이제 막 가정이나 직장에 보급되던 시기라, 어느 순간 내가 집에서 가장 컴퓨터를 잘 다루는 인물이 됐다. 아빠가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업무를 볼 때, 나는 교내 타자 경시대회에 우리 반 여자 대표로 나갔고, 동생들에게는 시리얼 상자에 증정된 롤러코스터 타이쿤이나 뿌요뿌요같은 CD 게임 하는 법을 알려줬다. 여가 시간에는 무료로 뿌리던 월드컵 스킨으로 다음 아바타를 꾸미고, 벅스로 음악을 들으며(이 땐 공짜였다), 인터넷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집안 유일의 컴퓨터 능숙자였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엄마는 항상 나를 찾았다. 홈쇼핑을 보다가 혹하는 물건이 나와도, 혹시 지마켓이 더 쌀까 싶어 검색해보자며 나를 찾아왔고, 다른 아줌마들이 하프클럽이라는 곳에서 옷을 싸게 사던데 자신도 그 사이트를 보여달라며 컴퓨터 방에 자기 의자를 가져왔다. 백화점이 아파트 단지마다 셔틀 버스를 운영하고, 언제 뭐를 팔지 모를 TV 홈쇼핑보다도 카탈로그를 보고 전화 주문하는게 더 활발했던 시절이다. 그러니 엄마 입장에서도 같은 물건인데 훨씬 싼 인터넷 쇼핑몰들이 신기했을 거다. 그땐 나도 귀찮음보다도 그만큼 컴퓨터를 더 오래 할 수 있는게 매력적이라 싫지만은 않았다.

세상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자 문제가 심화됐다. 직장에 다니던 아빠는 서툴러도 시류를 따라 디지털 세계에 발을 담궜지만, 엄마는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세상의 어떤 일들은 꼭 디지털로만 처리 할 수 있었다. 교복 입은 나에게 얘기하면 성질을 부리니 ‘이런 건 엄마 혼자서는 못 해서 그래’ 하는 말을 붙여야 했고, 그럼 또 나는 지지 않고 왜 동생들은 놔두고 나한테만 시키냐며 지랄을 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꼭 여전히 나에게만 부탁했다. 동생들이 사달라는 나이키 신발이 인터넷 최저가로는 얼만지 보여달라 하고 상단 나오는 29900원 신발을 사면 안되냐고 하면, 난 저런 건 다 사기라며 매장에 가서 사기를 종용했다. 우리가 학교에 간 사이에 집에서 심수봉 노래를 듣을 수 있는지 물었을 때도, 안쓰는 MP3가 있으면서, 그러면 소리바다에서 심수봉 노래를 찾고 있을게 분명 나일거라 그런 옛날 노래는 인터넷에서 못 찾는다고 둘러댔다. 한 번에 곱게 해주는 적이 없는데도, 엄마는 꿋꿋이 계속 나만 찾았다.

결국 스마트폰의 세상이 도래했고 이제 세상 대부분의 일은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은행을 방문해도 창구에서는 앱 설치를 요청하고, 마트를 가도 온라인 회원 가입이나 어플 설치가 없으면 할인받을 수 없다. 나에게 인터넷은 사기꾼들이 득실대고, 요즘 것들만 존재하는 어려운 세계라고 배웠던 엄마에게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이마트를 가야 하니 신세계에 회원 가입시켜달라는 말, 롯데 마트에서 적립하려면 뭘 깔아야 되냐고 묻는(그러면서 동시에 가입을 종용하는) 말, 아울렛에 가서 할인을 받으려면 이걸 신청해야 한다는데 나는 눈이 잘 안 보이니 네가 한 번 해봐라 하는 그 말들이 너무 귀찮았다. 우리 집은 애가 넷이나 있다. 그런데 왜 항상 이런 일은 나만 찾을까?

이렇게 적다 보니 내가 못된 사람 같다. 엄마가 그러실 만했네!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다. 그렇지만 나도 억울하다. 둘째 동생이 노르웨이로 교환학생을 갈 때도, 거기는 얼마나 춥니?(내가 지리교육과니까 물어봤단다), 돈은 달러로 가져가면 되니?(이하 동문), 심지어 비상용으로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어주고 싶은데 수입이 없는 대학생도 받을 수 있는 건지 찾아보라고. 셋째가 취직을 위해서 서울에 자취방을 구해야 할 때도 서울에서 안전하면서도 집값이 싼 동네가 어딘지, 그럼 그 동네 방은 전월세가 얼마인지, 그 동네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자 전화번호도 알아봐 달라고 한다. 막내가 성적이 좋아서 외고나 과고로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도 전국의 특목고 리스트를 뽑아달라, 입학 전형이 어떻게 되는지, 중복 지원이 되는지 알아봐 달라는데, 당연히 나도 모른다! 나는 이 집안에서 기상학자가 됐다가, 현대 카드도 됐다가, 네이버 부동산이 됐다가, 진학 상담사가 되기도 하는 거다. 그럼 내가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당사자들은 무얼 하냐고요.

심지어 임용 고시 준비를 위해 가족 해외 여행에 같이 못 가고 혼자 집에 남았을 때 생긴 일화도 있다. 가족들은 뉴욕 빌딩 숲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는데, 나는 인강이나 보고 있던 우울한 방학이었다. 그런데 닷새만에 아빠한테서 보이스 톡이 오는 거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여행 가서도 내 생각을 해주는구나’ 싶었다. ‘무슨 일이야?’ ‘우리가 지금 35번가 어디 스트릿에 있는데 이제 어디로 가면 좋겠냐?’ 순간 들으면서도 저 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뭐라고?’만 몇 번을 다시 물었다. 너는 뉴욕에 놀러 와본 적이 있으니 이제 어디 가면 좋을지 알 것 같아서 전화했다는데, ‘혹시 내가 같이 여행 중인가? 지금까지 어딜 갔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가족들이 전화 찬스 한 번만을 남겨주고 인터넷을 사용할 모든 기회를 박탈한 갱단을 만난 건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 여행에 딸린 스마트폰만 5대고 패드가 2개에 노트북도 2대가 있었는데, 가족들이 선택한 게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나였다는 게 뒷골이 땅겼다. 너무 열 받았지만 일단 끊어보라 그런 뒤에 가족 카톡방에 내가 뉴욕에서 다녀온 곳들 몇 개 보내줬다. 가족들은 그중에서 갈 곳을 정한 건지 ‘ㅇㅋ’ 두 글자만 보내고 또 연락이 두절됐다.

이러니 화가 나는 거다. 요즘도 엄마는 새벽 홈쇼핑에서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날 깨워 주문해 달라고 한다. 그러곤 ‘할인 다 받으면 얼마야’하고 기대한다. 출근도 안 하고 집에서 노는 동생들은 절대 아침에 안 깨우면서. 출근하는 나에게는 집에 우유가 떨어졌으니 점심에 마트에 들러 유통기한 임박으로 할인하는 걸 사 오라 하고, 계좌 이체가 안되는 일도 대신 가서 직접 결제해주고 오길 바란다. 토니 스타크도 자비스에게 이 정도는 안 시켰을 거고, 현대인들도 챗지피티에게 이 정도 요구는 못 한다. 그러면서 동생들에게는 한 점 바라는 거 없이 주말마다 자취방에 가서 반찬을 채워주고 대신 청소해주고, 친구들 만나러 가는 자리에 라이드를 해주고, 돈을 더 부쳐주고 싶기만 하다. 이리저리 알아보고 굴릴 때만 내가 필요하다.

자식들 중에서도 특별히 아픈 손가락이 있고, 무딘 손가락이 있는 거랑 같은걸까. 일 시키기 좋은 자식과 부둥부둥 해주고 싶은 자식이 다른걸까.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더니 나는 그냥 가족들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돗자리 같은 걸까. 차라리 나도 못 미더운 인간이 돼서 다 같이 못 미더운 가족들로 지냈으면 어땠을까. 그렇지만 오늘도 엄마가 제로 페이 충전을 까먹을까 봐 카톡을 넣고, 능력개발원에 지원한 수업의 경쟁률을 대신 체크해주고, 달력에 동생들이 집에 오는 날을 체크하고 있다. 말로는 싫다면서 착실히 출근하는 직장인과 다를 바가 없다. 투덜대면서도 한 동안, 아마 꽤 오래 이 실존하는 챗지피티 역할을 계속하겠지. 그럴 때마다 속으로 되뇐다. ‘이 것도 언젠간 그리워지고 후회할 시간들이 온다. 내 부모니까 내가 하지.’ 그러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푼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버번 바닐라 빈 페이스트와 정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