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잔하지만 선물을 곱씹게 되는 큰 언니
난 2살, 6살, 9살 터울로 동생이 세 명이나 된다(순서대로 여, 여, 여, 남!). 여태까지는 모두가 미혼이었으나 지난 식목일 둘째가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시애틀에서 직장을 다니는 셋째도 이 결혼식 참석을 위해 2주간 귀국을 했는데, 잠시 짬을 내 동지에 있을 자기 결혼식 준비까지도 온 가족이 같이 서울에서 진행했다. 막내도 대학원 입학을 위해 여름이면 싱가포르로 떠날 예정이라 가족 중 누가 싱가포르에 겸사겸사 같이 다녀올까 고민 중이다. 호적상으로도 또 물리적으로도 가족 모두가 올 한 해는 이동수가 많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이런 저런 선물을 받은 일도 많아졌다.
개인적으로 선물은 받는 사람의 니즈에 맞추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선물할 일이 생길 때면 상대방에게 뭐가 필요한지, 갖고 싶은 게 있는지 분명히 묻는다. 묻기 전부터 생각해둔 선물이 있는 경우에도 ‘이거 괜찮아?’하고 미리 확인한다. 물론 물어도 반절 정도는 직접적인 호불호를 밝히는 걸 부담스러워하며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않지만, 쌍방의 만족도를 100% 충족하려면 최소한 원하는 브랜드의 상품권이라도 주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상대가 가족인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나는 가족에게만큼은 절대로 금액이 명확한 현금이나 상품권을 선물하지 않는다. 오버를 조금 보태서 아마 앞으로도 70년 정도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을 텐데 지난번과 이번이 수치로 극명하게 비교되는 것이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대신 어디를 놀러 갔다 오면 꼭, 무조건 맛있는 걸 하나 사들고 귀가한다. 나에게 가족 선물은 ‘자주, 다양하게, 그렇지만 니즈를 맞춘’이 핵심이다.
셋째의 선물관도 나와 비슷한 것 같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블랙 프라이데이 줄을 설 때나 TJ Maxx에서 3번 이상 할인이 들어갔다는 의미의 빨간 스티커를 발견할 때마다 ‘이건 우리 가족 스타일’이다 싶으면 사두고는 이번 귀국 선물로 풀어줬다. 최근 다이어트에 크게 성공해 맞는 옷이 없는 아빠를 위해서 블랙 프라이데이에 구한 콜롬비아 조끼를,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같이 할인매장을 순회하며 로얄 알버트나 포트메리온의 테이블 웨어를 모으던 엄마를 위해서는 스타벅스 1호점에서만 판다는 원두와 트레이더 조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버번 바닐라 빈 페이스트를 선물했다. 그 외에도 나에게는 폐점을 앞둔 폴로 매장에서 건진 손비누와 향초, 신혼 생활을 시작할 둘째에겐 폴로 손비누와 더불어 스타벅스 1호점의 커플 머그컵 세트, 덩치가 워낙 커서 한국에서는 맞는 옷을 찾기 힘든 막내를 위해서는 온갖 브랜드의 클리어런스 매대에서 4XL 사이즈의 티셔츠를 선물했다.
나와 비슷한 선물관을 가진 사람에게 선물을 받으니 이벤트가 재밌고 흡족했다. 선물 때문에 동생을 기다린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생인데도 모두가 받은 선물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점도 좋았다. 그런데 이 선물이 선녀처럼 느껴지게 된 계기가 곧바로 발생한다. 둘째가 신혼여행을 다녀오며 준비해온 선물을 받고 당황한 수준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 거다.
학부 시절 아이슬란드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둘째는 그곳에서 1년을 보내는 동안 틈틈이 유럽 여행을 같이 즐겼다. 아이슬란드의 물가가 워낙 비싸다 보니 다른 유럽 국가의 물가가 오히려 저렴하게 느껴져서 여행에 부담이 없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그녀는 우리 가족 중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 잘 즐기다 온 ‘(우리 가족 기)준 유럽 전문가’다. 그래서 신혼 여행지로 포르투갈을 골랐을 때도 ‘거기가 정말 좋은 곳인가보다. 나도 나중에 가봐야겠다’ 하고는 내심 ‘포르투갈은 뭐가 유명하지?’, ‘뭘 사오려나’ 기대했나 보다. 유럽 전문가인 그녀의 안목을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2주간의 신혼여행을 끝내고 하기에 서술될 사건과 무지로 우리 가족의 속을 뒤집으며, 한국에 들어온 지 사흘째 정어리 4캔과 튜브형 잼 3개를 가지고 집으로 인사를 왔다.
신혼여행을 잘 다녀오라고 엄마가 200만원과 1,000유로를 쥐여주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인사오는 신혼 부부라고, 평소에 연락도 안하는 친척들에게까지 먼저 연락해 초대했고, 잔칫상도 명절보다 대단하게 준비했다. 종류가 한정된 이바지 음식이지만 최고로 잘 준비해보겠다고 합천, 순천을 돌며 고기와 과일을 예약하고, 유튜브로 보자기 포장까지 따로 공부했건만. 시댁의 왕할머니가 자신들을 보기 위해 요양원에서 하루 외출해 나와계시다는 말에 ‘어떡하지?’ 하며 시댁에 먼저 가버린 동생과(엄마는 거기서 왜 ‘어쩔 수 없지. 그렇게 해’라고 했을까? 속상해서 준비한 음식이 들어 있는 냉장고도 못 열어볼 거였으면서) 신혼 여행 선물이랍시고 가져온 비누곽만 한 정어리 4캔과 튜브잼 3개를 보고 나는 목이 메였다.
선물을 하며 답례를 생각하는 건 속물적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조금은 속물적이지 않은가. 평소에 엄마, 아빠가 집에서 와인 한 잔씩 하는 걸 잘 알면서, 그 동네 와인이 정말 싸고 맛있다며 신혼여행 중에서도 자랑을 했으면서, 현금을 그만큼이나 쥐여줬는데, 현지에서 못 샀으면 면세점에서라도 하나 사왔어야지. 심지어 정어리 캔은 사람 수대로 들고 온 건데, 그중 하나를 할당받은 막내는 해산물에 수저도 안 댄다. 나는 그 신혼부부가 집에 돌아가자마자 분노로 부들부들 떨면서 미국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울었다. 셋째가 원래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매정한 사람이 둘째라며 먼 타인일수록 친절해지는 그녀를 같이 탓해줬다. 그러고 보니 결혼식 때도 멀리서 오는 친구들을 위해서는 호텔과 식사, 교통비까지 별도로 준비했으면서 나에게는 옷 한 벌 해준 적 없는 동생이 더욱 서운하다.
그녀가 오늘도 엄마에게 연락을 해, 요즘 너무 바빠 밥 해먹을 시간도 없다며 반찬 좀 해서 신혼 집에 가져다 주면 안되겠냐고 부탁을 했다.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야지 1시간 거리의 자기 집에 배달까지 해줘야 하냐며 옆에서 듣던 나는 속으로 꿍얼거렸지만, 엄마는 다들 출근하고 아무도 없을 집인데도 신혼부부 집에 허락받고 들어가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는지 한 밤 중에 재료를 사러 나가면서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제는 그녀가 점점 얄밉다. 그런데 쪼잔하게 정어리 4캔을 선물로 줬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하고 말을 꺼낼 수도 없다.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랬는데, 앞으로도 70년은 이렇게 쪼잔한 언니로 살아야 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