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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벗 Jun 05. 2023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르는 비극

창조성: 상상력, 믿음, 무의식과 의식

1.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작가이자 화가, 폴 호건의 말이다. 세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주관적으로 보고 느끼며 해석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세상은 객관적이지만, 한 개인에게는 주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차피 획일적인 정답은 없다면, 타인의 세계를 흉내 내려고 노력하거나, 누군가 정의해 놓은 개념이나 관념들에 묶이지 않고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사람은 가깝게는 재능과 가정환경, 조금 멀게는 시대상, 기존 관념, 사회·정치적 이념, 국가·문화권 등 다양한 영향을 받는다. 이런 영향들 가운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2.

『생각의 탄생』에서 로버트와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창조성은 '환상'과 '실재'가 공존할 때 발휘된다고 주장한다. 조금은 독특한 표현이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 설명을 덧붙이겠다. 환상은 교과서적 지식과 이론을, 실재는 자신의 이해를 실생활에서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과학이나 예술을 분석하기 위한 '무엇'으로 보는 것은 환상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것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삶과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 고찰하는 것은 실재를 느끼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겠다. 수학 공식은 잘 알고 있으나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론적 지식이라는 환상은 있지만 실재는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이론적인 공부는 힘들어 하나 실제 생활에서는 그것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환상은 없지만 "개념의 씨앗"과도 같은 실재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환상이 '앎'이라면 실재는 '이해와 응용'이다. 환상이 '사실'이라면 실재는 '상상력'이다.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직접 받아들이는 것들, 즉 일출과 일몰, 문, 사진이나 드로잉, 종이 위에 휘갈겨 쓴 글씨들은 전혀 실재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 자체만 가지고서는 우리에게 실재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이해'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상상력'을 빌어 해석해야만 한다."


객관적인 사실과 이론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전부가 아닌 이유는 그것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우리의 상상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상상력이 진실을 이룬다"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환상과 실재를 통합하기 위한 방법으로 13가지 생각도구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를 제시하는데, 궁금하면 찾아서 읽기 바란다. 나도 읽는 중이다. 여하튼,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사실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없는 사실은 입체적이지 못하고 단편적이기에, 이러한 사실만을 소비하는 삶이 어떨지는 독자의 생각에 맡기겠다.



3.

창조성에 관련해서 다른 이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빅 매직』에서 조금은 특이하지만 놀라운, 자신만의 믿음을 드러낸다.


"나는 창조적 과정은 마법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마법이라고 믿는다. (중략) 나는 우리 행성에 동물들과 식물들과 세균들과 바이러스들이 우글우글할 뿐만 아니라 착상들도 함께 서식한다고 믿는다. (중략) 비록 좀 이상한 방법이긴 하지만 착상들에게는 물질화된 육체가 없는 내적 의식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그들 본연의 의지를 갖고 있다. (중략)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착상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라는 공모자와의 협력뿐이다."


작가는 '착상'이라는 존재가 사람에게 다가와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하며, 사람이 이를 수락하고 착상을 하나의 형태로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창조성의 원리라고 믿는다. 길버트는 글의 형태로 착상을 나타내지만, 꼭 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림, 영상, 논문 등 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모든 형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


창조성에 관한 길버트의 관점은 흥미롭다. 그러나 똑같이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자신의 관점을 '믿는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저 비유를 든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믿는듯하다. 과연 그녀가 믿는 착상은 존재할까?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


"나는 착상들이 원천적으로 어디서 최초로 잉태되는지, 혹은 왜 창조성은 그토록 예측 불가능하고 돌발적인지, 혹은 이것들이 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없다. (중략) 우리 중 누구도 그러한 것을 알 수 없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위대한 불가사의 속에 있으므로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바로 이 것이 내가 기꺼이 내 삶을 보내길 원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착상에 대한 믿음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착상이 정말 실재하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본질을 파헤치기보다는 (알 수 없으니) 그냥 믿겠다고 선택했다. 이것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본인의 시선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그녀의 세계는 이러한 믿음으로 더욱 자신만의 세계가 되었다.


여기서 믿음이란 종교적 믿음처럼 대단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은 항상 무엇인가를 믿는 존재다. 성공, 사랑, 행복 등 현대인에게 뿌리 박힌 가치들 모두 믿음에 기초한 개념들이다. 작지만 자신만의 믿음을 갖는 연습을 계속하게 된다면, 틀에 박힌 관념들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새롭게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처럼 가장한 세상의 왜곡된 믿음들을 구별하는 능력 또한 기르게 될 것이다.



4.

창조적인 생각들은 어떻게 세상에 드러나는가?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려보자.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수단에 불과하다. 기존의 말이나 다른 기호들 (추측컨대 수학적인 것들)은 이차적인 것들이다. 심상이 먼저 나타나서 내가 그것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 다음에야 말이나 기호가 필요한 것이다."


화가 막스 빌은 "예술이란 인간 정신의 표현이며,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막연한 심상을 구체적인 형태로 가시화시킨 것"이라며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과학자와 예술가를 포함한 모든 창조적인 사람들에게는 사실이나 통찰, 작품이 있기 이전에,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 감정 그리고 직관이 떠오른다.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말한 착상 역시 이러한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창조적인 행위는 무의식에 공간 속에 있는 느낌을 의식으로, 작품의 형태로 끄집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을 보면서 의도한 느낌을 다시 받는 것이야말로 『생각의 탄생』에서 말한  '환상'과 '실재'를 모두 활용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5.

최근에 '마음'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것을 하나의 환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재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게 떠오른 심상을 세상에 끄집어내기 위한 행위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착상'이 찾아온 느낌을 받았고, 느낀 것을 글의 형태로 적어 보았다.


"나는 마음은 물처럼 상태변화를 거치는 물질이라고 믿는다. 평소에는 몸속에서 미지근한 기체로서 존재한다. 온도는 체온과 비슷하고, 압력은 대기압과 같아서 그 존재를 잊고 지낸다. 어떤 일이나 상황, 사람에 열의를 가지고 있는 동안 기체의 온도는 상승한다. 이때 마음 분자의 운동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마음의 부피가 커지고 몸이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가끔 갑자기 쿵하고 한 덩어리의 고체가 되어 떨어질 때가 있는데, 이 상태가 되면 어떤 것에도 집중을 잘하지 못한다. 고체가 된 마음을 어떻게든 다시 기체로 승화시키기 위해 땀을 내며 운동하고, 마음을 녹이는 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종종 액체로 융화되는 것이 최선이다. 액체인 마음이 몸속에서 출렁대서 배가 아픈 느낌도 들고, 삐져나와 눈물로 흐르기도 한다. 이럴 때 포기하고 체념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다시 미지근한 기체가 되어 있다. 나는 이를 모르고 있다가, 마음이 고체가 되는 순간 깨닫는다."


길버트처럼 나도 작은 믿음을 가지고 싶어 이 관점을 믿는다고 표현했다. 마음에 대한 나의 관점이 하루가 갈지, 일주일이 갈지 일 년이 갈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까지 이 개념은 내 것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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