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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Jun 19. 2022

옛날 영화를 보다 - 히바로

러브, 데스 + 로봇 시즌3

깊은 숲의 고요와 평화를 갑옷으로 중무장한 한 무리의 기사들이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그들이 맞닥뜨린 곳은 하트 모양의 작은 호수. 호수의 수면 밑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그녀는 황금으로 뒤덮인 옷을 입고 짙은 화장을 했으며 눈이 유난히 붉었다. 그녀가 춤(운동에 가깝다!)을 추며, 노래(비명에 가깝다!)를 부르자 기사들은 서로를 죽이고, 호수로 뛰어든다. 그렇게 기사들은 몰살당하고, 귀가 들리지 않았던 한 기사만이 살아남는다. 그 기사는 무거운 철로 된 갑옷을 입고 있으며, 눈자위가 붉었다. 그리고, 호수는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러브, 데스 + 로봇의 3부작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시즌1에 비해 형편없었던 시즌2 때문에 보기를 망설였는데, 히바로가 망해가던 이 시리즈의 명성을 되돌린 것 같다.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은 대칭적이다. 자연은 원시상태고, 무장한 기사들은 화려한 말 장식과 무기로 문명화되었다. 기사들은 젊고, 사제는 늙고 볼품없다. 남자는 철, 여자는 황금으로 옷을 대신하고 있으며, 여자는 소리를 만들어 낼 줄 알고, 남자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남자는 욕망만을, 여자는 사랑을 갈구한다.


남자가 잠깐 눈을 붙인 사이 그녀는 그에게 다가간다. 그가 깨어나고 놀란 그녀는 달아난다. 그는 그녀를 쫓아가고, 그들은 폭포 위, 아주 위태로운 곳에 재회하고, 포옹을 한다. 그때 남자는 우연히 여자의 몸에서 떨어진 황금 비늘을 손에 쥔다. 황금 비늘이 떨어진 곳을 통해 그녀의 피가 뿜어져 나온다. 남자는 욕망에 휩싸여 그녀를 해하고, 그녀의 온몸에 있던 황금을 뜯어낸다. 그리곤 물속에 그녀를 유기한다. 하트 호수가 붉게 변하고, 물은 중력을 거슬러 붉은 분노와 함께 상류로 흐른다. 그 물을 마신 남자는 갑자기 귀가 트이고, 소리를 듣게 된다. 처음 듣는 소리에 놀란 남자는 어찌어찌 처음의 그 호수로 돌아온다. 

그때 호수의 중앙에서 상처 입은 그녀가 힘겹게 춤을 추며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춤추는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슬프고 애처롭다. 그리고, 춤은 한없이 아름답다. 그녀의 노래에 이끌려 그는 어쩔 수 없이 호수 중앙으로 간다. 아니면, 그는 혹시 노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온전한 선택으로 호수 중앙으로 간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내 호수 바닥으로 서서히 가라앉는다. 


부족하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 부족한 것을 누군가를 해함으로 채우고, 정상이 되어 그 누군가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지만 그로 인해 죽음에 다가가는 이 아이러니라니. 부와 욕망에 충실한 남자와 관계와 연결을 원하는 여자의 파국을 짧고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이라고 믿기지 않는 작화와 인상적인 효과음과 배경음악은 작품의 격을 한층 높인다. 시리즈의 타이틀 "러브, 데스, 로봇(그녀의 모습은 로봇에 가깝게 묘사된다.)"을 모두 적절히 활용한 수작이다.


* 친구 녀석은 황금을 떼어내는 장면을 보며 그녀가 잉어 같고, 물고기의 비늘을 벗기는 것 같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 이제, 배우가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 아래 장면도 선배에게 그려달라고 했는데, 너무 슬프다고 그리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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