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밴쿠버는 밴쿠버, 노스밴쿠버, 리치몬드, 버나비, 서리, 랭리, 코퀴틀람, 화이트록을 포함하는 도시권으로 캐나다에서 3번째로 큰 도시다. 밴쿠버는 다운타운이 있는 중심 도시고, 노스밴쿠버는 전망 좋은 고급 주택가로 유명하며, 리치몬드는 중국인, 서리에는 인도인, 코퀴틀람에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버나비는 밴쿠버 동쪽에 바로 인접한, 공원이 많은 소도시로, 유명한 것은 SFU 대학과 버나비 마운튼, 버나비 호수다. 고풍스러운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SFU는 버나비 동쪽의 버나비산에 자리 잡은 대학으로 캐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해 주는 명문 대학이고, 버나비산은 밴쿠버 전역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뷰와 아름다운 트레일 코스를 가지고 있다. 버나비 호수는 다양한 새들이 서식하는 크고 아름다운 호수다.
내가 버나비에서 일 년 동안 머물렀던 곳은 Augusta Ave에 자리 잡은 이층집이었다. 아이들 학교와 가까워 선택한 이 집은 잠시 걸으면 스퀸트레이크파크와 버나비마운튼 골프코스가 있었고, 근처에 작은 글로셔리스토어와 펍, 리쿼샵이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스퀀트레이크파크는 골프코스 초입에 있는 작은 호수를 가진 공원으로 자연 상태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어 거의 매일 산책을 나갔다. 잘 가꿔진 잔디 축구장은 늘 푸르렀고, 버나비산에서 시작한 개울은 연어가 산란하러 올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한국에서는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공원에 빼곡했고, 가끔은 곰이 나타나기도 해 산책할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귀를 쫑긋해야 했다. 공원이 골프장 근처에 있어서 산책하는 길 중간중간에 골프공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아이들과 산책하다가 색깔공이라도 찾으면 보물이라도 찾은 양 우리는 즐거워했다.
공원 다음으로 자주 간 곳은 맥길 도서관이다. 다운타운으로 가는 메인 도로인 헤이스팅 스트리트를 따라 10분 정도 차를 몰고 도착할 수 있는 이곳은 근처에 수영장, 조깅트랙, 식당가가 있고, 책과 DVD를 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레고 수업, 영어 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해서 자주 방문 했는데, 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커다란 창가, 편안한 소파, 책상마다 있던 개인 조명등은 책 읽기에도 정말 좋았다. 이 도서관은 책 읽는 환경도 좋았지만, 책의 큐레이션도 아주 훌륭했다. 도서관의 가장 좋은 자리에는 십 대들이 좋아할 만한 그래픽노블, 판타지 장르의 책들을 배치해 아이들의 관심을 끌게 만들었고, 주기적으로 흥미로운 주제의 책과 잡지를 아주 적절하게 배치했다.
날씨가 좋으면 우리 가족은 바넷마린파크에 소풍을 갔다. 남쪽의 밴쿠버와 북쪽의 노스밴쿠버 사이 길고 깊게 자리 잡은 잉글리쉬베이만은 포트무디,코퀴틀람까지 이어지는데, 바넷마린파크는 이 만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집에서 차를 타고 10분 정도만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은 게잡이와 낚시가 가능해서 아이들이 특히나 좋아했다. 하늘이 눈이 부시게 맑은 어느 날, 아이들은 낚싯대를 하나씩 어깨에 메고, 난 커다란 게잡이를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평소에 눈여겨보던 목이 좋아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은 서둘러 낚싯대를 드리운다. 난 칠면조목을 게잡이틀에 고정시킨 뒤 저 멀리 던져 놓고 아내는 음식을 준비한다. 난 의자에 편안히 앉아 아이스박스에서 캔맥주를 하나 꺼내든다. 맑디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저 멀리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가득한 시모어산이 보이고, 바다 내음은 상쾌하고, 간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40분가량 버스를 타면 도착할 수 있는 다운타운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 본관은 다운타운의 오래된 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데, 건물 자체가 작아 수업은 근처 몇몇 건물에서 분산되어 진행되었다. 난 주로 롭슨 스트리트에 있는 건물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롭슨 스트리트에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아 등하굣길이 늘 즐거웠다.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품을 팔던 인디고 서점,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던 초밥집, 멋진 외관의 페어몬트 호텔, 값싸고 맛있던 노점 핫도그, 가격이 결코 싸지 않지만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푸드트럭들. 다운타운은 늘 북적이고, 생기가 돌았다. 날이 좋으면, 롭슨스트리트에서 좀 더 걸어 잉글리쉬베이까지 갔다. 이 여정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데, 무심코 걷다 보면 북적이는 도심에서 활기찬 휴양지로 순식간에 공간 이동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상점들과 거리의 분위기, 행인들의 표정이 길을 걷다 보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침내 잉글리쉬베이에 다다르면 난 어느 아름다운 해변에 온 여행자가 된다.
가끔 그때 그 거리들을 떠올리면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 그 찬란하고, 좋았던 기억들은 나를 미소 짓게 하지만, 그 좋은 경험을 또다시 못할 것 같다는 아쉬움에 가슴 한편이 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