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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Oct 15. 2023

정육점 사장님의 변신


동네에 오래된 정육점이 하나 있다. 십수 년째 아파트 상가에 자리 잡은 그곳은 적당한 가격에 신선한 고기와 달걀을 팔아서, 아파트 주민들이 자주 애용하는 곳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는 깔끔하게 자른 짧은 머리와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했다.


엄혹했던 코로나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던 그 정육점이 어느 날 문을 닫았다. 퇴근하다 문이 닫힌 가게를 보고 집에 가자마자 아내에게 그 얘기를 꺼냈다.


“여보, 상가 정육점이 문을 닫았던데 알고 있었어?”

“응 그러게 며칠 전부터 문이 닫혀있던데, 휴가 가신 건 아닌 거 같고.. 장사를 접었나 싶어.”


갑자기 삼겹살이 먹고 싶거나 마침 계란이 떨어졌을 때 바로 갈 수 있던 그곳이 없어졌다고 하니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서는지 공사하시는 분들이 가게 안팎에 분주했다. 바닥에 놓여있는 간판을 유심히 보니 “판다 탕후루"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탕후루 가게가 생기는 것 같았다. 최근에 초중고생이 즐겨 먹는다는 그 설탕물을 입힌 과일 간식이 이 동네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동네에 꼭 필요한 정육점은 사라지고, 얼마나 갈지 모르는 유행을 좇는 탕후루 가게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한 마음이었다.


한참 덥더니 어느새 선선해진 저녁 공기를 느끼며 퇴근하던 어느 날, 탕후루 가게 앞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느새 공사를 마치고 문을 열었나 보다. 아이들과 엄마들로 가득 찬 가게 안은 사람들이 빼곡했다. 난 창 너머를 유심히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짧은 머리의 그 인상 좋은 아저씨가 탕후루 가게 계산대에 서 계신 게 아닌가? 탕후루를 봉지에 담고 카드를 받아 계산하는 사람은 정육점의 그 아저씨가 틀림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궁금해하며, 집에 돌아왔다.


“여보, 내가 뭘 봤는지 알아. 글쎄 그 정육점 아저씨가 탕후루 가게에 있지 뭐야.”

“그러게 여보, 동네 사람들이 다 놀랐지 뭐야. 근데 글쎄 그 아저씨가 중국 화교였대.”


왠지 그 얘기를 들으니 수긍이 되었다. 아저씨는 아마도 이곳에 오기 전 어릴 적 고향땅에서 먹었던 그 간식을 몹시 그리워했을 것 같다. 그리고, 문득 그 맛을 기억해 내고, 달콤한 이 맛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십 년 넘게 한 정육점을 접고, 새로운 가게를 여는 것은 큰 도전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인텐데, 어릴 적 먹었던 그 간식의 맛은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었나 보다.


다음날 나는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야 겨우 몇 개의 탕후루를 살 수 있었다. 달디단 딱딱한 설탕 껍질을 깨물자 상큼한 과일의 향이 훅 올라왔다. 내 입맛에는 너무 단 듯 싶었는데, 아이들은 아주 좋아했다.


퇴근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동네에 접어드는데 달콤한 향기가 동네에 가득하다. 쉽지 않겠지만 판다 탕후루 가게가 오래오래 그곳을 지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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