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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Oct 15. 2023

원 데이 인 푸켓(Amy)


허니문투어는 나름 푸켓에서 유명한 여행사다. 스피드보트로 피피섬을 오가는 투어와 요트선셋디너가 주력 상품인데, 두 상품 모두 푸켓을 찾는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상품이다. 난 요트선셋디너 투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여행 가이드 “애미"다. 코로나 전, 푸켓은 일 년 내내 관광객들이 가득했고, 투어는 늘 만석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며 관광객이 줄고, 우리보다 더 크고 화려한 요트를 가진 경쟁 여행사 탓에 선셋디너 투어의 인기는 예전같이 않았다.


난 투어 비즈니스의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요동치는 요트의 바닥 한구석에서 관광객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 상상하는 것 이 이상으로 지저분한 요트 화장실 청소, 관광객들을 호텔에서 선착장까지 픽업하는 일 등을 하다가 나름 유창한 영어 실력 덕분에 가이드의 자리에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난 이 일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일터에 가기 전 시간을 들여 꼼꼼히 화장을 하고, 허니문투어의 핑크색 유니폼을 입으면 나도 모르게 기운이 나고, 자신감이 넘친다. 이제 조금만 더 돈을 모으면, 마침내 듣기 싫은 걸걸한 내 목소리와 아래에 달린 불편한 그것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그럼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지고, 진짜 내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투어가 시작하는 찰롱부두로 관광객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난 다시 한번 거울을 보며 화장을 가다듬는다. 그래도 오늘은 20명가량의 관광객들이 투어에 참여했다. 난 출발 전 간단히 투어 소개를 했다. 한국인, 중국인, 인도인이 많고, 서양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나를 보는 그들의 눈빛은 혼란스럽고, 나와의 눈 맞춤을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난 최대한 아름답고 친절한 목소리로 투어 설명을 이어나갔다.


찰롱부두에서 출발한 요트는 푸켓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프롬텟곶을 향한다. 석양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요트는 잠시 멈추고, 사람들은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다. 난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진은 그만 찍고, 그냥 저 석양을 바라보라고, 순간순간 변하는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만히 앉아 두 눈으로 좀 지켜보라고 말이다.


태양이 바다밑으로 사라지고, 요트는 파도가 잔잔한 곳에 멈춘다. 동료들은 관광객들에게 준비된 식사를 나르기 시작했다. 다른 동료는 치킨 스테이크를 전달하고, 나는 관광객들 사이를 오가면 따스한 미소와 함께 와인을 권했다. 어떤 이는 나의 미소에 화답해 밝게 웃지만, 어떤 이는 나의 몸을 위아래로 기분 나쁘게 훑어본다. 오래전부터 보아왔던 그 불편한 눈빛은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우아하고, 기품 있게 행동한다.


바다는 타오르는 붉은색에서 연한 오렌지색, 그리고, 이제는 어두운 회색을 띤다. 투어가 마치고, 부두로 돌아갈 시간이다. 부두에 도착해 한 사람 한 사람 조심히 내릴 수 있도록 안내를 하며 손을 내민다. 한 남자가 내가 내민 손을 잡을지 말지 망설인다. 그리고, 작은 미소로 마침내 나의 손을 잡는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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