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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Jan 20. 2022

"저세상펀드" 투자기

Another world fund

* 주의 : 이번 글에는 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배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고칠 부분이 있으면 수고스럽게 화이트를 사용해 수정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사주고 싶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사실 화이트 자국이 있는 선배의 그림을 독자들이 보면 우리의 작품 퀄러티에 흠이 될 것만 같았다. (선배 미안) 그리고, 나에게도 발열과 소음이 없다는 신상 맥북을 선물하면 장비발에 힘입어 왠지 글을 더 잘 쓸 것만 같았다. 비록 7년 된 내 맥북에어가 아직 쌩쌩하지만 가끔 유튜브를 틀어놓고 글을 쓸 때면 윙하는 소리와 함께 힘들어하는 맥북을 볼 때면 왠지 짠했다- 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냥 새 맥북이 미치도록 갖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 주에는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그림은 어떤 것이 어울릴지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펀드를 만들어 그 수익금으로 작품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나는 해외주식 투자 경험이 꽤 되고, 선배도 최근에 투자 관련하여 관심이 많은 터라 이야기는 급속도로 진척되었다. 투자 구루들의 포트폴리오를 한번 따라 해 볼까? 아니면 다음 시장 트랜드를 추도할 종목을 먼저 찾아볼까? 아니면 개인이 선뜻하기 어려운 고위험 투자를 한번 해볼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펀드의 핑크빛 미래를 상상하며 기대치는 높아졌고, 우리는 초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아주 공격적인 컨셉의 펀드를 구상하게 되었다. “저세상펀드”는 그렇게 나오게 되었다. 


저세상펀드 종목을 논의할 때 우리는 작품 논의할 때보다 몇 배 더 진지했고 몇 배 더 집중했다.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며 난 머릿속으로 투자금이 3배, 10배, 100배가 되는 상상을 했다. 상상 속에서 난 마침내 조기 은퇴를 하고, 태국 치앙마이로 떠나 고급빌라에 머물며 여유롭게 글을 쓰며 작품 활동을 한다. 선배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무척이나 밝다. 결국 우리는 미국지수에 3배 레버리지를 적용한 두 개의 ETF를 선정했다. 이 ETF는 미국지수가 1% 상승하면 3%가 상승하고, 1%가 빠지면 3%가 빠지는 무시무시한 종목이었다.   



대담하게 레버리지 ETF를 매수하고, 며칠은 이틀 간격으로 시세를 확인하며 키득였다.  새것의 설렘이 주는 희열이 쉽게 빛의 속도로 반감하듯, 모험의 흥분이 잠시 심드렁해진 틈새를 그놈은 알아차린 것일까.  일주일 만에 무심코 수익률을 본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55%! 아이패드와 맥북은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고, 내 오래된 맥북은 고소하다는 듯이 윙 소리를 한번 냈다.


전화로 선배가 말했다. "씨발, 그러게 내가 비트코인 사자고 했잖아?"



1월 20일 현재, 저세상펀드 실제 수익률은 -1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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