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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Jan 23. 2022

새벽

선배의 글에 제가 살짝 덧붙인 글입니다. 아름답지 않은 문장과 단어는 온전히 저의 몫입니다.


젊은 날, 나의 새벽은 매캐한 담배 연기와 머릿속을 뒤흔드는 숙취, 쓰레기로 뒤덮인 지저분한 거리였다. 밤새 들이킨 알콜과 그 사이사이 누군가에게 내뱉은 부질없던 말들, 서로의 몸을 탐하다가 지친 손. 새벽이 시작되기 전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나의 새벽은 항상 혼자였다.


어느 날, 아주 자연스럽게 난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320km쯤 떨어진 곳으로 말이다.


머리칼이 가늘어지고,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 전과 달리 흐릿해질 즈음, 나는 문득 내 은밀한 벗인 새벽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아침과 저녁, 빛과 밤, 달, 태양 그리고 별. 낮의 작열하는 광선과 밤의 희미한 빛. 시와 분. 한 주와 한 해. 숲과 내 다정한 아내. 자연은 나의 정원이며 이웃이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나에게 속하게 되니, 숲과 들판, 나무와 길들. 하늘을 올려다볼 때 나는 군주와도 같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새벽이었다. 나는 새소리에 귀 기울였다. 세계는 조화롭고 유쾌했다. 모든 것이 좋았고, 옳고, 아름다웠다. 포장된 농로를 걸으면 나는 상쾌했다.  


나는 시간이 부당하다 생각했다. 숙적을 마주하듯 시비를 걸었고, 그러면 시간 또한 나에게 앙갚음을 해온다고 생각했다. 앙갚음은 가차 없고, 피할 수도 없었다. 매해 12월 31일이 되면 그 부당함에 불만을 토해내다가 까무룩 잠에 들었다. 시간은 나를 뒤에서 미는 동시에 앞에서 당겼고, 나는 그/그녀의 손에 잡혀 허겁지겁 어디론가로 끌려갔다. 내가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기억하고, 버티는 것이었다.   


가끔 나는 죽은 사람과도 같았다. 그만큼 별 것 없고, 소리 없고, 말없이 나는 그냥 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희미했고, 내 머리칼과 호흡은 가늘고 미약했다. 눈을 감고 호흡에 귀 기울일 때야 겨우 나를 알아차렸고, 사람들은 좀처럼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누구를 생각하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슬픔이 나를 방문했다. 때때로 당치도 않은 순간 내 안으로 불쑥 뛰어드는 슬픔에 웃음이 터진 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옆으로 비껴 나 있었다.


서서히 해가 뜨고 손에서 아내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새벽이 되기 전 나는 혼자였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다.



inspired by 로베르토 발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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