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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Feb 02. 2022

옛날 영화를 보다 - 007 No time to die

* 주의 : 글은 그럭저럭 읽을 만하나 포스터 이미지에 충격을 받을 수 있음.


감독 : 캐리 후쿠나가

주연 : 다니엘 크레이그, 레아 세이두, 라미 말렉 등

제작 : 바버라 브로콜리

개봉일 : 2021년 9월 29일


나는 "007 시리즈"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007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길티 플레져를 고백하는 것과 같다. 현재 업무가 영화와 관련이 깊어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누군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무난하게 "쇼생크 탈출" 혹은 "시네마 천국"을 말하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많이 본 영화는 007 시리즈이다. 집에서 가족들이 다 어디 갔을 때 아이스크림이랑 과자 먹으면서 보는 007 영화는 정말이지 나에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이다.(대부분의 007 영화는 아이들과 보기 뭐하고, 아내도 좋아하지 않는다.) 당대 최고의 미인들, 최고의 아티스트가 만든 음악,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케이션, 최고급 차의 카 액션신이 한꺼번에 나오는 영화를 어찌 안 좋아할 수 있겠는가?


기억을 더듬어보면 007 영화는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동네 유선방송으로 처음 본 것 같다. 그 당시 tv에서 유선방송을 켜면 온갖 장르의 영화가 무작위로 나왔는데, 난장판 속에서 발견한 것이 007이었다. 동네 유선방송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고 싶은데, 그때 유선방송 시스템은 도대체 어떻게 운영되고, 누가 편성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이블데드, 데몬스(람베르토 바바의 그 영화 맞다!), 메리포핀스, 취권이 함께 자연스럽게 편성되어 tv에 나왔다. 아차. 본론으로 가자. 처음으로 본 이국의 호쾌한 풍경, 강하고 멋진 남자 주인공과 다리가 유난히 길고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 신기하고 기발한 무기들. 엄청난 볼거리를 보여준 그 영화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당시 시골에서 서울로 막 이사 와서 촌놈이라고 놀림받고 있을 때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는 정말로 강해 보였고, 영화의 모든 것이 매력적이었다.(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때 본 영화는 뷰투어킬이 아니었나 싶다.) 


서울살이에 적응하고, 난 나이를 먹어갔고, 007도 변해갔다. 숀코넬리, 로저무어에서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로.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대학에 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연애를 하고, 잠시 제임스를 잊고 지내기도 했지만 나 홀로 무언가 즐기고 싶을 때는 조용히 몰래 007 영화를 탐닉했다. 이러한 기나긴 이유로 난 오늘 아침 일찍, 007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족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룰루랄라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는 길었지만 163분이라는 스크린 타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고, 전반적으로 기존 시리즈의 전통을 아주 충실히 계승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자메이카, 북구의 멋진 풍경과 무려 세 명의 매력적인 본드걸(아나 데 아르마스는 최고였다), 빌리 아이리쉬의 음악은 영화와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영화 초반 에스턴 마틴에서 기관총이 나오면서 적을 무찌르는 장면에서는 어찌나 반갑던지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번 편은 기존 시리즈와 약간 다른 결이 있었다.  007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뛰어난 후배들, 오랜 친구의 죽음, 연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하고(이런 바보 멍청이), 무엇보다 그 방탕하던 제임스 본드가 아버지가 되는 과정까지 기존의 시리즈가 강조하던 스펙타클한 영상보다는 서사에 더 방점이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제작진이 제임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그의 마지막을 최대한 정중히 보내주려는 배려가 아닌가 싶었다.


그간 정말 고마웠고 수고 많았어요. 제임스! 


*** 007 시리즈에 관한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들 ***


007 제작사는 브로콜리가인데, 이들은 몇 대에 걸쳐 가업으로 007의 제작을 도맡아 하고 있다.

007 시리즈는 당대 최고의 가수가 OST에 참여하는 전통이 있다.(이번 영화는 빌리 아이리쉬, 전에는 아델, 듀란듀란, 폴메카트니 등이 OST에 참여했었다.)

007 시리즈 중 우주정거장까지 날아가서 악당을 처치하는 영화가 있었다.(79년작 "문레이커")

개인적으로 본드걸은 예전 시리즈에 나온 배우들이 훨씬 더 매력적인 것 같다. 73년작 "죽느냐 사느냐"의 제인 시모어와 69년 작 "여왕폐하 대작전"의 다이아나 리그(왕좌의 게임 티렐가문의 그녀 맞다)는 나의 최애 본드걸이다. 

당연히 최고의 007은 로저무어다.

태국 푸켓 섬 북쪽에 가면 제임스 본드 섬이라는 곳이 있는데, 한번 가볼만하다. 아~ 태국 가고 싶다.(74년작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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