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신촌의 해열제를 떠올리며,
“어떤 분장을 하고 싶은 신가요?” 이곳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분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입구 옆 거울로 둘러싸인 방 가운데 앉자 어떤 분장을 할 것인지 물었다. 건네어준 카탈로그에는 다양한 모습의 샘플이 있었다. 등에 날개가 달린 천사, 머리에 뿔이 달린 붉은 얼굴의 악마, 치파오를 입은 여자, 펑크 머리에 가죽바지를 입은 히피족, 조선시대 머슴, 로마제국의 병사
“뭐가 적당할지 모르겠네요. 혹시 추천을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음, 손님은 이 복장이 어울리겠네요.”
그가 고른 캐릭터는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에 나온 “잭 스켈링턴”이었다.
“오 좋네요. 이걸로 하시죠.”
분장은 꽤 오래 걸렸다. 스태프의 솜씨는 아주 전문적이었고, 코스튬 의상도 다양한 사이즈가 있어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찾을 수 있었다. 분장을 마친 거울 속 내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분장을 마치고, 마침내 두꺼운 철로 된 4층의 문을 열었다.
가운데 춤을 출 수 있는 스테이지가 있고, 주위에는 테이블과 쇼파가 있는 부스가 있었다. 스테이지에서 완벽한 코스튬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인간과 동물, 천사와 악마, 만화와 영화의 주인공들이 뒤섞인 모습은 기괴하면서 어딘가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바에서 술을 마시는데, 유난히 시선을 끄는 캐릭터가 있다. 자바 더 헛에 잡힌 레아 공주였다. 손목에 플라스틱 쇠사슬을 끼운 채 춤을 추는 그녀의 몸은 부드러우면서, 리듬감이 느껴졌고, 스테이지의 누구보다 매혹적이었다. 분장이 용기를 준 것일까 술 탓인가. 난 그녀에게 슬며시 다가가 말을 건넸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그녀는 흘낏 나를 보고는 관심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80년대 디스코와 90년대 락, 20년대 EDM이 스테이지를 채웠고, 나는 미친 듯이 가면이 벗겨질 정도로 몸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