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의 사우나는 몸이 피곤할 때마다 들렀다. 그만큼 그곳의 시설과 마사지는 훌륭했고,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다. 다만, 가격이 생각보다 고가였다. 월급을 받거나 주식이 오르는 날이면 어김없이 난 헤이스팅스 빌딩으로 향했다. 북카페와 클럽도 좋았지만, 피곤에 쩌들고, 이제는 이곳저곳이 아픈 탓에 사우나와 마사지만 한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탠리가 말했다.
“J. 이제 2층에 가실 수 있습니다.”
2층이라. 6층에서 2층까지 내려오는데 5년은 걸린 것 같다. 꽤 긴 시간 이 빌딩에서 머물렀다. 이제 2개 층만 가보면 이 빌딩을 다 경험하는 셈인데, 그래 가보자.
2층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몇 개의 커다란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카드와 칩이 쌓여 있었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날카롭고, 피곤해 보였다. 방 중앙에는 카드게임용 테이블과 룰렛이 있었고, 벽주변에는 슬롯머신과 핀볼 게임기가 있었다. 구석의 바에서는 칵테일과 간단한 요깃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평소 도박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터라 난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핀볼 게임기 앞으로 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핀볼기기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심슨을 테마로 한 핀볼기기였다. 칩을 넣고 게임을 시작했다. 어라 근데 내가 이런 재주가 있었던가. 난 미스 없이 고득점을 계속했고, 게임이 끝날 즈음 100만 점 가까이 얻을 수 있었다. 게임을 종료하자 딜러가 와서 말을 건넸다.
“회원님. 100만 점을 칩을 바꾸시겠습니까. 하니면 현금으로 드릴까요?”
난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그러자 딜러는 나에게 5만 원짜리 20장을 건네주었다. 아니 게임 한판했는데 100만 원이라고, 이거 괜찮은데. 만 원짜리 칩을 다시 핀볼기기에 넣고 게임을 시작했다. 돈이 걸려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생각보다 미스가 많고, 고득점을 올리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몇 번의 스페셜 미션을 깨고, 150만 점으로 게임을 마쳤다. 난 딜러에게 이것도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이거 재미있는 걸.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니. 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용돈을 듬뿍 주고, 아내에게도 보너스가 조금 나왔다고 현금을 건네어주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기뻐했다.
다음날 나는 다시 빌딩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2층은 사람들로 붐볐다. 난 다른 게임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블랙잭, 바카라 등 테이블 게임도 배워갔다. 실력이었을까 운이었을까. 난 돈을 잃는 날보다 따는 날이 더 많았다. 관련 책을 사서 공부도 하고, 유튜브의 영상도 열심히 보면서 실력을 쌓아갔다. 도박도 준비된 사람한테는 훌륭한 투자 수단이라고 생각하며 공부와 실전을 병행했다.
그즈음 Wan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내 상황을 조용히 듣더니 이곳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를 해주었다.
“J. 헤이스팅스빌딩 재미있죠? 사실 우리 또래의 회사원들이 즐길 수 있는 곳이 서울에 거의 없다시피 한데, 이곳은 우리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온갖 것들이 있죠.”
”그런데, 여기 다니다가 대부분 2층에서 더 못 내려가고, 발길을 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랍니다. 바로 2층의 카지노 때문이죠.”
”사람들은 돈의 욕심을 벗어나지 못해요. 카지노 시스템은 딜러가 이기도록 설계되어서 개인이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인데도 사람들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가진 돈을 모두 잃고 이곳을 떠난답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돈을 따게 만들지만, 결국에는 돈을 모두 잃게 된답니다.”
”J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꼭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2층을 떠나세요. 헤이스팅스빌딩을 이제는 떠나세요”
Wan의 말에 따르면 이 빌딩에는 원래 사설 카지노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손님들을 끌어 들리기 위해 한층 한층 흥미로운 시설로 빌딩을 채우고, 그곳을 미끼로 평범한 사람들을 카지노로 끌어들였다고 했다.
난 그의 말을 듣고, 2층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성격상 사실 도박에 그렇게 큰 흥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돈을 크게 잃지도 크게 벌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1층까지는 꼭 내려가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을 꼭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