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년 동안의 시달림을 계기로,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다니는 6년 내내 친구를 사귀는 것을 두려워했던 내가 연극 무대 위에 배우로 서게 될 줄은, 그리고 그 어느 친구들보다 가깝고 오래된 인연들을 만들게 될 줄은 정말, 정말로 몰랐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쭈뼛한 발걸음으로 연극부 동아리실에 들어간 첫 계기는, 극작가로서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6년이라는 학창 시절 동안 친구를 사귀는 대신 글 그리고 책과 더욱 친해지는 것을 택했기에 아이돌이나 화장품을 주제로 하는 시시한 담소 대신 세계관이 무궁무진한 소설 속에 빠져 드는 것이 더 좋았고, 점심시간 후 운동장을 돌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보다 일명 '똥종이'에 백일장에 제출할 글을 써 내려가는 게 더 좋았다.
글을 쓰기 위해 왜 하필 연극 동아리를 택했냐, 하면 그것은 또 고등학교 2학년에 입부했던 연극부에서의 경험이 내게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글을 쓰고 싶다는 이유로 동아리를 찾아다녔고, 정적으로 책을 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독서부를 탈출해 연극부의 오디션 문을 대차게 열었다. 소극적인 성격과 많은 사람, 특히 또래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면 금방 주눅이 들어버리는 자세를 딛고 용기를 낸 결과, 연극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초빙된 강사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한 극단의 멤버였다. 나를 포함한 모든 연극부 멤버는 극단의 일원이 된 것처럼 훈련과 연습에 몰두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내 패기를 눈여겨본 극단 단장님은 외부 무대와 교내 행사에 올릴 1시간 분량의 시나리오를 쓸 기회를 안겨주셨고, 나는 처음으로 글쓰기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라는 걸 처참히 깨달았다.
고등학생이 뭘 알았겠냐만은, 그럼에도 일반 관객과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선보여질 무대였기에 단장님은 내 허접한 시나리오의 1부터 100까지를 모두 피드백하셨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는 정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펑펑 울어댔다. 한글날 기념 백일장이나 교외 공모전에서 상을 받으며, 특기란에 글쓰기라고 기입할 정도로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단장님의 피드백은 굵고 기다란 바늘이 가슴을 뚫어내듯 따갑고 아팠다.
열심히 시나리오를 뜯어고치고, 체력을 단련하고, 연기를 연습하면서, 연극은 무대 아래 관객석에서는 느끼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그렇게 반년 가까이 (피 같은) 땀과 눈물을 흘리며 공연을 올린 뒤, 해냈다는 뿌듯함과 감동,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솟아오른 도파민의 잔재는 입학식 직후, 대학교 연극부 동아리실의 문을 열게 만들었다.
라푼젤의 서사를 빌려와 작성한 청춘들의 고됨을 담아낸 1시간 분량의 시나리오는 내가 처음 제대로 완성(했다고 생각)한 작품이자 나의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간 오리지널한 이야기였다. 지금 다시 보면 어딘가 삐쭉삐쭉 날이 선 유리조각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면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 이것을 리뉴얼해 보다 넓은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지금은 독장에 김치를 넣어 묻어두듯 책장에 고스란히 넣어 두어 시간이 지나고 내 필력이 맛있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