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면접을 보고 나서 합격했다. 취업까지 2주란 시간이 남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수능 끝난 3학년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입학하기에 앞서 누리는 자유로운 시간.
파릇파릇하게 젊은 남자에게 입대를 앞두고 남은 시간 따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나이가 있다 보니까 마냥 자유롭고 기쁘지만 않다. 무엇보다 바깥 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갈수록 몸이 무거워진다.
갈수록 늘어나는 몸무게가 내가 짊어질 책임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몸무게는 그나마 나이에 비하면 가볍다. 연마다 하나씩 느는 나이가 슬슬 부담되기 시작했다.
막연히 자유롭게 살기도 눈치 보이는 시기가 왔다. 그래서 그런지 더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눈을 뜨면 정오다. 출근하는 가족과 함께 눈을 뜨지만, “조금 더 자야지”하는 마음에 눈을 감으면 서너 시간이 부쩍 흐른다. 그렇다고 해서 졸리지 않은 건 아니다. 잠은 많이 잔다고 해서 덜 졸린 게 아니다. 적당한 수면 시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잠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영역은 아닌 듯하다.
정오에 깨면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절반이나 지나갔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뭔가를 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 가끔 가다 글을 끄적이거나 집 밖에 나가 산책을 한다.
그마저 자유롭지 못하다. 마음이 편하지 못하니 뭘 하더라도 집중해서 하질 못한다. 머릿속은 어지럽다. 누군가 뜨거운 물에 커피를 녹이듯이 무언가로 휘젓는 듯한 기분이다. 잠은 실컷 자고 몸은 편하지 않고, 마음도 편하지 않다. 그렇다 보니 내게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는 수동태를 싫어한다. 당하는 듯한 느낌이 싫다. 그러나 지금 내 일상을 묘사하면 수동태를 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마치 뭔가에 조종당하듯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무 의미 없고,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은 삶. 그만하면 다행일까. 가끔 가다 웃음이 나오면 죄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내가 참 비참하다.
그렇다고 해서 남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나를 탓하거나 인생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니 차라리 잠이나 더 자자. 지금 아니면 잘 수 없으니까.
그나마 기쁜 시간이 있다면 남을 만나는 시간이다. 남이 내게 구박하더라도 좋다. 적이 생기면 오히려 좋다. 생각이 한 점으로 모여 그에 맞서기 위해 내가 나를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차라리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럴 생각을 할 만큼 ‘백수’의 시간은 괴롭다. 누군가는 자유롭게 살고 하고픈 일을 맘껏 할진 몰라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하루빨리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