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끝마치지 못했으나 성적 경고를 두 번이나 받았다. 성적 경고 때문에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건 아니다. 내가 알기로 세 번 받아야 문제가 생기는 걸로 안다. 성적 경고는 내가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첫 번째 성적경고는 1학년 1학기에 받았다. 졸업하자마자 첫 학기부터 성적 경고를 받은 셈이다. 너무 열심히 놀아서 그랬다고 말할 수 있다면 차라리 좋겠다. 즐거운 기억이나 아쉬운 추억이라도 남았을 테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난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우울감이 너무 심해 기숙사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해 낸 것이 ‘반수’였다. 1학년 1학기에 반수를 한다는 이유로 기숙사에 틀어박혀 수업에 나가지 않았다.
반수는 핑곗거리였다. 학교에 나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만든 핑곗거리. 반수를 한다는 이유로 기숙사에서 인강만 들으며 학기를 보냈다. 당연히 성적이 좋게 나올 리 없었고 성적경고를 받았다.
두 번째 성적경고는 자퇴하기 직전 학기였다. 그러니까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에 성적경고를 받았다. 아무런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다가 어떤 사건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학교를 그만둬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자퇴하겠다는 마음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실행으로 옮길 명분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그 사건이 명분을 만들어줬고, 용기를 주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해야만 한다는 명분과 지금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에서 나온 용기.
그때 당시 작가를 꿈꾸고 있었고 그래서 국어국문학과 수업을 듣고 있었다. 직접 쓴 시를 수업 중에 이야기하는 일 따위가 즐거웠는데, 자퇴한다는 이유로 수업에 더는 나가지 않았다. 그것이 못내 아쉽다. 자퇴를 하더라도 수업에 나갈 순 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 당시 내 사고방식은 두 가지뿐이었다. ‘그렇다’ 아니면 ‘아니다’ 중간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에 따르는 결과를 오롯이 받아내야만 했다. 그 결과라는 건 언제나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컸고, 더 많았다. 원하는 것보단 원치 않은 것이 더 많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인생의 거짓말’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만든 거짓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때 당시 나는 인생의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픈 일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하고픈 일을 하겠다며 하기 싫은 일을 저버렸다.
하고픈 세상에 발만 담그고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화끈해도 너무 화끈했다. 이성이 없는 게 아니었나 싶을 만큼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그에 따라 감정이 더 나빠졌다. 하기 싫은 일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아주 잠깐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마약을 하면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아주 찰나일 뿐이다. 그를 위해 그동안 쌓아온 것들, 그리고 건강하게 쌓아갈 것들을 포기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너무 어렸고, 또 어리석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