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벙어리

by 한톨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어릴 때는 집 밖에서 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랬다. 어린 시절 집 밖이라고 해봤자 거의 학교였고, 나는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별명이 벙어리였다.

부모님은 내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언어치료사에게 나를 보냈다. 그때 얼마나 수치스럽던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도로에 몸을 던졌다. 대놓고 빨간 불에 건넜으나 이상하리만치 온순한 운전자는 나를 향해 경적 한 번 울리지 않았다. 그만큼 비참해 보였던 걸까.


성인이 되고 나서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을 만났다. 그때 왜 말을 하지 않았냐고 묻길래 뭐라고 시원스레 답하지 못했다. 그냥 좀 수줍음이 많아서 그랬다고. 그렇게 말한 걸로 기억한다. 사실 학교에서 말하지 않은 이유를 나도 모른다. 나름대로 생각해 봤는데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때 당시 나는 함정에 빠져 있었다.

“처음이 가장 어렵다”라고 다들 말한다. 진짜로 그렇다. 처음은 말도 안 되게 어렵다. 어쩌면 어릴 적 나는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말을 삼켰을지도 모른다. 말을 했는데 목소리가 작아서 남이 알아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남이 보기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고, 그로 인해 내가 벙어리라는 멸칭으로 불렸는지도 모르겠다.

목소리는커녕 무슨 소리를 내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조금만 바스락 거려도 모든 눈빛이 나에게 쏠렸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 힘들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말하는 게 더욱 어려워졌고, 끝내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 돼버린 듯했다.

존재감 없는 아이에게 정체성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 무리 안에서 내가 뭐라도 되었다는 느낌을 포기하라고 하는 건 어린아이에게 가혹한 일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뭐라도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는 그 느낌, 그것이 특권이 아닐지라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느낌, 그것 때문에 내가 말을 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할 따름이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때 당시 나는 말하기에 문제가 전혀 없었다. 언어치료사에게 가야 할 이유 같은 건 전혀 없었고, 그래서 한두 번 가고 나서 언어 치료는 끝났다.


그때 경험 탓인지 몰라도 어떤 일이든 무작정 도전하곤 한다. 스스로를‘부딪히며 배우는 유형’이라고 부르며 냅다 들이박는다. 도전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그로 인해 좌절감이 쌓인다. 애써 좌절하지 않겠다고 해도 어느 수준, 임계점이 넘으면 좌절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렇게 되면 나는 무너진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인생은 유기체다. 자그마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과 이어져 있다. 어릴 적 벙어리로 산 기억이 지금도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또한 좋든 싫든 내가 선택한 바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해 뭐라고 변명하고 싶진 않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픈 바가 있다. 때로는 무관심이 누군가를 바꾼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나는 너무나도 많은 관심을 받았고, 관심을 받을수록 입술은 무거워졌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 아이로 살았고, 그것이 내 정체성이 됐다. 만약에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았더라면, 나는 벙어리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정말로 그렇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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