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인문계 대학생

by 한톨

사학과로 진학한 이유는 내가 역사를 잘했기 때문이다. 좋아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어려서부터 암기 과목을 잘했고, 역사는 암기 과목 중에서 공부하기가 가장 쉬웠다. 그래서 사학과에 진학했다. 역사를 남들보다 더 좋아하거나 역사에 흥미가 많은 건 결코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나는 내 미래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 때도 성적이 어찌어찌 맞으니까 명문고등학교에 지원했고, 운 좋게 턱걸이로 입학했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능 성적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사학과였기에 쉽게 입학했다. 사학과가 뭐 하는 학과인지도 몰랐고, 대학 생활에 흥미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까 입학하고 나서 헤매기 시작했다. 수업은 괜찮았다. 내가 문제였다. 머릿속이 조금 복잡했다. 가장 나를 힘들게 한 질문은 “이곳을 졸업해서 뭘 먹고살지?”였다. 그 질문을 20대 초반까진 회피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질문은 점점 더 무거워져서 내 발목을 잡았고, 결국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다다랐다.

정말로 모르겠다. 사학과를 졸업해서 뭘 하고 살까. 어디에 취업할 수 있을까.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는 건 일단 포기해야 한다. 예컨대, 박물관 큐레이터나 그런 곳은 넘쳐나는 석사들이 가져갈 것이다. 뽑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학사와 석사 중 당연히 석사를 뽑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그런 곳이 다른 곳에 비해 고용 안정성이 뛰어나거나 월급이 많거나 하지도 않다. 그저 괜찮은 일자리다. 그런 곳도 가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만약에 사학과를 졸업해서 학사를 딴다면, 전공을 살리는 건 포기해야 한다. 괜히 취업 포기 학과 ‘문사철(국어국문학과, 사학과, 철학과)’로 묶이는 게 아니다. 그에 더해 오래전에 유행한 ‘인구논(인문계 90%는 논다)’이라는 말까지 더해지면 사학과를 졸업한다고 해서 취직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깡그리 사라진다.


전과를 하거나 복수전공을 하기엔 성적이 좋지 못했다. 어쩌면 사학과에 진학한 게 잘못이 아니라 오롯이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잘잘못을 따진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지거나 그러진 못하니까 그에 대해 더 말하고 싶진 않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어디로 가야 내가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지’다.


여러 가지 직업을 겪었다. 대형 서점 직원부터 식자재 마트 공산팀까지. 사무직도 물론 해봤다. 뭐가 더 내게 어울린가 하고 따져 보면 몸을 쓰는 일이 더 어울렸다. 서비스직보단 사무직, 사무직보단 몸 쓰는 일, 쉽게 말해 블루칼라 업종이 더 맞았다.

왜냐면 나는 마음이 불편한 게 몸이 불편한 것보다 더 싫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내게 지나친 스트레스를 준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며 일하는 게 좋지도 않다. 내 영혼을 죽이는 일 같다. 그렇다면 몸을 쓰는 일이되 지병을 자극하지 않을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대학교만 졸업하면 뭔가 될 줄 알았다. 어엿한 어른, 하다못해 그럴싸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학벌이나 성적 따위가 그리 녹록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내 탓이다. 예상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하지 않은 탓이다.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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