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20대 후반

by 한톨

20대 후반이 되고 나니 더는 나를 방치할 수 없었다. 나는 되는 대로 살았고, 사는 대로 생각했으나 꿈꾸기를 잊지 않았다. 단지 행동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처럼 그랬다. 어찌 보면 사이비 신도보다 더 못났다. 적어도 신도는 자기가 믿는 바를 이루고자 노력은 하는데, 난 그러지 않았으니까.

스스로에게 어떤 믿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나는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다.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신세 한탄이나 하며 살고 싶진 않다. 너무나도 많이 해봐서 그래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20대 후반은 잔인한 겨울이다.

이육사 시인이 <절정>에서 노래한 겨울의 비유가 딱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저명한 시인이 쓴 문장을 감히 따져 묻고 싶진 않다. 그냥 느낌이 팍 와닿는다. 내가 말하고픈 바다. 20대 후반은 강철로 된 무지개 같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정신이 아찔하다. 젊음의 끝, 사실 20대가 끝나는 게 전부인걸. 그렇지만 아슬한 마음이 잦아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무지개인가. 내게 남은 날이 많기 때문이다.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많이 남았다. 손에 닿을 듯하지만 잡을 순 없는 무지개처럼 내게 남은 영겹의 세월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차갑다. 시리다. 그래도 아름답다. 내가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그래서 두렵다. 그것이 20대 후반이다.

아직 30살도 되지 않은 놈이 뭐 그리 호들갑을 떠는지, 하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옛날 말로 계란 한 판 채우지 못한 녀석이 다 죽은 것처럼 군다고 말할지도. 그렇지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불안과 되돌릴 수 없는 공허함은 죽음보다 더하면 다했지 결코 덜하진 않는 듯하다.

20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사실 20대 내내 나를 바꾸려고 했었다. 될 줄 알았다. 내게 그럴 만한 자질이 있으리라고 믿었다. 퀴퀴 묵은 믿음만 남았다. 헛된 믿음은 나로부터 젊음을 앗아갔고 나로 인해 끝이 났다.

아직 20대가 남아있으니 남은 날을 불태워 보리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지금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 노력하겠다고 말만 하지 않고 정말로 열심히 살겠다. 내게 남은 시간에 감사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진 않겠다.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되 드러내진 않겠다. 교양은 다른 게 아니라 그런 것이다.

10대가 끝날 땐 구름으로 된 무지개에 오르는 기분이었다. 나 또한 어찌할 수 없는 흐름에 나를 떠맡겨 어딘가로 가고 있는 듯했다. 그에 반해 지금, 20대 후반은 무엇도 나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 내 길은 내가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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