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은 복합터미널에 있는 대형 서점이었다. 기억하기로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맡은 업무는 카운터를 보는 캐셔 및 책을 정리하는 일. 아마도 아동 파트였을 것이다.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에 들어갔다. 3월이 시작하는 날. 새 학기를 맞아 학용품을 사러 온 학생들과 아이들에게 뭐라도 쥐어주고 싶은 학부모들, 그리고 그냥 서점에 자주 오는 사람들이 모이고 섞여서 캐셔 일만 하기도 벅찼다. 그에 더해 나보다 1년 일찍 들어온 사람들, 즉 선임들이 퇴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앞으로 일하는 게 몹시 어려워지리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첫 출근날이 삼일절이어서 더욱 그랬다. 모르는 건 산더미인데 계속해서 손님은 물 밀 듯 밀려오고, 옆에 있는 선임도 정신이 없어서 잘 도와주지도 못하고 여러모로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어째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유독 바쁜 시기에 취직한다. 식자재 마트에 취업할 때도 설날을 앞둔 주에 취업해서 정신없이 일했다. 그때는 내가 언제부터 다닐지 고를 수 있었으니 회사가 잘못했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서점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서점이 그리 바쁜지 몰랐고 면접을 볼 때도 일이 어떠하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많이 걸어 다닐 것”이라고만 귀띔해 줬을 뿐. 2만 보는 족히 걷는다고 겁을 줬으나 카운터에 묶여서 1만 보도 채우지 못하고 귀가했다.
첫 직장에서 만난 첫 상사들은 일을 몹시 사랑하는 듯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내가 어떤 상황인지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잘잘못만 따졌다. 이제 와서 그를 두고 가타부타 따져 묻는 건 졸렬한 일 같으니 첫 직장에서 그나마 좋았던 기억을 이야기하겠다.
10시 10분, 아침이었다. 복합터미널에서 책이 잔뜩 담긴 수레를 받았다. 그것을 끌고 2층에 있는 서점까지 가야 했다. 하필이면 사람이 쏟아질 때에 수레를 건네받아서 옮기기가 여간 어려웠다. 그에 더해 수레가 튼튼하지 않고 포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조금만 움직여도 책이 쏟아질 듯 말 듯했다.
사람들 사이를 겨우 뚫고 책 수레를 끌고 갈라 하니까 시각장애인을 위해 깔아 놓은 블록에 턱 하고 걸렸다. 수레가 한 번 출렁여서 책을 뭉텅이로 두어 권 떨궜다. 다시 책을 쌓고 엘리베이터로 가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분이 책이 넘어지지 않도록 책을 잡아주셨다.
나는 어쩔 줄 몰라 “감사합니다”라고 속삭이듯 말했고, 그분은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꿋꿋이 수레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옮겨주고 제 갈 길을 가셨다. 감사하다는 말이라도 들으셨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분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수레를 옮기다가 멘탈이 나갔을 것이다. 가뜩이나 내성적인 내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허술하게 쌓인 책을 가득 실은 수레를 옮겨야 하다니.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하다.
어쩌면 트라우마가 됐을지도 모를 기억을 그분께서 좋은 기억으로 만들어주셨다. 그때 처음으로 ‘인류애’를 느꼈다. 다른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서 기쁘다는 느낌. 다른 동물보다 더 인간을 사랑하는 느낌.
작은 일은 종종 큰 것을 바꾼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 작은 일이 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