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자마자 대학교에 들어갔다. 외딴곳에 홀로 떨어진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말로 하기엔 버거운 우울감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나는 나의 대학교를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고작 이것밖에 되지 못했어!”그런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내가 놓지 않았다.
스무 살 절반이 지나고 나서 고향으로 되돌아갔고, 지난날은 성적경고로 되돌아왔다. 그때부터 나는 반수를 한답시고 집에서 지냈다.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날마다 상상만 했다. 내가 지난 수능보다 엄청나게 수능을 잘 보리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성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모의고사에서 받은 성적은 또 다른 성적경고였다. 그때 내가 수능을 잘 볼 일은 없었다. 나 또한 알고 있었다.
회피의 연속이었다. 대학교가 수치스러워 반수를 하겠다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수능이 망할 건 뻔했고, 그래서 죽을 생각도 했지만 죽지도 못했다. 죽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적어도 죽을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죽는 것도 쉽지 않다.
반수가 망하고 나서 또다시 회피한다며 군대를 가겠다고 했다. 입영 날짜를 고를 수 있는 날 중에 가장 늦은 날짜로 했다. 그것이 21살 6월이었다. 만약에 학교를 제대로 다녔다면 2학년 1학기를 마쳤을 시기다.
정확히 1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사람을 만나거나 그러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아침이나 점심에 일어나 침대에 계속 누워있다가 배고프면 밥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눕는 게 전부였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그에 대한 답을 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죽으려 했는지 말하겠다. 나는 밧줄에 목을 매달고 죽으려고 했다.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은 거의 자기 자신을, 다시 말해 불쌍한 자기 자신을 남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고 한다.
그때 당시 내가 그랬다. 내가 이만큼 고통스럽고 아프다는 걸 사람들, 아니 가족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어찌 보면 직접 하진 못했으나 목매달고 죽은 것과 다름없이 살았다.
“나를 구해줘. 나를 봐줘. 나를 다르게 만들어줘. 나를 어떻게 좀 해줘.”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그런 짓밖에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이 피해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불쌍한 나를 위로해 줄 누군가를 찾았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에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1인극에서 2인극으로 바뀐 비극이 됐을 게 뻔하다.
확실히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긴 너무 아깝다” 내가 불쌍하고 가엾은 피해자라고 말하고 싶어서 1년이란 시간을 보냈다는 게 안타깝다. 그때를 그렇게 허송세월로 보내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허송세월’이란 단어가 몹시 싫어졌다. 어릴 적에 ‘벙어리’란 단어를 싫어했던 것처럼 그랬다.
지금은 싫어하는 단어가 딱히 없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단어도 없다.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한다고들 말하지만, 실은 영영 타오르는 불꽃이 없기 때문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