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다. 오늘이 끝이 아니라 내일도 있기에 일을 미루고 또 미뤘다. 미룬 일을 한 적도 있지만 하지 않은 적도 있다. 사실 그랬던 적이 더 많다. 하지 않은 일은 어제와 함께 저물었다. 영영 저물었다.
‘만약에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특히 하고자 했으나 결국 하지 않은 습관을 떠올릴 때 그렇다. 예를 들면 시간이 넘쳐나서 괴로웠던 고등학교 시절, 왼손으로 글씨 쓰는 습관을 만들어 왼손잡이가 됐더라면 어땠을까. 양손잡이가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글씨를 두 배나 더 많이 쓰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 양손잡이는 흔하지 않아서 멋있으니까 더 멋진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상상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지난날을 다르게 살았다면 어떻게 바뀌었으리라고 떠드는, 또는 지난날 내가 얼마나 잘 나갔다고 말하는 건 오늘을 사는 나에겐 이야기일 뿐이다. 소설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다.
인생은 유기체이지만, 덩치가 너무 커서 어떤 부분은 금방 잊힌다. 하려다 만 건 특히 자주 잊힌다. 어렵게 배운 건 오래가고 쉽게 배운 건 금방 사라지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고통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특히 의도한 고통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지난날을 어떠하다고 이야기해 봤자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날을 깡그리 잊고 오늘을 살아가는 건 갓난아기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오늘만 살기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고, 내가 억지로 잊는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러므로 좋든 싫든 지난날을 받아들이고 그에 어울리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나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다. 내일은 다른 날이 아니라 또 다른 오늘이었다. 날짜는 시간일 뿐이었고 하루가 갖는 소중함을 소홀히 하며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오늘을 산 적이 없었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일 뿐이고, 내일은 오늘을 하루 더 늘린 꼴이었다. 하루도 특별한 날이 없었다. 설령 특별한 날이 있더라도 특별하지 않은 날, 괴로운 날이 앞에 있기에 오롯이 그날을 즐기지 못했다.
하루를 하루처럼 살지 않고 내게 주어진 덤을 받은 것처럼 살았다. 어쩌다 보니 태어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게 주어진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까 스스로 뭔가를 쟁취하려고 하지 않았고 언제나 주어지는 만큼만 받았다. 그에 대해 불평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세상을 너무 좋게 봤다.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라고, 내게 좋은 시간이 오리라고 상상했다.
앞날은 영원히 밝았고, 지난날은 또 다른 오늘이었고, 오늘은 어쩌다 주어진 덤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행복할 시간이 없었다. 난 행복하지 못했다. 행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인생은 내가 빼앗기 전까진 내 것이 아니다. 결코 영원하지 않다. “인간은 자기가 행복하겠다고 마음먹은 만큼만 행복하다”라고 어느 위인이 말했다. 행복하고 싶다면 그만큼 행복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죽을 수 있고, 그에 따라 내 인생은 끝날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을 살자.
오늘을 붙잡자.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자.
"Seize the day. Make your life extraordinary."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