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사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 아무리 똑똑한 사전이라도 사람 마음을 모두 담아낼 순 없으니, 내가 느끼는 기시감을 다르게 말해보겠다. ‘데자뷔’다. 사전을 빌리지 않고 멋대로 말하자면, ‘분명 처음인데, 이전에 경험한 기분’
오늘 기시감을 느꼈다. ‘느낀 것 같다’처럼 모호하지 않았다. 정말로 느꼈다. 기시감이 내게 와닿았다. 나는 언젠가 분명 오늘 그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느낌을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유명인과 자기 지인이 친하다고 말하는 회사 동기’, ‘나와 인사를 나누는 높은 직급의 남자 어른’, 그리고 ‘뭔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 따위.
어딘가에서, 분명히, 어느 순간에 이와 같은 바를 느꼈다. 나는 그때가 언제인지도 안다. 그러나 실제로 있었던 상황은 아니다. 꿈에서 봤고, 꿈에서 느꼈고, 그래서 더 당황스럽다.
나는 워낙 충동스러워서 큰일도 갑자기 바꾸곤 한다. 그래서 입사와 퇴사를 여러 번 거듭한 게 아닐까 싶다. 그 때문에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어제의 나는 알지 못한다. 더 오래 전의 나, 예컨대 일주일이나 한 달 전의 내가 오늘 내가 대충 어떻게 살고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일을 있을 수 없다. 감조차 잡을 수 없다. 그만큼 확확 바뀐다.
그런데도 기시감을 느낀다. 오늘 내가 느낀 바는 정말로 내가 겪었던 바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겪을 수 없었던 일이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인을 아는 지인’과 회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직급 높은 남자 어른에게 인사하고’ 나서 ‘섞이지 못하는 공허함을 느끼며’ 장면이 끝난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런 경험을 한 적은 없다. 단언컨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꿈속에서 본 적이 있다. 꿈을 현실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참말로 그렇지 않다. 분명 꿈속이었다. 나는 꿈에서 그것을 경험했고, 그러고 나서 현실에서 겪었다.
그렇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건 없다. 신기한 경험을 글로서 남기고 싶었을 뿐. 조금 호들갑 떨면서 나답지 않게 글을 쓰고 싶었지만 개가죽을 뒤집어쓴 고양이처럼 어설펐다. 그래도 가끔은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기시감을 겪고 나서 홀로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늘 똑같이 사는데 오히려 데자뷔(기시감)를 느끼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그만큼 일상은 단조롭고 날마다 하는 일은 엇비슷하다. 특히 출근하는 날은 더욱 그렇다.
오늘도 출근했고, 어제도 출근했고, 아마도 다음 달까지는 출근할 것이다. 두 달 전과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기에 일이 주는 무게감은 다르지만, 느낌은 엇비슷하다. 어찌 보면 기시감을 느끼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삶은 어떻게 이토록 단조로울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꽃잎도 새벽과 저녁에 다른 물방울을 머금는다. 일상이 단조롭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다.
나는 인생을 재밌게 살고 싶다. 즐겁게 살고 싶다. 자주 웃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