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일. 사회는 차갑다

by 한톨

첫 발을 내딛는 사람에게 사회는 말한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어느 무리에 들어가든 가장 밑부터 시작한다. 게임으로 치면 레벨 1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해야 할 일이 많다. 퀘스트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다행히 그리고 당연히 처음부터 어려운 일을 떠맡진 않지만, 레벨이 낮은 만큼 모든 일이 낯설고 처음이라 모든 일이 버겁게 여겨진다.

난생처음 보는 어른에게 머릴 숙여 인사한다. 아침마다 그렇게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사’는 형식치레가 된다. 어릴 적 배운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반가운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내가 여기 있음’을 알리는 행위로 바뀐다. 그렇다고 해서 인사를 반갑지 않게 하면 안 된다. 반가운 사람을 만날 때보다 더 반갑고 더 살갑게 해야 한다. 마치 주인을 만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며 반기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는 차갑다. 무리 속에서 나는 심장을 갖고 있는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의 부품일 뿐이다. 나는 학력이나 자격증으로 판단되고, 숫자로 구분된다. 수동태를 싫어하는 나조차 수동태로밖에 스스로를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사회 속 ‘나’다.

사회에서 나는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다. 그럴 만한 위치가 아니고 그럴싸한 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하는 일이 적은 건 아니다. 기술이 모자라거나 경험이 부족해서 일이 적어도 많다고 느낀다.


비관하고 싶진 않다.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인간은 어쩌다가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을까. 인간을 위한 무리가 아니라 무리를 위한 인간이 되었는가. 인격체가 아니라 부품이 됐는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다루기엔 소설이란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소설에서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므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


낙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차가우므로 우리는 더 뜨거워져야 한다. 부품일지라도 인격체처럼 행동해야 한다. 억지로라도 더 반갑게 인사하고 뜨겁게 환영해야 한다. 그래야 차가운 사회가 그나마 따뜻해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걸 좋아한다. 어떤 명사든‘차갑다’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달갑지 않게 다가온다. 본디 차가운 속성을 가진 물체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차가운’ 인간이나 무리, 사회를 바라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은 힘들지라도 더 뜨거워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많은 어른이 얼어 죽은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형식치레로 인사하고 웃는다. 상사가 없으면 본모습을 드러낸다. 두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볼 때마다 놀랍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하다못해 그런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은 내가 뜨겁게 살지 않으면 될 모습이다. 그들은 내가 나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될 모습이다. 그마저도 되지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무리에서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난 그러고 싶지 않다. 비록 내가 뜨거운 사람이 아닐지라도 차가운 사회를 조금이나마 인간답게 만들고자 마땅히 노력하겠다. 나를 불사르거나 그러진 않겠다. 그저 체온에 버금가는 온기를 언제든지 품고 있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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