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 인생의 변곡점

by 한톨

변곡점이란 어떤 함수의 음과 양이 바뀌는 지점이다. 이를테면, ‘점 X’까지 함수가 음수였다면, ‘점 X’ 이후부터는 양수가 된다. 그렇기에 ‘인생의 변곡점’이라고 한다면 인생이 극적으로 바뀐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 인생이 언제부터 음의 영역을 달렸는지, 그러니까 마이너스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생은 불행하기만 했다.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모든 게 싫었고 살아있을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했다. 짜증 나고 두려운 나날이었다.

적어도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기 전까진 그랬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변곡점은 대학생일 때다. 나이로 치면 20대 초반이다. 그때 나는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꿈이라고 해도 좋으리만치 위대한 목표였다. 그때 당시 내겐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을 하게 만든 목표였으니까 감히 꿈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그 목표는 시력교정술이었다. 쉽게 말해서 라섹 수술. 나는 빌어먹을 안경을 벗고 싶었다. 중학생부터 쓰기 시작한 안경에 싫증이 났지만 안경을 벗고 살 수는 없었고, 그래서 내 모든 불행을 안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불행한 이유가 내 외모 때문이라고 그때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이놈의 안경만 벗으면,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내 인생이 극적으로 변하리라고 생각했다.

박탈감이 심해서 그런 생각을 했던 듯하다. 어려서부터 나는 잘생긴 편이었다. 영화배우 누군가를 닮았다는 말을 날마다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외모가 망가지기 시작했고, 시쳇말로 ‘역변’을 맞이했다. 그 때문에 외모에 대한 박탈감이 더욱 커져 안경을 저주하는 지경에 다다랐다고 본다.


이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 대하는 일을 못했다. 그냥 못했다. 부끄럼도 많았고 기술도 모자랐다.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인사하는 일은 없었다. 얼마나 그랬으면 대학교 동기가 “인사 좀 하라!”고 핀잔을 줬을까. 그런 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오로지 라섹 수술을 받겠다는 마음 하나로 그랬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밥벌이를 시작했다. 실은 처음으로 내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대로 실행한 일이었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떨리고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진상 손님을 만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그때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일단 부딪혀 보고 나서 생각하는 유형이 됐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두려워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옛날보단 덜하다.

라섹 수술을 하고 나서 인생이 극적으로 변했는가 하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안경 하나 벗는 걸로 역변을 막아낼 순 없었다. 나는 예전 모습을 잃었고, 기대만큼 세상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러나 어떤 목표를 갖고 그것을 이루어낸 경험, 특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 대하는 일을 직접 해보고 나니까 세상 사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아주 작은 한 걸음이었지만, 그때 나아가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인생의 변곡점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나에게 고맙다. 아주 큰 용기를 내줘서!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8화37일. 사회는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