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12 월부터 22.12.17 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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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쓰기를 합니다. 일주일간 쓴 것 중 마음에 드는 문장을 뽑아 올립니다.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세요!
> 미래에 뭘 할지 정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무언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미래가 온다고 하더라도ㅡ사실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다ㅡ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지금 무얼 할지 정하자.
> 미래가 어떻게 될지, 또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고 자문하며 나를 감칠맛 나도록 두렵게 만들곤 했으나, 그런 멍청한 짓은 그만두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게 해롭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날 닦달하여 얻을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죄의식과 진배없다. 잘못한 과거의 나보다 좀 더 우월한 현재의 나를 만들어 잘못으로 인한 벌을 받는다고 착각하게 만들 따름이다. 실제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 나의 노트북은 세상에 밤만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노트북을 켜는 순간, 언제나 해가 저물어 있고 불이 켜져 있으니까. 종일 게으름 피우다가 노트북을 열어서 하는 일이 “오늘도 나는 게을렀다! 망할 자식!”이라면, 그것만큼 우울한 일도 없겠다. 난 그러고 싶지 않다.
> 만약에 신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알아서 신을 찾아 나서겠다. 종교인, 즉 신의 대리인의 도움은 필요 없다. 나는 타고난 신앙심을 가지고 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종교는 필요하지 않다.
> 때때로 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난 완벽하지 않으니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렇다는 걸 인정하겠다. 더는 인정하지 않으려야 그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나의 단점이나 결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로, 나는 게으르다. 충분히 게으르나 나 자신에게 주문 걸 듯 나는 게으르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게으름에 비하면 내가 나를 게으르다고 꼬집는 건, 소와 함께 있는 쇠파리의 모습처럼 특별히 눈길이 가진 않는다.
둘째로, 나는 악마의 자부심을,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버트런드 러셀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게 했던 말이 있다. “그는 악마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은 교수와 학생 관계로 대학교에서 만났고, 그때 러셀이 비트겐슈타인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악마의 자부심,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노력하지는 않으나 성공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게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상을 낮추거나, 목표를 낮출 생각은 없다. 노력하는 것 말곤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로, 나는 굉장히 낙관적이다. 실제로 대학교를 다닐 적에 담당 교수에게 들었던 지적이다. 해당 교수가 뛰어난 교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지적은 참으로 옳았다. 두 번째로 지적한 결함과 맥락상 통하는 부분이 있으나, 구태여 한 번 더 지적하고 싶다. 나는 정말로 낙관적이다. 그러나 낙관적이라는 것이 꼭 단점 내지 결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잘만 이용하면, ‘악마의 자신감’과 마찬가지로, 내게 엄청난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 나는 사랑하기 전에, 나의 못된 성격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 남을 위해 행동하는 건 잘못이 아니지만, 남에게 어떤 보답을 바라고 착한 행위를 하는 건 잘못이다.
>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하되 걱정할 필요는 없다.
>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간으로 가득한 게 세상이다. 나로선, 언제나, 나밖에 알 수 없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나 한 인간의 평생을 바쳐도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 만약에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이런 식으로 고통받으며 사는 것이 순리였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면, 나의 앞날에 고통뿐이라면, 구태여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고집스럽게 인생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인생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운명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하질 않은가. 행복도 불행의 옷을 입고 나타나지 않을까.
> 윈스턴 처칠이 조언하였듯, “지옥을 지나고 있다면 그냥 계속 가라”. 다른 방법은 없다.
> 나의 성씨나 유전자, 키나 신체 조건 따위는 중요치 않다. 나는 그냥 나다. 나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살가죽이 있는 존재일 뿐이다. 그거 말곤 중요한 건 없다.
> 상상이 너무 쉽게 떠오른다. 불쑥 고개를 내밀어 나를 마음대로 휘젓다가 지루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나는 상상의 장난감이 되어, 내가 하는 생각의 노리개가 되어, 시간만 낭비한다.
> 나는 하루쯤 밀린 삶을 살고 있다. 기차가 연기되듯, 연착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까닭에 오늘을 충분히 즐기고 있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 스스로에게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이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믿는다. 자기 인지나 자기 인식이 부족한 경우, 인간은 불행해질 수 있다. 헤엄치고 있으나 자신이 물속에 있는 줄 모르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은 중요하다.
> 나에겐 질문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난 항상 그래왔을지도 모른다.
>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은 터무니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어쩌면, 완전히 틀린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러기로 하였다. 적어도 그러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