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일. 자아의 무덤, 무리

by 한톨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고대 철학자가 이야기한 바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유는 그것을 부정하는 근거가 없기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이유는 사회성 덕분이다. 우리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힘이 더 세거나 덩치가 더 크진 못했어도 언어를 매개로 무리를 만들었고 그에 따라 다른 인종을 물리칠 수 있었다.

고대를 넘어 선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사회, 즉 무리를 만들었고 그를 통해 힘을 얻었다. 그 힘으로 다른 인종을 멸종시켰고, 세상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근대와 현대를 지나며 무리가 갖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으나 여전히 인간은 무리 지어 활동하기를 원하고 다양한 무리가 사회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 그러니까 큰 문제없이 자란 우리나라 사람을 한 명 상상해 보자. 그 사람은 부모님이 만든 가정이란 무리에서 태어난다. 조금 더 자라서 동네 친구들을 만나 무리를 이루거나 유치원에 가서 또 다른 사회에 들어간다. 그렇게 학생이 돼서, 학교라는 무리에 들어간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은 쓸모가 없어질 때까지 이름만 다를 뿐 어느 무리에 들어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한다.

사회성이 있든 없든 정상적이든 그렇지 않든 인간이라면 어느 무리에 속해 있다. 그리고 무리는 그 모습이 어떠하든 인간처럼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사람 하나가 그 무리를 바꿀 순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무리 안의 인간은 강하지 않다.

인간은 약했기에 집단을 만들어 활동했으나, 이제는 집단이 인간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나약한 인간은 집단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혼자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인간은 청년이나 중장년뿐이다. 어린이나 늙은이는 홀로 생계를 꾸려가는 게 버겁기에 사회 공동체가 도와줘야 한다.

결국 인류 역사처럼 인간 또한 무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아를 가진 한 명의 인간은 어떻게 해야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사회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자아실현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운동을 함께 하며 자아 실현할 수도 있다. 책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작은 무리에서 그럴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회사나 학교 같은 곳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을까. 구태여 자아를 실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 정말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자아실현을 하지 않으며 산다면 나는 누구인가. 그저 어느 무리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무개 씨가 아닐까.


무리는 자아의 무덤이다. 그와 동시에 무리는 자아가 자라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면 인간에겐 다른 사람이 필요하고,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자아실현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아라는 개념은 타인이 있을 때에 비로소 나타난다. 타인 없는 자아는 그림자 없는 몸이다.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또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지금 내가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자아실현은 오로지 글쓰기뿐인걸.


그것에 감사하며 살기엔 하루가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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