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일. 인간의 조건, 인성

by 한톨

인권은 인간으로 태어나면 응당 가져야 할 권리다. 그에 겨루어 보면 인성은 인간으로 태어나면 으레 가져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인성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라고 부르기 민망하다. 그렇다고 그들을 짐승이라고 부르는 건 동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인간은 오로지 인간이 평가하고 평가받는다. 인간보다 못한 인간, 다시 말해 인성이 없는 인간이라고 한다면,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부를 필요 없다. 그냥 만나지 않으면 된다. 어쩔 수 없이 만나야만 한다면 그만큼만 만나면 된다. 인간이라 부르기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조금 과격한 말이지만, 점성 없는 점토가 돌덩이인 것처럼 인성 없는 인간은 살가죽이다. 인간이고 싶다면 마땅히 인성을 갖춰야 한다. 인성이 없는 인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인권을 가질 테고 인간이기에 누리는 이것저것을 모두 누리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들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

생물학에서 본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무엇이 다를까.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심지어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바나나와 유전자를 절반 넘게 공유한다. 그러나 인간은 바나나를 지배한다. 바나나에게 지배당하거나 바나나에게 잡아먹혔다는 인간을 나는 듣거나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역시 좀 과격하게 말한다면 인간이 갖는 사회성 덕분이 아닐까. 사회성은 뭐라고 부르는가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뀌기에, 여기선 사회성을 무리를 이루고 유지하는 능력이라고 하겠다. 사회성은 인간에게 아주 중요하다. 사회성이 없었다면 인간은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혼자서 영문학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고, 세종대왕 또한 혼자서 한글을 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사회성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인성이다. 사회성 없는 인간은 있을 수 있지만 인성 없는 인간은 있어선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인성 없는 인간을 모조리 붙잡아 없애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 또한 인성 있는 인간이 할 짓은 아니다.


어떤 경우든 인간이 인간을 한 명의 인간으로 본다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인간이 아닌 무엇으로 대한다. 정적(政敵)이거나 자기 성공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 따위로. 인간이 인간을 그렇게 대하는 이유가 나는 인성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인성, 즉 인간다움을 갖고 있다면 갈등은 알아서 풀릴 게다.


조건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엄한 구석이 있다. 그만큼 오늘날, 아니 오래전부터 인성을 갖춘 인간을 만나는 일은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인성을 갖추길 포기하면 안 된다. 내가 스스로에게 그런 삶을 허락하지 못하겠다.

나는 인간을 미워했지만 그만큼 인간에 대한 동경도 가지고 있다. 양가적 감정이지만, 모든 감정은 그런 면이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인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미워한 인간은 결국 인성을 갖추지 못한 인간이었다. 인성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모든 인간을 좋아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인성은 갖춘 사람과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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