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일. 가난을 벗 삼는 직업

by 한톨

에리히 프롬이 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는 재밌는 문장이 나온다. “예술가의 지위는 취약하다 …… 예술가는 역사상의 모든 혁명가와 비슷한 처지다. 성공한 혁명가는 정치가가 되고 실패한 혁명가는 범죄자가 된다.”

에리히 프롬이 직접 말하지 않았으므로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성공한 예술가는 정치가처럼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실패한 예술가는 범죄자가 되진 않겠지만 그만큼 어려운 삶을 살 것이다.

사실 예술가가 어렵게 산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 예컨대 철학가 등등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는 벌어먹고 사는 일이 버겁다. 오죽하면 ‘가난을 벗 삼는 직업’이라고 불릴까. 그런데도 예술가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용감하다며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스스로에게 그렇게 관대하게 대할 순 없다.

나는 가난을 벗 삼고 싶진 않다. 젊은 시절 가난을 겪은 탓에 가난이 얼마나 지독히 사람을 괴롭히는지 잘 알고 있다. 어쩌면 프롬이 말한 대로 범죄자만큼이나 비극스런 삶을 산다. 차라리 범죄자라면 나쁜 짓을 하고 나서 벌을 받는 건데, 예술가는 그렇지도 않다.

에리히 프롬이 약 백 년 전 사람인 걸 생각해 보면 예술가의 지위가 갑작스레 단단해져 가난이 아닌 부유함을 벗 삼는 직업이 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을, 나로 따지자면 글쓰기와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싶진 않다. 왜냐면 그 일들은 다른 일로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하고 싶다. 그러니까 오히려 직업이 되면 안 된다. 경제적 기반을 탄탄히 잡아놓고 남는 시간에 어떻게든 글과 소설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조금 더 열심히 살 필요가 있다.


가난을 벗 삼는 직업이라면 가난하지 않게 다른 일을 함께 하면 된다. 물론 그만큼 작업에 들이는 시간이 줄어들겠지만 어쩔 수 없다. 부유하게 태어나지 못했고 단번에 성공할 만큼 우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니. 내가 갖고 있는 건 오로지 “쓰고 싶다”라는 마음뿐이다. 그에 더해 스스로가 알량한 재능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 재능을 계발한다면, 어쩌면 운이 좋으면 소설가로 크게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러한 기대에 모든 것을 걸 순 없다. 이미 그런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내가 소설가로 성공하리라고 믿었고, 그래서 생업을 내팽개치고 글만 썼었지만, 가난이 나를 옭아맨 탓에 몸과 마음만 망가뜨리고 결국 원래 삶으로 돌아가야 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를 가난으로 내몰고 싶지 않다. 가난이 나를 괴롭게 하지 못하게 하겠다. 그만큼 소설 쓰기에 집중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좋다. 가난한 것보단 적게 쓰는 게 낫다.

인생은 무수한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다음 길이 열린다. 어쩌면 낭만을 이유로 위험한 길을 갈 수도 있으나, 그런 짓은 소설 속 인물에게 맡기고 싶다. 나는 되도록 안전한 길로 가고 싶다. 특히 가난하고 싶진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난하고 싶진 않다.


인생은 한 번 뿐이지만 꿈꿀 수 있는 인생은 가짓수가 너무 많다. 그러나 살 수 있는 인생은 단 하나다. 그 인생을 잘 꾸리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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