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이 센 남자아이에게 세계지도를 보여주면 이렇게 되물을지도 모른다.
“내가 있는 곳이 왜 한가운데가 아니에요?”
유년기는 대체로 자기중심적이다. 아이가 눈을 감으면 세상은 꺼진다. 아이가 눈을 가리면 세상은 사라진다. 눈만 가려도 몸이 사라진 줄 안다. 어른이 보기엔 그저 귀여울 뿐이지만 아이는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
그것과 같은 이유인지는 몰라도 자기가 고통스러우면 다른 사람도 고통스러우리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내가 그랬다. 내가 아프다는 걸 누군가는 알아주리라고 믿었다. 고집스러울만치 강하게 믿어서 아프다는 걸 쉽게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괴롭히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기회가 있었으나 상대방을 ‘나’처럼 생각해서, 만약에 ‘나’라면 이렇게 위협하면 그만둘 것이라고 단정해서 말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어리석을 만큼 ‘나’로 생각한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숱하게 실패하지만 실패한 이유를 모른다. ‘나’를 바꾸면 되는데 바꾸질 못한다. 특히 고집스러운 아이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그랬다. 내가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알려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기억하기로 역사 인물이 줄줄이 나오는 노래(제목은 아마도 ‘한국을 빛 낸 100명의 위인’)를 외우면 집에 보내주겠다고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거의 처음부터 그 노래를 외웠다. 그러나 말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끝까지 버텼다. 결국 해가 떨어질 때쯤이 되어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 그 노래를 얼마나 지독히 외웠는지 담임 선생님이 직접 만든 역사 문제 50개에서 48개를 맞췄다. 반에서 두 번째 가는 성적이었다. 그만큼 높은 성적을 초등학교 시절에 받은 적은 없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노래를 지독히도 오랫동안 속으로 불렀다는 뜻이다.
착각에 빠져사는 어린이는 어른을 멋있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처럼 행동하려고 한다. 특히 술이나 담배처럼 어른만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홀린 것처럼 빠져든다. 나는 그렇진 않았지만 내가 알던 애들 몇몇은 그렇게 술이나 담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고 있다. 어릴 적 시작한 술담배는 끊어낼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지만, 어린 시절에 어른처럼 구는 아이는 어른이 되면 어린이처럼 군다. 어린이처럼 군다고 해서 못 살거나 그러진 않는다. 오히려 어른의 세계에 일찍 눈을 떠서 자기 삶을 힘껏 일궈 나가는 아이도 있다. 다만 그게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린 시절은 어린이답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떼쓰고, 어리광 부리고, 뭔가 잘못되면 울고, 실수로 뭔가를 깨뜨리고, 하지 말라는 짓도 해보고, 다치고, 넘어지고. 물론 계속 그러면 문제가 되겠지만 한 번쯤은 그러는 건 좋은 경험이라고 본다. 어린이가 아니면 언제 그런 걸 해보겠는가. 어른이 돼서 그러면 꼴불견이다.
안타깝게도 사회에서 만난 어른 중 대부분이 어릴 적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외모는 늙었지만 하는 짓은 어린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린 몸짓에 교양을 덮어씌운 꼴이라고 할까. 그런 모습은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난 그런 사람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다행히 그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유년기의 가장 큰 착각은 아마도 사람들이 날 좋아하리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아이를 우울한 어른으로 자라게 만드는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