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잘 타지 않는 편이다. MZ세대답지 않게 유독 유행과 거리가 있었다. 올 겨울은 그렇지 못했다. A형 독감이라는 유행에 올라탔다.
독감을 확진받고 나니 후회스러웠다. 회사에서 단체로 독감 예방 접종을 맞으러 갈 때 따라갈걸 그랬다. 어쩌면 누군가, 특히 상급자는 그를 두고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다면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하겠다.
A형 독감에 걸리고 나서 잃은 건 건강과 돈,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수액을 맞느라 돈을 많이 썼다.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오늘날 하루 일당보다 더 많은 돈을 수액 맞는 데에 썼다. 그래도 돈 쓰는 건 아쉽지 않다. “날 위해 쓰는 거니까!”라고 생각하며, 물론 예방하지 못한 건 아쉽다. 돈은 잃어도 다시 벌 순 있지만 건강은 잃으면 돌이키기 힘들다. 돌이키는 과정 또한 고통스럽다. 그래서 굉장히 아쉽다.
건강을 잃고 나니 건강한 나날이 부러웠다. 지금 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순간들이 꿈처럼 머릿속을 헤맨다. 내가 그랬던 적이 있나 싶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았었다. 이틀 전, 잠자리에 들 때 목구멍에 고집스러운 방지턱이 박힌 듯한 느낌이 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건강했다.
다행히 건강을 완전히 잃진 않았다. 나는 아직 젊고 빨리 낫고자 돈도 많이 썼고, 낫기 위해 여러 노력도 하고 있으니 A형 독감으로부터 곧 있으면 벗어날 것이다. 그러니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는 예방 접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주사를 맞으리라. 기회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맞겠노라.
A형 독감은 나에게 돈과 건강, 그리고 목소리를 가져갔다. 지금 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상태가 많이 나아져서 말을 하고 있지 않으면 건강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 뭐라고 말을 시킨다면 내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깨달을 것이다. 고장 난 라디오가 치지직 거리는 것처럼 목소리가 녹슬었다. 뭐라고 발음하기도 어렵다. 단어 하나를 툭 내뱉을 순 있어도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아듣지 못할 테고, 알아듣고 싶어 하지도 않을 테다.
그래도 집에서 쉬고 있다 보니까 목소리를 잃은 것이 그렇게 나쁘게만 여겨지진 않는다. 오히려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니 평소라면 뭐라고 말했을 상황에 말을 삼키게 된다. 그렇다 보니까 내가 할 말과 그 말을 하고 난 후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곱씹는다. 벌써 수백 번도 더 그랬을 상황을 머릿속으로 굴려보니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 선다.
어쩌면 정말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축복이 아닌가 싶다. 말은 얼마나 많은 것을 망치는가! 물론 말을 잘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편은 아니다. 가끔은 말하고 싶어서 말을 하는 어리석은 짓을 벌일 때도 있을 만큼 말을 잘하진 못한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논리 있게 말한다면 그럴 수 있지만, 말이 워낙 느린 탓에 듣는 사람이 질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말하기 또한 하나의 기술이라고 여겨진다. 글쓰기처럼 하나의 기술이라고. 상황에 맞는 글쓰기 기술이 있듯이 상황에 따르는 말하기 기술이 있는 게 아닐까.
예컨대 빠르게 말하는 상사에겐 빠르게 말하는 기술을 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잃고 나서 소중함을 깨닫는 건 아쉽지만 다시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다.